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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Dec 02. 2019

단 한 번의 실수. 거침없는 인생 내리막길.

내 남자 이야기(37)

https://brunch.co.kr/@goldstar10041/57

업체에 납품하는 단가를 낮추었지만 매출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더우기 사회 전반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아 소비가 위축된 상황이라 그나마 마진이 좋았던 소매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인력이 부족해 일일이 업체를 찾아다니지 못해 미수금도 점점 쌓여갔다. 그때까지 쓰지 않았던 가계수표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러나 단가를 더 낮추기 위해 제조공장을 바꿀 수는 없었다. 제품 질 차이도 났을뿐더러 윤 부장이 떡 버티고 있으니 더욱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지난날 경험했던 프랜차이즈의 특성을 떠올리고 친분 있던 프랜차이즈 본사 자재관리 담당들을 찾아다녔다. 당시에는 프랜차이즈 사업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은 시대라 물품 배송에 대한 시스템이 미비했던 때였다. 중소 프랜차이즈 본사로서는 체인점을 늘리면서 그들이 고민하고 있는 식자재 배송을 우리 회사가 맡으면 서로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 또한 나의 것이 아니었나 보다. 시도는 좋았지만 이미 내리막길로 접어든 바퀴는 멈출 수 없었다. 점점 감당치 못할 일들이 많아졌다.




단 한 번의 실수.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분명 냉동고 자재 정리를 했었는데....


어느 날이었다. 전날 배송 직원이 몸살기가 있다며 다음 날 새벽 배송을 제외시켜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일손이 부족했던 때라 어쩔 수 없이 직접 배송을 나가게 되었다.

한남동 **대학교 학생식당 냉동 돈가스 1500장.

06시 30분까지 배송. 시간 엄수, 제품 검수 철저.


비록 이윤은 적었지만 물품을 대량으로 거래하는 곳으로 칼 같은 결제로 회사 입장에서는 우량 거래처였다. 배식담당 아주머니들과 직원들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아니~ 오늘은 젊은 사장님이 직접 오셨네..."

"직원이 아픈가 봐요. 이렇게라도 인사드리게 돼서 감사합니다."

"아직 밥 안 먹었으면 아침 먹고 가요! 오늘 주메뉴가 돈가스 튀김이야. 젊은 사장님네 꺼..."


그러나 다른 업체에 배송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출근 교통 혼잡 시간 전에 시내를 빠져나가야 했기에 급하게 서둘러 나왔다. 다음 행선지인 양재동 국수전문 체인본부 식자재 창고를 향했다. 그리고 약 1시간이 지났을까. 양재동에 도착해 물품을 내리고 있는데 삐삐가 울려댔다.

삐삐! 삐삐!


회사 사무실과 **대학교 후생 복지과 사무실에서 거의 동시에 삐삐를 쳤다.

우선은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미스 김! 일찍 출근했네! 배송 중인데 무슨 일로 삐삐를 쳤어?"

"사장님! **대학교 난리 났데요. 연락 안 왔어요?"

"물건 잘 배송하고 나온 지 1시간쯤 됐는데, 왜?"

"빨리 들어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물건이 상했대요. 학생들이 야단이라는데 저도 지금 막 출근하면서 전화를 받아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어요. 후생 복지과 담당이 저한테 막 소리 지르고 욕하고... 손 떨려서 전화기 놓치고... 무서워 죽겠어요..."


전화를 끊고 '동시에 **대학교에서 쳐댄 삐삐가 바로 그거였구나' 생각이 들자 갑자기 현기증이 나는 것처럼 머릿속이 하얘지며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르며 손발이 차가워졌다.

'아! 이게 무슨 일이지...?'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대학교는 어용 비리 총장 사퇴를 두고 총학생회 농성이 수시로 있었고 학내에는 이를 알리며 동의를 구하는 대자보와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그런 까닭에 전경들이 학교 내에 상주하다시피 하는 상태였는데... 불 난 곳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된 것이다. 큰일이었다.


'아... 이를 어떻게 해결하지...'






급하게 차를 몰아 다시 한남동으로 향했다. 차를 어떻게 운전했는지 기억이 없다. 심장은 쿵쾅! 쿵쾅! 내 귓가에 들릴만큼 큰 소리를 내며 뛰고 있었고 답답함과 숨 막힘이 번갈아가며 나를 괴롭혔다. 도로 위에 막힘 구간에서는 차에서 내려 뛰어가고 싶었다. 

