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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Sep 07. 2024

앙 단팥 인생 이야기

감동과 따스함이 스며드는...




겨울에 소복이 쌓인 눈의 결정체를 보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고 한다.

모두가 하나같이 다른 모양, 다른 결정체를 하고서 겨울 햇살에 반짝인다.



우리 인생 역시 모두가 비슷해 보여도 다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태어나고 죽는다는 한 가지 원칙은 변함이 없지만 저마다 살아가는 동안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담게 된다. 그 가운데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도 있고, 역경을 이겨낸 감동 스토리도 있다. 그리고 잔잔하면서도 따스함을 전하는 노년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도 있다.


오늘은 그 가운데 일본 국민 배우이자 몇 안 되는 노년 배우인 키키 키린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 '앙 :  단팥 인생 이야기'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영화 '앙 : 단팥 인생 이야기'는 

2015년 제작된 영화로 두리안 스케가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일본, 프랑스, 독일 합작 영화라고 하는데 그냥 일본 영화 본연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제68회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개막작으로 잔잔하면서도 따스한 감동을 전해준다. 



특히 한센인(나병환자) 도쿠에 역의 주연배우 키키 키린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에 다수 출연한 페르소나로 더 유명하다. 1961년부터 연극으로 시작한 원로배우로 노년의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통해 작품 속에 따뜻한 감동과 인생의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키키 키린은 2013년 제36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수상 연설 자리에서 암에 걸린 사실을 공표했다. 키키 키린은 2003년 왼쪽 눈의 망막이 박리되어 실명했는데 영화 '앙 : 단팥 인생 이야기'에서 살짝 눈이 사시처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방암에 걸린 것은 2004년으로 이후 온몸에 암이 전이되었고 2018년 9월, 자택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키키 키린은 2013년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이후로도 왕성한 활동으로 영화를 찍었는데. 2015년 영화 '앙 : 단팥 인생 이야기', 2016년 태풍이 지나가고(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16 인생 후르츠, 2018 모리의 정원, 2018 어느 가족(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찍었고 2018년 영화 일일시호일이 유작이 되었다.


일본 명배우 키키 키린의 연기를 보다 잘 감상할 수 있는 영화 '앙 : 단팥 인생 이야기'는 한센인으로 한평생 갇혀 살아온 어느 노년이 세상을 등진 한 남자의 삶에 새로운 싹을 틔우는 따뜻한 감동과 메시지를 전한다.




앙 : 단팥 인생 이야기(Sweet Bean)

드라마

개봉일 / 2015. 09. 10.

러닝타임 / 113분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능

감독 / 카와세 나오미

출연진 / 키키 키린, 나가세 마사토시, 우치다 캬라 외





벚꽃이 만발한 어느 날

수줍은 듯 그녀가 찾아왔다.


오전 11시가 되면 작은 도라야키 가게가 문을 연다. 무뚝뚝한 인상에 입술을 꼭 다문 센타로는 연신 수다를 떠는 여학생들이 귀찮은지 도라야키를 하나씩 더 주면서 내보내버린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도라야키 가게. 그곳에서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는 센타로...


그러던 어느 날, 벚꽃이 만발하게 피어난 계절에 한 노인이 찾아온다.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며 자신을 직원으로 고용해 달라고 하면서...


그러나 그녀의 손은 무척 불편해 보였고 애써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시급 600엔도 많다면서 시간당 300엔이면 족하다는 할머니의 이름은 요시이 도쿠에...





센타로는 나이가 76세나 되는 도쿠에를 직원으로 채용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다음 날도 찾아온 할머니는 센타로의 거절을 듣고 돌아가는 길에 자신이 만든 단팥소를 건네준다. 그녀는 센타로가 만든 도라야키는 단팥이 문제라고 말하면서 평생 50년 동안 단팥만 만들었다고 이야기를 전하고 돌아간다.



단팥은 젊은이가 직접 만들어?(도쿠에)

기업 비밀이에요(센터로)


도라야키 맛은 단팥이 생명이야.

빵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단팥에 문제가 있어

이거 맛 좀 봐...(도쿠에)



뭔가 불편했던 센타로는 할머니가 준 단팥소를 쓰레기통에 버렸다가 다시 집어 들고 맛을 봤다. 와우... 이건 진심으로 '생전 처음 보는 맛~~' 뭐 이 정도면 센타로의 마음이 움직이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단골로 항상 찾는 중학생 소녀 와카나에게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와카나 역시 할머니를 채용해 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엄청난 거야. 충격이었어.

맛도 냄새도 내가 쓰는 것과 완전히 달라.(센타로)





시간은 흘러 벚꽃이 모두 지고 푸르른 나뭇잎으로 옷을 입었다.

그동안 할머니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지만 센타로는 내심 할머니를 기다렸다. 


마침내 찾아온 할머니를 반갑게 맞는 센타로는 할머니를 채용하기로 하는데. 도쿠에는 미적거림 없이 다음날 당장 단팥소를 만들기로 한다.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새벽부터 찾아온 도쿠에는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단팥소를 만들며 팥을 제대로 고르는 법부터 불리는 법, 체에 걸러내는 법, 떫은맛을 제거하는 법 등을 꼼꼼하게 알려준다.


