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라미 Dec 01. 2019

부도를 부추기는 경쟁업체, 사회는 냉정한 곳이 맞구나.

내 남자 이야기(36)

https://brunch.co.kr/@goldstar10041/55

문제를 일으켰던 영업부장과 자재담당, 배송직원을 해고한 후 다시 1여 년 전의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단체급식 업체에 물품을 새벽에 배송한 후 곧바로 소매업체에 배송을 해야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수금을 위해 뛰어다녔고 재고 관리를 위해 늦은 시간까지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이 다시 시작되었다.


직원을 새로 뽑아야 했지만 그때까지도 사람관리에 서툴렀던 나는 모든 것이 두려웠다. 정말 사람만큼 무섭고 힘든 존재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마음 한 편에 깊숙이 또아리를 틀기 시작했다. 무턱대고 사람을 믿었던 자신을 자책해야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초라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노력해온 시간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고 슬퍼지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누구를 어떻게 채용해야 할지, 그들을 얼마나 신뢰해야 할지... 아직 어리기만 했던 나에게는 그 자체가 감당하기 힘든 트라우마가 될 것 같아 어떻게든 나를 보호하고 싶었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은 윤 부장이 선택한 사람들로 인해 뒤통수를 얻어맞은 충격은 오래도록 울림으로 남았다. 마치 거대한 종각 종의 울림이 오래가듯.



더우기 유통업계를 떠나 더 이상 볼 일이 없을 거라던 영업부장은 경쟁업체에 입사를 해 또다시 뒤통수를 때렸다. 회사 우량 거래처를 찾아가 단가를 낮춰 영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거래처와의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담당자의 호출이 있을 때마다 나는 일일이 찾아가 온갖 불평을 들어야 했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했다. 급기야는 납품 단가를 낮추고 다시 계약을 조정해야 했다.


"김 사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그동안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아니~ 같은 물건이 가격 차이가 많이 나잖아요..."

"아닙니다. 다른 업체가 제시한 견적은 전혀 터무니없는 거예요. 같은 퀄리티로는 절대 공급이 불가능한 견적입니다. "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건 우리 책임이 아니잖아요. 윗선에 보고 들어갔으니까 일단 단가 조정부터 하시고요.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시자구요."


사회는 자신들의 이윤 앞에서는 냉정했다. 변명이라는 것도 한계에 부딪혀 나는 육체적으로는 말할 수 없는 피로감으로 몸을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어 바짝 날을 세워야 했다. 조금이라도 그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다면 와르르 허물어져 다시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할 것 같아 억지로 날을 세우고 있었다.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냥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앞이 캄캄해져 오고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상황에서도 그저 참는 것이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



영업부장, 그놈 때문에 단가가 공개된 데다 급성장하며 승승장구했던 우리 회사를 눈엣 가시로 바라보던 경쟁 업체가 집요하게 대형 납품업체를 들쑤시고 다녔다. 정말 속수무책이었다. 할 수 없이 경쟁업체 대표를 만나 일의 자초지종을 듣고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사장님... 이러시면 저희가 어떻게 됩니까? 현재 뿌리시는 단가는 사장님도 맞추기 어려운 가격이잖아요. 같이 죽자는 겁니까?"

"내가 왜 죽어? 난 납품 안 할 건데. 잘 알고 있잖나. 우리는 제조하는 곳이라 주력이 달라. 그냥 단가 확~ 까발린 거야. 엿 먹이려고."


.... 흐엇.....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가 내뱉은 말은 분명 나를 향한 가시가 있었고 나를 마구마구 찔러댔다. 이유가 뭐지??? 왜??? 왜 내가 그 대상이지? 어이가 없었다. 뭐라도 반박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사장님! 저희 회사에서 잘린 영업부장 그놈. 재질이 나쁘다고 소문이 다 났는데 왜 데려가신 겁니까? "

"아.. 그거 걱정하지 마. 금방 잘라버릴 거니까! 그리고 내가 전에 했던 말 기억나지? 잘 생각해 봐.... 아유.. 요 몇 주동안 고생 많았나 보네. 얼굴이 많이 상했구만~ 어디 아픈 거 아니지?"


돌아온 그의 말은 가관이 아니었다. 아예 작정하고 비수를 꽂아대는 그의 말은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 온몸이 난자당하는 고통이 뼈 마디마다. 세포 마디마다 느껴졌다. 비아냥 거리는 위로라는 말은 그 얼굴에 주먹을 날려주고 싶을 만큼 조소가 섞여 있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서 참지 못하면 나는 정말 패배자가 된다. 어금니를 얼마나 꽉 깨물었는지 신경이 눌려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뒷 목덜미를 타고 머리끝까지 전해지는 뻣뻣한 기운이 조금만 더 했으면 그 자리에 얼음처럼 굳어버릴 것 같이 느껴졌다.


유통업체 친목회에서 만나 그가 건넨 말은 진심이었던 것이다.

"젊은 사람이 너무 급하게 나가... 그러면 안되지. 그리고 아무리 잘 나가도 서로 동종업체끼리는 동료의식이 없으면 안 돼. 어때. 우리 회사와 파트너십으로 같이 일해 볼 생각 없나? 그리고 자네... 지금 거래하는 제조 공장 말고 우리 회사로 바꿔서 일해 보자고... "

식사자리에서 지나가는 말로 한 말인 줄 알았는데. 그의 말은 견제구가 아닌 스트라이크 직구였다.



지속적으로 무겁게 짓눌러 내리는 하루하루의 고단함으로 희망을 잃어갔다.

'아...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음 날 결제가 돌아오면 텅 빈 통장을 확인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대로 영원히 잠에서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도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