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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Sep 07. 2024

불언지교(不言之敎)



불언지교(不言之敎)

말하지 않고도 가르침을 준다


노자 43장에 나오는 고전문장이다. 노자는 이 장에서 불언지교(不言之敎)를 언급하며 천하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을 물로 비유한다. 물은 아주 작은 틈으로도 스미어 들며 촉촉이 적시는 성질이 있는데 바로 교육이 그러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주고 있다. 틈이 없어 보이는 곳으로도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스미어, 젖어드는 줄 모르고 촉촉이 젖는 것처럼 교육 역시 자연스럽게 스미어 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교육이라는 것은 학교 교육만이 전부가 아니다. 적게는 가정교육에서부터 크게는 사회교육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체험하고 깨달을 수 있는 모든 일상이 바로 교육의 현장이다. 그러니 어린이로부터 성인, 노년에 이르기까지 각 개인이 처한 상황, 위치에서 내가 배우는 학생인지, 가르침을 주는 선생이 될지는 각자의 주어진 무게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평생교육이라고 했다. 늙어 죽을 때까지 새로운 사실, 또는 정보를 깨우치고 배우는 것은 물론, 내면의 크기를 넓히기 위한 정신수련을 위해서도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배움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거꾸로 자라나는 다음 세대를 위한 본보기가 되어 보다 이로운 사회로 구현하기 위한 밑바탕이 될 것이다.


요즘 사회면을 보면 학교폭력은 물론, 어른을 폭행하는 아이들, 여친을 폭행하는 남친, 화를 참지 못하고 분노를 폭발하는 도로 위의 무법자들, 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희생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회 풍조. 가정이 있음에도 불륜을 정당화하는 요즘 세태, 국민의 안전과 복지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치인들, 민생현안은 안중에 없고 서로 헐뜯기 바쁜 여권과 야권... 도대체 사회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은 교육이 흔들리고 있는데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회초리는 교육 현장에서 사라지고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조롱과 무시를 당하는 교권이라니.. 게다가 학부모가 선생을 무시하는 교육계의 모순은 이미 우리나라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를 망쳐놓았다.


아이들은 이미 마음속에서 자신들의 부모가 선생과 학교를 무시하는 태도를 그대로 답습하며 마음속에 교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스승과 제자라는 관념은 버려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이 자라서 어떤 모습이 될까? 불 보듯 훤한 것 아닐까? 가장 어렵다는 스승을 홀대하는 마음가짐은 부모라고 봐 줄리 만무하다. 경제적으로 힘을 갖게 될 나이가 되었을 때는 그 모습은 그대로 부모에게로 옮겨 갈 것이고 무시와 경시의 대상이 스승에서 부모로 바뀌는 것뿐이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결국 부모에 있다. 


이 아이들은 더 나아가 사회생활에서 위아래의 구분을 짓지 못하고 힘 있는 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회적 약자 또는 만만해 보이는 계층에 대해서는 매우 이기적으로 행동할 것이 훤하다. 그런 병폐는 이미 사회 전반에서 드러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다시 부모가 되고 자녀를 양육한다면 그 아이들 역시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성장할 것이다. 


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교육한다면 어떨까... 그 모든 방향성은 지금보다는 훨씬 유연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문제는 내가 어떤 부모가 돼야 하느냐이다. 내가 어떤 사회인으로 서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고 내가 어떤 어른이 되느냐에 달려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처럼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바로 수신(修身)이다. 자신을 먼저 올바르게 하는 것. 올바른 정신에서 바른 몸가짐이 나오고 올바른 몸가짐 즉 태도는 자녀들에게 보이지 않는 가르침이 되어 진정한 본이 되는 것이다. 


예전과 달라졌다고 하지만 우리가 예전 성인들의 가르침이나 생활상을 자주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그들의 가르침 속에는 인간의 근본 됨과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들, 개인주의, 이기주의, 몰염치한, 불한당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잘못된 흐름은 이례적이라는 생각이다. 적어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 부끄러움조차 씨가 말라버린 듯해 마음 한편이 매우 불쾌하고 불편하다.


수신(修身), 나 자신부터 올바른 마음가짐과 올바른 태도를 가지지 못하는데 어떻게 제가(齊家) 할 수 있을까... 문제는 바로 나 자신부터 올바른 생각, 올바른 자세를 가지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요즘은 가정이 있는데도 불륜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보편적이라는 말에 매우 충격이다. 회식 자리, 또는 모임 자리에서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부르는 것이 보편화된 사회생활 풍조라는 것을 자랑하듯 이야기하는 직장인들. 이들도 분명히 집에서는 가장이자 아내이자 누군가의 부모일 텐데... 그럼에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이들에게서 가정은 온전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부모의 감정, 행실, 마인드를 그대로 답습하는 복사본이다. 자녀를 보면 그 부모의 얼굴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만큼은 절대 아니야....라는 생각에 젖어 살며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부모가 정말 많다. 가르치지 않아도 이미 물이 스미어 들듯 자녀들의 생각 속에, 삶 속에 부모의 얼굴이 스미어 든다. 그 사실을 안다면 세상에서 나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노자의 가르침 불언지교(不言之敎) / 말하지 않고도 가르침을 준다는 긍정적인 부분 이면에 오늘날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직시하게 하는 강한 메시지가 담겼다. 내 자녀가 올바른 사회인으로서, 적어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양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살아가도록 하려면 가장 먼저는 나 자신부터 깨어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인, 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성세대, 누군가를 이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누구라도 나를 돌아보아 올바른 행동 가짐을 가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닌 우리 사회를 이끌고 갈 다음 세대를 위한 작은 노력이자 씨앗이 될 것이다.


불언지교(不言之敎)
말하지 않고도 가르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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