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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Nov 18. 2019

아버지, 당신의 죽음 앞에 나는...

내 남자 이야기(31)

https://brunch.co.kr/@goldstar10041/50

(아버지의 미움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당신의 죽음을 지켜 보아야 했던 둘째 아들. 남편은 가슴에 응어리진 한이 미움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짙은 그리움이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볼 때면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아버지에 대한 애. 증. ... 남편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2000년 9월 추석연휴가 시작된 첫 날이었다. 그해 1월에 쓰러지셔서 중환자실과 준중환자실을 오가며 입원하셨던 아버지는 결국 심한 폐혈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넘기기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가족들 모두 부르세요."

담당 신경외과 주치의는 마지막 소견을 전했다.


얼마후 가족과 친지들이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가느다란 숨을 쉬고 있는 아버지를 향해 눈물을 흘리며 작별 인사를 했다.

"오빠... 고생 하셨어. 이제 아프지 말고 좋은 곳에 가셔서 편히 쉬세요..."

"장조카야... 늙은 나도 있는데 젊은 니가 먼저 가면 우짜노. 이제 걱정 다 버리고 편히 쉬어라.."

"형님... 잘 가슈.."

"아빠.. 편히 쉬세요.."

고모, 작은 아버지. 이모 할머니, 여동생들... 모두 마지막 가는 길에 한마디씩 인사를 건넸다.


엄마는 길고 긴 한 숨을 섞어 내 쉬며 짦게 한마디 하셨다.

"가 기셔... 천천히 따라 갈게요.. 둘째야.. 니가 제일 고생 많았는데 인사 드려라.."

"...."


나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떤 말도 목구멍 넘어로 소리가 올라오지 않았다.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을 받으며 그저 윽~ 소리만 나올 뿐. 눈물샘에서는 아프게 찌르기만 하며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온 몸에 기운이 빠지고 순간 다리가 풀려 서 있기 조차 힘이 들었다. 모두는 그렇게 아버지의 임종을 기다리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죽어가던 아버지의 심장박동이 다시 뛰기 시작하고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호흡기를 떼도 무리 없이 호흡을 하시며 가족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기까지 했다. 의식이 갑자기 또렷해지신 것이다.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가족들과 친지들을 반갑게 바라보며 오른 손에 힘을 주어 손을 잡아 주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치의는 여러 가지 체크를 하더니,

"자... 가끔 이런 일이 있습니다. 가족분들은 집으로 가셔도 좋습니다.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셨으니 앞으로 일주일 안에는 아무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후에 다시 검사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그렇게 모두들 한숨을 돌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병실에는 나와 아버지만 덩그러니 남았다. 지난 9개월간 아버지의 간병을 하며 씻기고 대소변을 갈아드리고 목에 넣어진 줄로 식사를 드리고 욕창 치료를 도왔다. 갑작스러운 소동.... 아버지는 생과 사의  고비를 넘고 계셨다. 다시 수건으로 몸 구석구석을 닦아드렸다. 머리, 얼굴, 목... 발가락까지.. 차례로 수건 목욕 시켜드리고 수건 양치도 해 드렸다. 기저귀도 새것으로 교체하고 욕창이 생긴 어깨와 허리, 엉덩이 부분의 간단한 드레싱도 도왔다. 그렇게 순식간에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빠... 시원하시죠... 저 땀이 많이 나서 잠깐 씻고 올게요."


난, 아빠의 움직이지 않는 힘 없는 왼손을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전신이 거의 마비된 아버지는 겨우 오른 손과 눈동자만 움직일 수 있었는데 그나마 오른손으로도 내 손은 잡아주지 않으셨다. 언제나 눈동자는 나와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 계셨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눈동자를 움직이도록 수시로 자리를 이동해 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아버지, 당신은 왜 그리도 내가 미우셨습니까... ?




아버지의 상태가 조금이나마 좋았던 서너 달 전,

"아빠, 왜 그렇게 눈을 돌리고 계세요? 내가 그렇게 미워요? 진짜 제가 미워서 그런거면 오른손에 힘을 줘 보세요..."

당신은 있는 힘을 다해 오른 손에 힘을 꽉 쥐셨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한 소리 하셨다.

"이 양반이! 지금까지 당신을 잠 못자고 시간마다 체크해 가며 돌봐주고 있는게 누군데... 당신을 씻기고 똥오줌 다 받아내고 있는데 둘째를 밉다 그래요? 죽을 때가 다 됐나... "


나는 그런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되물었다.

