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비의 역사 속 비하인드 러브 스토리
저의 칼이 어찌 살기를 정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대를 지키는 것이오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다. 그 가운데는 삶의 애환도 있고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도 있을 것이고 우정에 대한 이야기도 있을 것이며 국가를 향한 충성에 대한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신분을 뛰어넘지 못한 애절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서 있는 연인을 향한 구구절절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The Sword With No Name)은 명성황후 민자영과 무예별감 홍재희의 실화를 모티브 하여 어쩌면 그랬을지 모를 상상으로 각색해 관객을 역사의 뒤안길로 안내하고 있다.
영화를 수년 전에 관람하고 두 번째 관람하면서 실제 명성황후의 이름이 민자영이라는 사실과 흥선대원군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민비를 죽이려 했다. 이때 왕비인 민비를 도주시킨 사람이 바로 무예별감 홍재희였다. 홍재희는 왕비를 자신의 등에 업고 충청도 장호원까지 도망한 사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명성황후와 무예별감 홍재희의 실화인 만큼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어땠을까'하는 나름의 상상이 더해진다. 실제로 고종은 민자영과 혼례 당시 9살 연상의 영보당 이씨를 총애했고 명성황후보다 먼저 왕자를 낳았다는 사실을 보면 왕가에 시집가 외롭게 살았을 여인의 마음은 언제나 허전했을 법도 하다. 이때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이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The Sword With No Name)은 바로 이런 명성황후와 홍재희의 실화를 바탕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결말까지 애절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상상을 더해 각색한 영화지만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는 이야기. 우리는 역사의 이면에 살아 숨 쉬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불꽃처럼 나비처럼(The Sword With No Name)
드라마, 액션, 로맨스, 멜로
개봉일 / 2009. 09. 24.
러닝타임 / 124분
감독 / 김용균
출연진 / 조승우, 수애, 천호진, 최재웅
무명, 조선의 운명이 될 여인을 만나다
왕비로 간택된 민자영은 궁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와 함께 다녔던 바닷가로 향한다. 자유로움을 벗어나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르는 바다.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새기고 마음을 위로받기 위해 찾아가는 여정에 젊은 '무명'이 함께한다. 자영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무명은 '붉은 꽃부리'라는 뜻을 가진 자영의 이름에 맞게 붉은 '해당화'를 꺾어 선물하고 그녀로부터 정표인 붉은 댕기를 받는다.[ 이 댕기는 무명이 항상 지니고 다니는데 결말에서 사용된 무기를 자신의 손에 묶을 때도 끝까지 함께 한다.]
운명을 따라 먼 곳으로 가야 하는 16세 소녀 자영은 사실 두렵기만 하다. 그래서 슬프거나 아플 때 마음의 위안을 받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거닐던 바닷가를 찾았던 것. 이번에는 아버지가 아닌 무명과 함께였다.
무명은 물새 알을 보여주면서 자영의 마음을 위로한다.
새끼들은 알에서 깨자마자 물기를 털고 날아갑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죠.
참 용감하지 않습니까?(무명)
역사 속 실화 이야기 /
민자영은 1851년 경기도 여주목에서 아버지 민치록과 어머니 한산 이씨 사이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실제 1남 3녀였지만 모두 어린 나이에 죽고 외동으로 자랐다. 아버지 민치록이 죽기 전까지는 유복한 생활을 했고 이후 감고당 이씨와 함께 살다 1866년 3월 21일 16세의 나이로 고종과 혼인한다. 이때 고종의 나이는 15세였다. 그러나 고종은 혼례 당시 9살 연상인 영보당 이씨를 총애하고 있었던 터라 아무래도 민비에게 소홀한 면이 있었다.
이런 상황을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The Sword With No Name)에서 혼인 첫날밤, 민자영을 홀로 두고 고종이 영보당으로 가버리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 곁을 지키고 싶은 무명
궁으로 들어가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The Sword With No Name) 속 무명은 무척 당돌하고 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출중한 무예 실력을 갖춘 그는 살인청부업을 하며 유유자적 숨어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민자영을 만난 후로 사랑 앓이를 하며 모든 삶이 180도 바뀌고 마는데. 그녀를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고, 곁에 있고 싶은 마음에 흥선대원군을 찾아가 금군에서 일하기를 청한다.
미천한 일개 군병인 무명과 한 나라의 왕비인 자영은 서로 멀리서 바라볼 뿐 가까이 갈 수도 없도 만질 수도 없지만 같은 공간에서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서로 의지가 되는 사이가 된다. 무명은 어떻게든 자영 곁에 머물고 싶어 그녀의 호위무사가 되길 청한다.
