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라미 Dec 04. 2019

부도 위기로 빼앗긴 회사. 그리고 퇴사

내 남자 이야기 (39)

https://brunch.co.kr/@goldstar10041/59


만기가 되어 돌아온 가계수표를 막지 못해 1차 부도가 났다. 그 후 하루하루 애가 타는 시간을 보내며 이리저리 발버둥을 치고 있었지만 주거래 은행인 **은행 지점장의 최종 부도처리 협박에 결국 도장을 찍고 말았다.


회사를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도장을 찍고 난 후, 정 부장은 일단 은행권부터 자금 정리를 했다. 그리고 윤 부장과 함께 회사의 매입 매출 장부를 검토하고 거래처 미수금 현황과 부채. 직원 정리와 신규 채용 등에 대한 문제를 논의했다. 소문이 나가지 않도록 철저히 비밀 유지에 조심하며 신속하게 일을 처리해 나갔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는 그저 그 두 사람이 하는 대로 지켜보면서 직접 나서거나 특별한 요구는 일절 하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 함께 고생했던 직원들 승계 문제만 부탁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양도 양수 계약서를 앞에 두고 세 사람이 다시 만났다.


"김 사장님. 매입 서류는 모두 검토했고 매출 거래처도 상중하로 분류해서 정리했습니다. 결제대금과 미수금도 정리해서 상계할 것은 따로 서류를 만들었어요. 윤 부장이 회사 내부 사정을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어서 빨리 끝낼 수 있었습니다."

" 네. 복잡한 말씀은 됐고요. 대충은 저도 알고 있는 상황이니까 영업매출 상중하로 분류하신 것과 회사 보유 현금자산 그리고 차량들에 대한 부분을 먼저 마무리하시죠. 어차피 지분이야 쉽게 정리하도록 처리해 뒀으니까요."

"저희는 윤 부장과 지분관계도 정리됐어요. 제가 지금 다니는 공장을 퇴사하고 대표이사를 맡기로 했고 윤 부장은 상무로 있으면서 당분간 공장은 계속 다니기로 했습니다. "


정 부장은 내친김에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영업매출은 제 기준으로 볼 때 상급에 해당하는 거래처는 없다고 생각돼서 대부분 중급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대학교 사고 이후로 매출 이탈이 많았더군요. 그리고 회사 보유 차량과 현금 자산에 대해서는 제가 일전에 가계수표 막으려고 은행에 밀어 넣은 자금을 상계해서 계약서를 작성했으니까 잘 읽어 보시면 이해될 겁니다. 그리고 부탁하신 직원들 승계 문제는 인수기간 2개월이 끝나면 모두 퇴사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공장에서 데리고 있던 직원들이 입사하기로 해서 승계는 어렵다고 보시면 됩니다."



나는 갑자기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이 두 사람이 한 달 동안 한 일이라는 게 고작 회사를 날로 먹겠다는 심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제가 부탁한 것도 안 되고 두 분이 마음대로 거래처를 중급 이하고 분류하고 현금자산도 퉁치고.... 거기에 보유 차량 자산도 인정하지 않겠다? 부도 막아준다고 큰 거 몇 장 은행에 밀어 넣은 것으로 끝났으니 너는 도장만 찍고 빠져라? 회사는 두 사림이 알아서 나눠 먹겠다... 뭐 이런 말씀인가요!!"


정말 힘겹게 버티며 침묵 속에서 묵묵히 지켜만 봤다고 해도 이들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털끝만치도 없는 것 같았다. 이들이 내민 서류는 동네 구멍가게라 해도 말도 안 되게 저평가시켜 작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김 사장! 너 말본새가 왜 그 모양이냐. 지금 찬 밥, 더운밥 가리게 됐어? 누구 덕에 살아 난 건지는 알고 얘기해야지 임마!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이렇게 감정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야!"

말리는 시누가 더 얄밉다는 말이 떠올랐다.