"아빠... 왜 내가 미운지 물어보면 눈만 꿈뻑 거려보세요.. 하나, 제가 장가 안 가서 미워요?" 꿈뻑...

"둘, 돈도 못 버는 것 같아서 미워요?" 꿈뻑...

"그럼 며느리 감 데려오면 이뻐해 주실거예요?" 꾸~~움 뻑...

병실에 있던 사람들이 그 모양새를 보더니 한바탕 웃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아버지가 병상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실 거라 믿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있었는데 밤 10시 즈음, 고요하던 병실에 삑~ 소리와 함께 비상이 걸렸다. 아버지의 혈압이 급하게 치솟았다. 190/150, 

삑삑삑삑....

한없이 치솟던 혈압이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했다. 110/60, 80/40, 60/30...주치의는 별일 없을 거라는 말과 함께 집으로 퇴근한 상태였고 신참 전문의가 식은 땀을 흘리며 응급처방을 하고 있었다. 수간호사는 연신 주치의와 통화를 하며 처방을 받아 적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동안에 나는 조용히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마음 속으로 기도를 했다.

"아빠... 식구들이 도착할때까지만이라도 조금만 힘 내세요... 조금만... "


나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버지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30분이라는 긴장된 시간이 지나갔다.

뚜~~~~~

"사망 선고 하겠습니다. 2009년 9월 11일 월요일 오후 10시 30분. 이 시간 김00 환자 사망하셨습니다. 보호자의 동의로 심폐소생술은 시행하지 않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 간호사! 기구 정리하시고 장례식장 연락하세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귓가에서 들여오는 멍~한 소리에 의사의 말이 저 멀리서 들리는 듯 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누워있는 아버지를 붙잡고 흔들었다.

"아빠!! 일어나 보세요!! 제발!!! 아직 할 말이 있단 말이예요~!!"

그 순간 아버지의 심장이 다시 뛴다는 신호가 잡혔다. 의사와 간호사에게 뭐라도 해 달라고 소리를 쳤다.

"보호자분~!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미 동의서에 싸인하셔서 소생술은 할 수 없어요!"

"아니... 기계가 움직이고 있잖아요! 그럼 살아계시는 거 아닌가요? 제발 뭐라도 해 보세요! 사망 동의서는 누가 싸인했다는 거예요? "

"여기 김00 씨가 동의서에 싸인했습니다."


동의서에 사인한 당사자... 바로 형이었다. 간호사들과 의사는 모든 측정기의 전원을 끄고 기구를 정리했다. 나는 터덜터덜 아버지 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먼 곳을 응시하고 계신 아버지의 눈을 감겨드렸다.


태변이라 불리는 마지막 배변, 항문이 열리며 쏟아진 검고 묽은 아버지의 변을 치우고 살결을 닦아내면서 나는 그렇게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조용히 배웅해야했다.


하얀 천으로 싸매진 시신은 불과 몇 시간 사이로 장례식장으로 옮겨지고 언제 연락이 닿았는지 스님들이 모여 염불을 외며 목탁을 두드렸다. 망자의 혼을 달래는 의식이었다.


나는 그 사이 지난 9개월간 아버지를 간호하며 보냈던 빈 병실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었다. 이미 새 환자를 맞을 준비를 한 병실, 침대... 불이 모두 꺼진 상태로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발견한 병동 간호사와 간병인들이 한 명씩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는 그저 말대신 엷은 미소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봐... 젊은이... 그만 마음 추스리고 상주 노릇 해야지... 이제 안아프실테니까... 기운내고, 마지막 가시는 길 지켜드려야지..."

"삼촌은 자식 노릇 다 했응께... 고만 심난해도 돼야..."



지난 9개월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어릴적에 바라봤던 아버지의 모습도, 젊은 날의 모습도... 내가 기억하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마치 필름처럼 감겨 눈 앞에 스크린처럼 펼쳐졌다. 당신은 그렇게 나를 미웁다 하셨지만 결국 당신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는 것은 나의 운명이었다. 왜 일까? 그것은 당신과 나의 질긴 인연의 끈이기 때문일까?


"그래 기운내자... 일어나자... 지켜드려야지... 당신이 그렇게 미워하셨어도 나는 그런 아빠가 .. 좋으니까.." 

나도 모르게 흘러 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근만근 처럼 느껴지는 마음의 무게는 다리를 다시 주저 앉게 할 것 같았다. 한 발 두 발 움직일 때마다... 마음의 무게에 짓눌려 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그렇게 장례식장까지 가는 길은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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