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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Dec 03. 2019

도장 찍어! 부도 막아줄게

내 남자 이야기(38)

https://brunch.co.kr/@goldstar10041/58


사무실은 발칵 뒤집혀 있었다. 미스 김은 눈이 퉁퉁 부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재고정리를 하지 않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 서로 눈치를 보며 담배만 피워댔다.


**대학교 사고 후유증은 상당히 컸다. 연줄로 어어진 대학교 담당과 영양사들은 그날의 사고를 공유하며 불량 납품 업체로 낙인을 찍었다. 그 때문에 여타 대학교에서도 거래처를 바꾸기 시작했고 이미 납품한 물품에 대해 결제일이 미뤄지기도 했다. **대학교는 결제해야 할 금액을 사고처리 비용으로 대신했다.


아직 남아있는 거래처가 상당수가 있었지만 사업이라는 것이 늘 자금회전이 문제다. 거기에 제일 큰 문제는 내가 점점 일할 의욕이 상실되고 있었다는 것. 점점 말이 없어지고 사람 만나는 일은 극히 자제했다. 아니, 만나는 일을 거의 만들지 않았다. 대신 낮부터 술을 마시며 술기운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새벽부터 시작되었던 하루 일과는 늦은 출근으로 바뀌어갔다.


회사 매출도 서서히 떨어지며 운영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계수표 막을 자금이 차질이 생겨 땡처리까지 알아보며 어떻게든 현금을 회전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받을 돈은 많은데 다들 주머니를 열지 않아 돈 들어오는 흐름이 꽉 막혀버렸다. 결국 주거래 은행으로부터 통보를 받게 되었다.

아...! 정말 누군가 죽으라 죽으라 주문을 외는 것 같다.




그즈음 윤 부장과 직장 동료로 있던 정 부장이 수시로 사무실을 방문하고 있었다. 내가 없는 시간에도 사무실을 들러 장부도 보고 직원들 일하는 것도 보면서 참견도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윤 부장과의 인연 때문에 안면식이 있어서 편하게 생각하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날 윤 부장은 정 부장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며 시간을 잡았다. 사실, 정 부장은 부유한 처갓집 덕을 보며 잘난 척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리고 윤 부장이 소개한 사람 치고 제대로 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윤 부장의 집요한 부탁으로 함께하게 된 저녁식사 자리는 한참 동안 침묵을 이어가며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꽤 비싼 횟집에서 마주 앉은 우리는 조용히 쓴 소주잔만 기울였다.


"요즘 김 사장님. 힘드시죠. 젊은 나이에 너무 많은 일을 겪으시네요."


침묵을 깨고 정 부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갑자기 존댓말이라니. 속으로 낯간지러운 웃음이 나왔다.


" 임마! 형님이 얘기하면 대답을 해야지.. 뭘 빤히 보고만 있냐! 오늘 정 부장이 신경 많이 쓰는 거야."

"윤 부장! 됐어. 그만해. 지금 김 사장 심정 모르는 거 아니잖아. 짠해 죽겠구만. 넌 말을 왜 그렇게 해!"


나는 평소와 다른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쑈들 하고 있네... 누굴 바보 천치로 아나...'



"그런데 갑자기 왜 식사를 하자고 하셨어요? 늘 사무실에서 보잖아요. "

"다름이 아니라.... 말 나온 김에 이야기할게요. 내가 김 사장을 좀 도와주고 싶어서요. 이번에는 손쓰기 어렵다고 윤 부장한테 얘기 들었어요. 더 시간이 지나면 사면초과될 거라고..."

"김 사장! 너 지금 이대로 가면 완전 쪽박 차는 거야! 어떻게 관리를 했길래 이 모양으로 만들어! 경영이 아무나 하는 줄 알아? 규모는 작아도 이것도 경영이야. 니가 젊어서 모르는 게 많아. 그래서 내가 정 부장한테 특별히 부탁해서 만든 자리야. 그러니까 생각 잘해!!"

윤 부장... 참 말인지 막걸린 지 자기 멋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다 틀린 것도 아니다. 내가 젊어서 경험도 부족하고 관리도 부실했다는 것도 다 맞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나를 잘 안다는 형님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생각 없이 말을 지껄여도 되는 건가 하는 속상함도 들었다.


"제가 수년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아시는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어떻게 도와주실 건데요? 윤 부장님은 그만 말씀하세요. 윤 부장님께는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제가 냉동차 없이 구멍가게 할 때 공장에서 차를 몰래 꺼내 주셔서 지방까지 운전해 주시고. 서울에 새벽에 도착하면 해장국도 같이 먹고 잠도 못 자고 출근하셨던 일... 그 외에도 공장 주문을 저에게 돌려주신 일도 정말 감사해요. 눈 오는 겨울, 새벽에 운전하다 강원도에서 죽을뻔한 적도 있었잖아요. 그런 것 하나하나 다 고맙고 감사해요. 그런데.. 형님. 지금 회사가 이렇게 어렵게 된 이유. 그리고 시작부터 어떻게 지금까지 지내왔는지는 형님은 정말 할 말이 없어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제발.. 아무 얘기도 하지 말아 주세요! 저 진짜 죽을 만큼 힘들어요. 특히 사람이 제일 무서워요! "


다시 침묵이 흘렀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적을 깨고 윤 부장은 입을 열었다. 기대를 저버린 한마디

"그래.. 힘드니까... 부도 막아줄게..도. 장. 찍. 어!"


아 놔! 이렇게 회사를 뺏기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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