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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Nov 19. 2019

시련의 시작, 내 젊은 날.

내 남자 이야기 (32)

https://brunch.co.kr/@goldstar10041/49

(회사 합병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냉동식품을 배달하고 수금했던 시절,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지만 경영자의 잘못된 사생활이 결국 회사를 부도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그러나 그 실수나 잘못이 깊어지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요.)


혼자서 운영하던 식자재 사업이 서서히 난항을 겪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경력과 영업망을 내주어야 할 위기가 찾아왔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장안동에서 식자재 유통에 나름 인지도가 있던 권 사장이 내게 회사 합병 제의를 해 온 것이다.


도매업만을 하던 권 사장은 소매를 하던 나의 영업력과 시장을 인수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내게 회사 합병에 대해 이렇다 할 액수를 제시하는 대신 백지 수표를 내밀었다. 원하는 금액을 쓰고 은행에 가면 알아서 처리해 준다고 했다. 무슨 대기업 간의 회사 합병도 아니면서 이렇게 거창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기가 막혔다.


도대체 얼마를 적어야 한다는 말이지?

며칠 고민 끝에 1천9백만 원을 적었다. 사무실, 오토바이, 직원들 퇴직금, 소매 거래처 미수금 등 모든 거품을 제거한 실질 필요 금액이었다.


"김 사장은 아직 순수함이 많이 남아 있구만.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군. 1억 9천만 원도 아니고 1천9백만 원이라... 그것도 백지 수표에... 왜, 무섭던가?"

"아니요. 그저 쪽팔리고 싶지 않아 섭니다. 돈에 쪽팔리는 것이 싫어서요."

.....

"단, 조건이 있습니다. 제 차 유지비를 포함한 급여 160만 원을 주시고 영업은 제가 하던 스타일대로 관리하겠습니다."

"나도 조건이 있네. 3개월 이후에는 도소매 포함해서 매일 수금액이 5백만 원 이상 돼야 한다는 것일세. 할 수 있겠나? "

3개월 이후 일 수금액을 5백만 원에 맞추라니...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악으로 깡으로 달려온 인생, 그래, 한 번 해 보지 뭐. 권 사장에게 OK를 외쳤다.

(당시 대기업 기본 급여가 50여만 원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나는 권 사장에게 상당한 조건을 내건 셈이었고, 권 사장 역시 조금은 무리한 조건을 제시한 것이었다.)


나는 권 사장 회사에 합류해 강북 지역을 총괄하는 독립 지사장이 되었다. 그는 나를 김 소장이라 불렀고 이때  감시하기 위해 딸려 보낸 운전기사가 임 과장이었다. 나는 3개월 동안 전국을 뛰어다니며 도소매를 가리지 않고 영업을 했다. 매출이 점점 증가하고 1톤 포터 냉동탑차에서 두 달만에 2.5톤 점보 타이탄 냉동 탑차를 구비했다. 권 사장은 매출이 늘어날 때마다 그에 맞는 직원을 채용해 주었고 차량을 지원해 주었다.


얼마 후 우리는 전국에 도매로 공급하는 종합 냉동식품 회사로 성장했다. 일주일에 두 번을 수원, 천안, 대전, 대구, 부산까지 배송을 하고 현금을 받아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 수금액이 대략 2천만 원 정도. 일 평균 현금 수금액이 650만 원이었다. 물론 애초 권 사장이 제시한 조건은 이미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렇게 발로 뛰며 영업을 하는 동안 전국 소매업자들에게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대우도 좋아졌다. 그리고 지방으로 물품을 배송하는 시간 이외에는 ***대학으로 짬짬이 특강을 들으러 다니기도 했다. 사업을 시작한 이후 나에게 찾아온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항상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권 사장은 현금으로 주머니 사정이 두둑해지자 장안동 중고차 시장 사장들과 매일같이 놀음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 수금이 끝나고 정산이 이루어지면 경리를 맡은 여직원이 현금을 권 사장에게 전달해 주고 퇴근하는 것이 일이었다.  


권 사장은 놀음을 위한 현금 조달을 위해 물량 결제를 6개월 어음으로 발행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놀음 빚이 쌓이면서 어음 발행으로 빚을 연기하기까지 했다. 경영권이 없었던 나로서는 곪을 대로 곪아버린 경영상태를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권 사장은 결국 돌연 잠적을 했고 외형적으로 잘 나가던 회사는 부도로 이어졌다. 내가 꿈꾸던 사업, 그리고 그간의 노력으로 쌓았던 공든 탑이 다시 한번 무너져 내렸다.


그 후로 수개월 뒤, 고소 고발로 형사입건되었던 권 사장은 자수를 했다. 그리고 재판을 통해 형량을 받았다. 거래처 지인의 부탁으로 법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 머리를 짧게 깎고 죄수복을 입은 채 피의자석에 앉아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마도 그가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은 '미안하네. 김 소장'이 아니었을까.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서도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나의 시련은 언제까지 반복될까. 그래도 도전하고 또 도전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이 젊음뿐이기 때문이다. 아직 겪어야 할 시련의 양이 남아 있다면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도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다시 일어나 도전하고 걸어가자. 그것이 내 인생의 모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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