저의 칼이 어찌 살지를 정했기 때문입니다.(무명)
그게 무엇입니까.(자영)
그대를 지키는 것이오.(무명)
민비를 죽이려는 자들
자영을 지키기 위해 도망치는 무명
흥선대원군의 섭정이 지속되자 명성황후는 남편 고종이 직접 조정을 이끌도록 독려하며 힘을 실어준다. 이때 운요호 사건이 일어나면서 일본과 불평등한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과 통상조약을 맺어 개항을 한다.
이후 외국 문물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개화파와 척화파의 갈등이 고조되고 조선을 신물물로부터 지키겠다는 척화파를 주장하는 흥선대원군의 눈에는 신문물을 거침없이 받아들이는 민비가 눈엣가시가 된다. 이때 민비의 친정어머니인 감고당 이씨는 민승호 암살사건 때 사망하고 민비를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니. 임오군란으로 왕비를 죽이려는 자들로부터 피하기 위해 무명은 자영을 업고 도망친다.
그리고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둘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데... 넘을 수 없는 신분의 차이. 함께 도망가자고 말하는 무명과 달리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가야 하는 자영의 운명은 아프기만 하다.
역사 속 실화 이야기 /
고종이 왕이 된 후에도 섭정으로 권력을 휘두른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사이는 썩 좋지 않았다. 이에 명성황후는 1873년 고종 10년 때 고종이 친정(親政) 하도록 도왔다. 이후 1875년 강화도에서 운요호 사건이 일어나면서 일본의 강제에 의해 강화도 조약이 체결, 이후로 서양 국가와 통상조약을 맺으면서 다양한 신문물이 들어왔다.
고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신식 군대를 창설할 필요를 느껴 오군영에서 80명을 선발, 별기군을 창설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국방비를 증액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자원을 사용한 결과 구식군대인 오군영의 운영비는 턱없이 부족하게 되었고 참다못한 오군영 군인들은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임오군란이다.
군사들은 반란죄를 피하기 위해 흥선대원군을 배경으로 삼았고 궁으로 향한 흥선대원군과 군사들은 별기군을 창설한 민겸호와 김보환을 죽이고 왕비인 민자영을 죽이려 했지만 무예별감으로 있던 홍재희가 명성황후를 궁녀로 변장시켜 직접 등에 업고 충청도 장호원까지 도망쳤다.
이때 조정을 장악한 흥선대원군은 민비가 죽었다고 선포하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명성황후는 고종에게 자신의 살아있음을 알리고 궁으로 복귀한다.
고종의 질투,
외롭게 지켜야 하는 무명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The Sword With No Name)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무명과 자영은 다시 궁으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고종의 의심과 질투에 맞서야 했다. 고종은 그동안 왕비에 대한 애절한 마음이 없었지만 언제나 왕비 곁에 맴도는 무명을 보며 질투심에 휩싸인다. 왕비의 마음 역시 자신이 아닌 무명에게로 향한 것을 알기에 고종은 보란 듯 무명에게 힘과 권력을 행사하는 못난 모습을 보이는데...
이후 궁에서 쫓겨난 무명은 허무한 마음을 술로 달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민간에 떠도는 왕비와 무명에 대한 소문을 벗겨내기 위해 다시 궁으로 향한다. 조정으로부터 쫓겨난 흥선대원군과 고종의 대결. 그 한가운데 무명은 왕비를 지키기 위해 홀로 싸움을 한다.
그 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은 없습니다.
하지 않으신대도 괜찮습니다.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민자영)
하겠소!
그대가 찾을 수 없는데 내가 살아 무엇하겠소.
그리고 살아남겠습니다.
살았으니 이리 보지 않습니까.. 마마.(무명)
너희들 때문에 마마께서 힘드시다.
너희들 때문에 마마께서 괴롭다!
움직이는 자는 모조리 목을 벨 것이다!!(무명)
친러 정책에 반발한 일본의 만행
민비를 시해하려는 일본 낭인과 그에 맞서는 무명
대한제국은 일본의 손에 쉽게 넘어가지 않기 위해 친러정책을 펼친다. 이를 고깝게 여긴 일본은 친러 정책의 중심에 있는 명성황후를 죽일 계획을 세우고 궁궐로 향하고 이를 알게 된 무명은 왕비를 지키기 위해 달려간다.
늙은 여우를 단칼에 무찔러라.