평소 업소용 단팥소를 사용해 오던 센타로 입장에서는 

도쿠에가 정성을 들이는 모든 과정은 무척 길고 지루하기도 하지만 그녀가 쏟는 정성에 내심 감동을 받고 있었다. 맛있는 단팥소를 얻기까지 도쿠에는 팥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팥은 모신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팥이 당과 친해질 동안 기다려야 해.

맞선을 보는 거야. 


팥이 으깨지지 않도록 

조금씩 조금씩



이렇게 완성된 단팥소를 넣은 도라야키를 맛보는 센타로는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맛에 감동을 받는다. 도쿠에의 단팥소에는 긴 시간과 정성만큼 너무 달지도 않고 고소하고 깊은 맛이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이야?(도쿠에)

도라야키를 만들면서 하나를 다 먹은 적이 없어요

저는 단 거 싫어하는데. 

도쿠에 씨 것은 맛있어요(센타로)








이렇게 새롭게 시작된 도라야키의 맛. 

이 맛을 본 학생들과 손님들의 입소문을 타고 길게~ 줄을 지어 도라야키를 사가는 손님들.. 문전성시를 이루며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늘 누군가의 성공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


도쿠에의 불편한 소문을 듣고 나타난 사장은 도쿠에가 나병인들이 거주하는 나환자 보호소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며 내보낼 것을 촉구한다. 물론 센타로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도쿠에의 따뜻함과 친절함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녀를 쉽게 내칠 수는 없었다.


센타로는 그 일로 마음이 상해 술이 만취된 상태로 가게를 하루 쉬기로 했지만 도쿠에는 단팥을 만들며 가게 일을 돕는다. 불편한 손으로 사장인 센타로가 없이 손님까지 맞게 된 도쿠에... 이후로 점점 손님이 떨어지더니 이내 가게를 그만두게 되었다.





할머니와 친해진 소녀 와카나는 센타로와 함께 도쿠에를 찾아간다.


한센인이 살고 있는 요양원에 거주하는 도쿠에는 이미 기력이 많이 쇠해진 상태. 그러면서 자신의 옛이야기를 꺼낸다.



와카나, 너 만한 나이에 나는 이곳에 격리되었어.

그리고 수십 년을 갇혀 살았지.

그때 오빠가 손을 잡고 이곳에 데려다주었단다.


15세의 어린 소녀 시절 한센병이 의심되어 사회와 격리된 삶을 살아온 도쿠에는 평생 단팥소를 만들었다. 반면 술집에서 주먹질을 하다 죗값을 치르고 사회를 등지고 살아가는 센타로 역시 마음속으로 사회와 격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서로 다른 세대, 서로 다른 모양으로 살아가지만 두 사람은 왠지 닮아 있다. 그리고 자신의 옛 모습을 가진 센타로를 직감적으로 알아본 도쿠에는 센타로에게 다가가 마음의 벽을 허물도록 도와준 것.



사장님을 처음 봤을 때 눈이 정말 슬펐어.

내가 평생 담장 밖으로 못 나간다고 인정했을 때의 눈과 닮은 사람이로구나

그때 알았지.(도쿠에)



그렇게 와카나와 함께 한센 격리시설에 다녀온 후도라야키 가게를 새롭게 변신시키려는 사장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던 센타로는 시간이 흘러 다시 요양원을 찾지만 그곳에는 도쿠에는 없었다. 폐렴이 악화되 별세한 것.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녹음테이프를 남겼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 듣기 위해 태어났어.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도쿠에)







센타로는 지금까지 새장에 갇혀 지냈던 와카나의 카나리아와 같은 존재였다. 도쿠에 역시 담장 안에 갇혀 평생을 지내야 했던 카나리아였던 것. 그러나 와카나가 카나리아 '마비'를 돌봐달라고 건넸을 때 바로 새장을 열어 자유를 주었던 것처럼 모든 생명은 자유를 갈망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센타로 역시 마음에 시금 장치되었던 사회와 단절되었던 문을 열고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다시 봄이 찾아왔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날, 공원에 자리를 편 센타로는 힘차게 외친다.


도라야키 사세요!!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다.

진심 어린 마음과 정성이 담긴 하나의 행동일 수 있다. 


손이 불편해 삐뚤빼뚤한 글씨체를 가진 도쿠에는 핸드폰조차 없어 편지를 쓴다. 그 진심 어린 편지가 어쩌면 센타로 스스로 둘러친 세상과의 벽을 허무는 단초가 된 것은 아닐까...



사장님, 가게는 요즘 어떤지요.

혹시 기운이 빠져 있는 건 아닌지...


단팥을 만들 때

나는 항상 단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것은 팥이 보아왔을 비 오는 날과 많은 날들

어떻게 바람들 속에서 여기까지 왔는지

팥의 긴 여행을 상상하는 일이지요.


우리 사장님, 잊지 마요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요.


영화 '앙 : 단팥 인생 이야기' 할머니의 편지 중에서



사람마다 저마다의 삶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것이 비범일 수 있고 평범일 수 있다. 그러나 평범하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평범함 속에는 우리가 진짜 배우고 알아야 할 진리가 숨어있을 테니 말이다. 오늘도 우리는 평범한 하루를 살며 각자의 의미 있는 인생 이야기를 써간다. 지금까지 영화 '앙 : 단팥 인생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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