'이대로 세상이 끝나면 좋겠다.'


**대학교 정문을 통과해 가파른 입구를 올라가는 길목마다 전투복을 입고 방패를 들고 서 있는 전경들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학생 식당이 가까워질수록 공기 중에 섞여 있는 불쾌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고깃집을 지나면 고기 굽는 냄새에 이끌려 발길을 멈추고 전을 부치는 곳에서는 전 부치는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발걸음을 하기 마련인데 어찌 된 일인지 학생들의 후각을 맛있는 냄새로 자극해야 할 식당에서 쾌쾌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농성을 이끄는 듯한 학생들이 식당을 점령하고는 큰소리로 식당 관계자들에게 시위를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식당과 한참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주방으로 통하는 뒷문을 이용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고!! 젊은 사장님!! 이게 뭔 일이래? 아니,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랬어!"

"이제 어떡하냐. 수습을 어떻게 할 거야. 빨리 복지과 사무실로 가봐! 영양사가 굉장히 화났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우리한테 뭘 죄송해. 우리야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들이지만 젊은 사장하고 학생들이 문제지..."


그때서야 주방 너머로 넓은 식당 구내에 모여 책임자를 찾고 있는 수십 명의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방 입구에 서서 연신 허리를 숙여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죄송합니다... 학생들한테 정말 미안해요.. 제가 책임자인데 문제없이 잘 해결하고 변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점심식사 때까지는 차질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일단 식당 내에 있는 창이란 창은 다 열고 환기를 시켰다. 주방에서 튀기다 남은 제품과 튀겨 놓은 것들을 모두 차량으로 옮겼다. 농성을 하던 학생들은 진심 어린 사과가 통했는지 모두 돌아갔고 그중 몇몇은 박스를 날라주기도 했다. 오히려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아저씨. 어떡해요. 고의가 아닌 것은 알겠는데 이런 일이 생기면 납품이 잘릴 텐데..."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혹시 학생들 중에 돈가스 먹은 사람 없죠? 혹시 있으면 찾아봐 줄래요? 병원 데리고 가서 검사해 보게요."

"아뇨. 없는 것 같던데요. 우리가 아침 먹으러 제일 처음 들어갔는데 들어서자마자 냄새가 워낙 심하게 나서 아예 손도 안 댔었거든요. 뒤에 총학생회 임원이 오는 바람에 이 난리가 났었고요.."


그나마 다행이었다. 식중독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더 큰일일 테니.. 그렇게 식당 일을 정리하고 후생 복지과 사무실로 향했다. 담당자의 싸늘한 눈초리, 냉랭한 영양사의 표정,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다그치는 소리에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나와야 했다. 귓가에 윙윙 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 기억할 뿐. 내 몸과 정신은 분리된 채 따로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사무실 문을 닫으며 들었던 딱 한마디의 말만 기억한다.

"아~! *발! 재수 없으려니까 별 거지 같은 게 물건을 넣어가지고... 꼴도 보기 싫네!"



간신히 차에 올라 운전대 앞에 앉았다. 반쯤 혼이 나간 나는 하얗게 질린 상태였는지 손발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허벅지는 내 몸을 지탱하느라 힘이 들었는지 욱신욱신 쑤시기까지 했다.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삐삐가 울렸다.

"어... 미스 김. 무슨 일이야?"

"사장님! 다른 학교에서 연락오고 난리예요! 납품 다 취소한다고... 그리고 거래처마다 사장님더러 빨리 들어오시라고 연락해 달래요.!"




하....!!!

깊은 한숨이 나왔다.

공중전화라는 것도 잊은 채.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그냥 한없이 눈물이 나왔다.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오는 거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서러움이 복부를 지나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누구의 도움을 바란 것도 없이 그저 열심히 살아온 것뿐인데. 살려고 아등바등 뛰어다녔는데. 한 순간에 무너지다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하고 살았다고....'

나는 이후로 닥칠 수많은 일들에 대해 온 몸 세포 하나하나가 다 알아챈 듯 두려움으로 떨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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