조선의 왕비를 암살해
왕비를 본보기로 무참히 죽일 것이다.
무명은 절박한 위기에 처한 자영에게 찾아가 함께 도망가자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을 당당히 맞설 준비를 하는 왕비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손수 지은 갑옷을 무명에게 전하는데...
지금 장군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아십니까?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같이 도망가고 싶어요.
장군, 용서하세요.(민자영)
두려움이 여기까지 전해집니다.(무명)
그래요. 두렵습니다.
너무 두려워서 장군을 볼 수 없어요.(민자영)
두려워 마시오.
아무 일 없을 것이니
나만 믿으시오(무명)
처절한 싸움 끝에 총을 쏴대는 일본인들 앞에 쓰러진 무명은 흥선대원군의 호위무사 뇌전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하게 되고 명성황후의 내전까지 침입한 일본 낭인들은 무참히 궁녀들을 죽여버린다. 이때 무명은 왕비를 지키기 위해 달려들어와 끝까지 함께한다.
결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왕비를 지키기 위해 발등에 칼을 꽂아 꿋꿋하게 서서 죽는다. 그가 왕비를 지키기 위해 가지고 다닌 무기에는 자영의 붉은 댕기가 매어있다. 죽어가는 무명의 숨결을 느끼며 흐느껴 우는 민자영은 눈물을 거두고 말한다.
나는 너희가 두렵지 않다.
절대, 오늘을, 나를 잊지 말거라.
나는 조선의 국모, 민자영이다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불꽃처럼 타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봄날 무명이 자영을 만나러 궁에 입궐해 가마를 따라가던 날, 두 마리의 나비가 서로 즐거운 날갯짓을 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만약 두 사람이 다른 시대, 다른 환경에서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죽음을 불사하고 사랑한 여인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남자의 이야기는 아픈 시대, 역사 속에서 있을 법한 처절한 사랑 이야기였다. 이루지 못할 사랑이지만 어느 봄날 즐겁게 날아가는 한 쌍의 나비처럼 아름답고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 역사 속 이면에 어쩌면 있을지 모르는 슬픈 이야기를 영화로 만나는 것은 매우 독특한 경험이 될 것이다.
역사 속 실화 /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경복궁을 점령한다. 이때 급진개혁파들이 조정에 들어오면서 온건개혁파와 함께 갑오개혁을 시행하고 어지러운 국제정세에서 힘을 키워가는 러시아에 주목한 고종과 명성황후는 친러정책을 펼치며 일본을 견제했다.
이때 일본에서는 대한제국을 러시아에 빼앗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퍼지면서 민비를 시해할 암살음모를 계획한다. 당시 일본 공사로 있던 이노우애 가오루는 후임으로 임명된 육군 중장이었던 미우라 고로와 함께 명성황후 암살을 시행하는데. 일본 낭인들과 함께 궁으로 침입해 명성황후를 살해한다. 그리고 시신을 불에 태워버린다. [영화 결말에 두 사람을 함께 불태우는 장면은 실화를 모티브로 한 듯]
이때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를 등에 업고 도망쳤던 홍재희는 을미사변 당시 훈련대장으로 광화문에서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홍재희의 죽음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을미사변 때 일본군의 침입에 대항하다 죽은 것으로 [고종실록]에서는 광화문 밖에서, [한국통사]에서는 궁궐 안에서, [대한계년사]에서는 궁궐 안에서 칼을 맞고 죽었다고 하였고, [매천야록]에서는 총을 맞고 쓰러진 뒤 죽었다고 되었다.
[매천야록]에 의하면 홍재희는 "졸병에서 일어나 높은 지위에까지 올랐는데, 인품이 염결하고 근신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The Sword With No Name)에서도 무명 역시 졸병에서 시작해 장군까지 올랐던 것으로 보아 역사 실존 인물 홍재희를 모티브 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랬을 수도 있는 애절한 사랑이야기. 우리는 그 시대를 직접 살아보지 못했으니 오직 두 사람만이 아는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민비 입장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그 머나먼 길을 등에 업혀 동행했다면 연민과 사랑이 싹트지 않았을까... 고종에 비해 훨씬 남자답고 묵직한 인품이었기에 당연지사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더 큰 전체를 바라봐야 하는 국모였던 명성황후는 개인의 행복과 안위를 택하기 보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거대한 무게를 짊어진 운명을 받아들였다.
사랑하는 연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남자와 그 사랑을 알면서도 국모의 자리를 지켜낸 여인의 사랑 이야기... 결말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The Sword With No Name)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