"형님... 계약서 보기나 했어요? 이 회사... 형님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했지만 자리를 잡기까지 하루도 쉬지 못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만든 회사예요. 트럭에서 먹고 자면서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벌었던 내 목숨 값 1억 5천을 톡 털어 만든 회사라구요!! 아무리 배송 사고 때문에 매출이 떨어졌다고 해도 월 매출 7억이 넘는 회사를 어떻게 이렇게 날로 먹으려고 합니까!! "



계약서 마지막 장을 넘기며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최종 정산금액 2천5백만 원.... 정말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사무실 보증금만 해도 1천만 원이다. 그동안 한 번도 월세를 밀린 적이 없었다. 그리고 50평이 넘는 지하실 자재창고 보증금과 5천만 원이 넘게 들어간 냉동고 제작비. 냉동 탑차 2대와 냉동 포터, 일반 차량까지 모두 다 합해도 훨씬 많은 금액이다. 그런데 어떻게 말도 안 되는 계약서를 나에게 내밀 수 있을까!!


"김 사장, 어차피 매출이란 것이 무형자산 아니겠나. 내일이라도 발주 없으면 그냥 허사야. "

정 부장은 애써 본심을 감추며 나를 설득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윤 부장은 계속해서 이 모든 일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고 나를 위한 것임을 반 협박적인 어조로 몰아갔다.

"그리고 너. 지금 사업하다가 망한 거라고. 그동안 고생한 거로 치면 지금 상황이 전혀 이해가 안 될지 모르지만. 완전히 실패한 사업이야! 공중분해돼서 구속되고 재판대 앞에 서는 것보다 낫잖아. 그렇게 따지고 보면 지금 상황이 아주 나쁜 것만도 아니고. 이성적으로 판단해. 우리도 이 회사 살려보려고 큰 결심하고 달려든 거니까.. 일단, 도장 찍고 정리부터 하자. 자세히 읽어보면 자네도 타당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자리 옮겨서 기분 좋게 술 한잔 하자고. 정 부장이 개인적으로 자네한테 특별히 할 얘기도 있다고 하니까. "


나는 잠시 머리를 식힐 겸 공원을 걸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후... 그래.. 어차피 마음먹은 거니까.. 그냥 찍자...'



양도 양수 계약이 성립되었다. 바로 정리 대금이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2개월 뒤에 퇴사를 하게 될 여직원을 포함한 직원들에게 한 달치 급여를 개인적으로 챙겨 주었다. 그동안 함께 고생한 그들에 대한 내 마음을 표시하고 싶었다.

"그동안 고생들 했어요. 친구 뻘, 형 뻘, 오빠 뻘 되는 어린 사장과 일 하시느라 힘들었죠? 부족한데도 사장으로 대접해 줘서 감사했습니다. 꿈은 컸는데 이루지 못하고 일찍 접게 돼서 미안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일 있으시길 바랍니다."


한 명 한 명 악수로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맞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가며 붉어지는 눈시울을 고개를 숙여 애써 감추었다. 헤어짐은 빠른 것이 좋다고 했다. 그렇게 말없이 배웅해 주는 직원들을 뒤로하고 서둘러 회사를 빠져나왔다.


새로운 대표와 상무이사로 마주하게 된 저녁 식사에서 나는 그냥 말없이 술잔을 비워댔다. 그렇게 몇 순배를 돌았을 때 윤 부장, 아니 윤 상무가 이야기를 꺼냈다.

"정 사장. 이제 이야기하지."

"그래. 김 사장님!"


나는 그 소리가 몹시 귀에 거슬렸다.

"아니. 사장은요. 이제 백수인데 그냥 이름 부르세요. 듣기 불편합니다."

"미스터 김.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난 미스터 김 엄청 좋게 봤어요. 젊은 사람이 부지런하고 열정도 있고. 그래서 말인데 떠나지 말고 우리 회사에서 같이 일하면 어떨까. 대신 식품업계 최고 대우해 줄게요. 내 영업 비법 다 전수해 줄게. 이래 봐도 나 욕심 많은 사람이야. 이 회사 정말 크게 키울 자신 있어요. 그래서 미스터 김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해요. 내가 한 말 잘 생각해봐요!"


정말 생각이 없는 것은 윤 부장과 정 부장이었다. 처참히 짓밟히듯 빼앗겨버린 회사에 다시 남으라니. 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윤 부장을 만나 2천만 원을 주고 그나마 남아있던 마음의 빚을 정리했다. 그 후로도 수개월 동안 유통업계에서 다양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지만 마음을 완전히 정리하기로 하고 발길을 끊었다.


뒤돌아 보면 내 젊은 시절을 바쳤는데 남는 것이 없었다. 다시는 그 바닥을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고 오줌도 싸기 싫었다. 나는 그렇게 젊은 날 시작했던 첫 사업을 떠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장 찍어! 부도 막아줄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