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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Nov 28. 2019

부도의 시작...

내 남자 이야기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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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게 된 식자재 유통 사업은 그럭저럭 성장해 나갔다. 매출도 도매와 소매가 균형을 이루며 증가했고 서울과 경기권 내에 있는 대학교 식당에도 납품을 하게 되었다. 그런 성과 덕분인지 기업 사내 식당에서도 거래를 트자는 주문이 꾸준히 들어왔다.


그들과의 꾸준한 거래를 위해서는 정기적인 미팅과 접대가 필수였던 시절, 한 대학교 구내식당 식품 영양사로 있던 친구가 생각난다. 항상 결제 기간이 다가오면 빠른 결제를 위해 몇몇 영양사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같이 술친구가 돼주기도 했는데 그중 **여자 대학교 복지를 담당했던 친구다.


그녀는 노래를 참 좋아했다. 식사를 하고 나면 언제나 노래방에 들러 노래를 불렀다. 그것도 오직 나 혼자만 노래를 부르고 그녀는 듣기만 했다. 술 한 잔 마시지 않고 두 시간씩 생으로 노래를 부르기란 힘든 노동 같은 일이라 생각될지 모르지만 당시에 나는 그녀에게 호감이 있었던 터라 그 시간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다. 젊은 날, 감상에 젖는 발라드를 좋아하고 제법 고음처리도 깔끔하게 하며 잘 부른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음악 감상하듯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점점 이성으로 한 발씩 한 발씩 사이가 좁혀 들었다.


그러나 독실한 천주교 가정에서 외동딸로 자란 그녀는 언제나 일정한 선을 긋고 평행선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엄격한 부모님의 간섭으로 10시 통금시간을 엄수해야 했다. 10시를 넘기면 그녀 집에 함께 들어가 늦은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야 한다. 만일 상대가 이성관계로 만나고 있을 경우에는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설명해야 하는, 아니 브리핑해야 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한 번의 경험이 있은 후로는 혹여 내 불안한 미래가 저당 잡힐까 두렵고 싫어서 그녀와는 가끔 결제로 만나는 친구로만 지냈다.



그렇게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오직 일만을 생각하며 뛰어다녔다. 회사 규모는 점점 커지고 매출이 늘어나는 만큼 직원들도 새로 충원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백만돌이 밧데리 같았던 내 젊음의 열정도 조금씩 사그라들면서 식어가고 있었다. 아마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고 지쳐있었던 것 같다.


소매 거래처 관리와 재고, 인력 관리 등을 총무부장에게 전임하고 나는 매일 도매상인들과 만나 신제품 개발 연구와 해외 식품 수입 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배움을 넓혀갔다. 그리고 지방 지사들을 돌며 애로사항을 듣는 일에 귀를 기울였다. 조금은 회사일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갖고 싶었던 까닭이다.


회사도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직원들도 믿음이 갔던 터라 회사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들러 경과를 보고 받는 식으로 외부로 돌며 낮에는 미팅을 하고 저녁에는 술자리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직접 뛰어다니며 직원들을 가르치고 본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거라 믿었다. 특히 회사를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일일이 간섭해대는 윤 부장이 있었고 그의 사람들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마음으로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믿음 역시도 허공에 부는 바람처럼 흩날리는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회사 내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뻥뻥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새벽 배송이 지연돼 중식을 준비하던 단체 급식업체에서 컴플레인 전화가 빗발쳤다. 저녁 수금 시간을 어기거나 빼먹어서 소매업체들의 미수가 계속 쌓여갔고, 냉동고 재고 관리가 제대로 안돼서 제조업체와 장부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총괄업무를 맡겼던 영업부장은 영등포역 주변 다방에서 하루 종일 마담과 노닥거리고 있었다. 총괄업무 담당이 자리를 비운 사이 자재 담당은 냉동고 관리는 뒷전이 되었다. 냉동고에 깊숙이 쌓아두었던 제품은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처분 대상이 되었다.


하루는 경리 여직원이 며칠 전부터 영업부장이 수금한 돈을 입금하지 않는다며 급하게 찾는 삐삐가 울렸다. 나는 전에 경험한 일도 있고 해서 급하게 회사로 들어갔다.


"미스 김! 윤 부장님 삐삐 때려서 내가 보잔다고 해요~!"


그날 밤, 나는 경리와 장부를 보면서 영업부장이 입금하지 않은 미처리 금을 일일이 찾아냈다. 다행히 얼마 되지 않아 300만 원 정도였다. 그런데 당사자가 무슨 일인지 출근도 하지 않고 연락도 받지 않았다. 나는 옆에 있던 윤 부장에게 다짜고짜 불평을 터뜨렸다.


"형님! 형님이 책임진다던 사람이 벌인 일이에요. 그리고 저보다 더 많이 출근하셨다면서요. 그런데 이 꼴을 만드세요?"

"아.. 김 사장.. 내가 귀신인가? 어떻게 사람 속을 다 알아.. 그놈이 이럴 줄 내가 알았나... 그리고 여기 사장은 내가 아니라 너야 임마!"

"하여간 영업부장이 있다는 다방을 다른 직원이 알고 있다니까 가서 데리고 오세요. 확인할 거 확인하고 잘라버리던지, 경찰서로 끌고 가던지 할 테니까..."


나도 일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라는 걸.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벗어나고 싶었다. 비겁해지고 있었다.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복잡한 일들이 내 머릿속을 채우는 것이 싫었다.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뭔가 더 큰일이 다가오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시작하는 게 아니었는데....'




"김 사장님! 뭐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월급이랑 퇴직금 줬다고 생각하시고 정리합시다. 내가 나이도 한참 많은데 쪽팔린 소리 하기도 그렇고. 윤 부장님도 똥 밟았다고 생각하시고. 나도 이참에 이쪽 유통에서 손 털고 싶으니까. 더 볼 일도 없을 겁니다. 내가 같은 일을 하면서 해코지할 일도 없고."


"야~ 이 새끼야! 내가 널 얼마나 믿고 한참 후배뻘인 김 사장한테 소개했는데. 이따위로 배신하냐! 이런 나쁜 놈 같으니라고! 너... 절에서 만났을 때 나한테 보였던 모습이 모두 거짓이었냐? 이게 니 본래 모습이야?"


그래... 그제서야 짐작이 갔다. 도인을 자청하며 불법에 심취해 있던 윤 부장과 영업부장이 어떻게 인연이 됐는지.


그렇게 그와 함께 했던 배송직원 둘을 더 해고하면서 일을 정리했다. 그리고 부족한 일손과 남겨진 처리는 모두 고스란히 나의 손을 통해 매워졌다. 냉동고 재고 정리부터 다시 시작하면서 또다시 힘겨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가올 시련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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