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옥 Nov 04. 2024

<토닥토닥, 거울 앞에서>

<자넨, 비타민이야.>

  

<자넨, 비타민이야.>     


 ‘형수님은 엄마랑 같아.’ ‘형수님은 엄마랑 같아.’ ‘형수님은 엄마랑 같아.’

혹이라도 잊을까? 수시로 반복하며 강조하던 그 형수님이 전화했다. 열흘 전에.  

   

 어떻게, 잘 지내는지? 얼굴을 보고 싶지만, 바빠서 힘들면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전화하셨단다. 자네 시숙이 요양 등급을 받았어. 나도 요양 등급을 받았고. 이제는 내가 살림살이도 못 하겠기에 윤희를 오라고 했다. 아마 이번 주에 올 게다. 내려오면 연락하겠지만 시간 내어 얼굴 한번 보자. 자네는 비타민이야. 열심히 사는 이야기 들으면 나도 덩달아 기운이 나곤 했는데. 모두 사는 게 바쁘니.     


 시월의 마지막을 넘어 새달 첫째 날. 우중충한 날씨에도 산수유 빨간 열매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아파트 화단의 산수유 사이로 참새 한 마리가 오르락내리락. 야, 너도 고민이니? 친구랑 놀까 말까? 어쩌지? 그래. 누군가 말했지. 갈까 말까 하면 그냥 가고. 할까 말까 하면 그냥 하라던데. 


 그래, 그냥 가자. 오만 원권 지폐 두 장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스파크를 몰고서, 감천으로 새로 난 도로를 이용하면 딱, 10분 거리.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마음이 멀면 지척도 천리라더니 이 거리를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3년?      

 

 윤~~희야. 안녕? 김천 시민으로 온 거니? 그래. 환영한다. 엄마 아빠는? 차 문을 닫기도 전에 너스레를 떨었다. 시간은 잘 맞춘 것 같았다. 점심시간을 막 지나서 소화를 위해 잠시 식탁에 머무는 시간. 


 그래. 왔구나. 잘 지냈지? 바쁜 줄은 알지만 얼굴 보니까 좋네. 환한 얼굴로 반기는 목소리에 미안한 맘이 살짝 스친다. 커피 좋아하지? 윤희야. 작은엄마. 커피랑,  포도도 한 송이 가져와라.     


 우리 형님, 올림머리 하면 엄청 우아했는데 짧은 커트도 예쁘네. 요양 등급 소식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바깥바람 안 쏘이니 하얀 피부도 보기 좋고요.    

 

 어떻게 사니? 건강은? 애들도 다 잘 있지? 일은 여전하지? 요양 일은 어때?    

 

 음~~. 생활 보고할까요? 예전부터 제 기준은 낮았으니 그다지 힘들지 않아요. 아니, 아주 넉넉한 편이지요. 친구나 아는 사람이 보내주는 쌀이 있어서 아직 쌀값을 모르고 사네요. 고마운 마음에 가끔 고기 한 근쯤으로 물물교환? 하지요. 그냥  저 혼자 생각만으로 물물교환요. 방문 요양 어르신 댁에서 넘치는 것은 덤으로 저에게까지 연결되기도 해요. 가지, 호박, 부추, 고추까지. 갖가지 채소가 있고. 푸드뱅크에서 들어오는 생필품을 종종 얻어 쓰고요. 우리나라 좋은 나라잖아요. 이웃 간에 서로 나누는 정이 여전하고. 간장, 된장, 고추장도 넘치죠. 작은 병에 하나면 몇 달은 지나니까요. 반찬도 무, 하나면 일주일은 가지요. 깍두기에. 지지고. 볶고. 무-국까지. 콩밥. 보리밥, 귀리밥. 콩나물밥. 무-밥. 입맛대로 해 먹어도 생활비를 계산한다는 게 웃기죠. 하여간 생활비가 거의 들어가지 않아도 넉넉한 살림살이지요. 

    

 야. 그래도 먹고 살자고 일도 하는데. 식비가 너무 적다는 것은 좀~ 그렇다.     


 그럼, 2부를 알려 드릴게요. 살짝 엇박자로 나가는 살림살이요.

 가끔, 혼자 먹는 밥이 짜증이 난다. 뚜렷한 이유가 없이 우울하다. 만사가 귀찮아, 방구석에 콕- 하고 싶다. 그러면 일단 집을 나서죠. 평소엔 전혀 관심이 없던 색조 크림이라도 바르고, 미장원에 가거나. 책 한 권을 들고 카페에 가지요, 갖가지 예쁜 먹거리. 만만한 토스트가 있지요. 제대로 된 식사 시간을 가지려면 쿠우쿠우로 가고요. 평일 점심은 할인도 되잖아요. 어느 누구도 마주치기 싫다. 그러면, 구미로 가지요. ‘금오랜드’를 지나서, 상가로 주차장에 가면 하루 종일 차를 세워도 주차비는 500원. 저수지 둘레길을 돌아 나오고. 가끔. ‘다향’엘 가기도 하지요. 금오산이 바로 보이는 찻집인데 연잎으로 싼 찰밥이 나와요. 후식으로 ‘차’는 공짜. 그 동네도 싫으면 동아 백화점. 눈으로 쇼핑하고 애슐리에서 한두 시간은 넉넉히 보내지요, 식사하고 차를 마시고, 어때요?     

 듣기만 해도 좋네, 내 스트레스까지 제대로 풀리는 것 같아. 자네는 언제라도 씩씩해서 좋아. 혼자서 그렇게 다니나? 그때그때 다르죠. 혼자서. 친구랑. 때론 예쁜 서희랑.     


 그럼. 3부도 알려 드려요? 마음 챙김의 비용이요.

 스파밸리요. 연회원으로 5층의 체육관 이용이 가능하고. 찜질방, 사우나는 당연하고. 필요한 수건도 주니 오다가다 들릴 수 있지요. 일 마치고 들러서 운동하고, 사우나 들렀다 오면 되지요. 저는. 집에 실내 자전거가 있어 체육관 이용은 대개는 건너 뛰지만. 

 시립 도서관의 독서 마라톤. 올해로 열 번째 완주했네요. 더러는 요약하고 녹음해서 유튜브에 올렸어요. 딸내미가 듣고 자극을 받았으면 하는 것만 골라서. 어느새 백 권을 훌쩍 넘었네요. 책을 읽다가 쉬면서 차 한잔 마시고. MOOC 강의를 듣지요. ‘위대한 수업’을 주로 듣는데, 세계의 유명한 분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뿌듯한지. 

 하루를 마무리할 때면 피아노를 치지요. 주로 찬송가를 쳤는데. 요즘은 옛 피아노 교본을 찾아 연습하고 있어요. 가끔 친구가 오면, 모차르트 소나타를 펼쳐 한쪽을 치면서 자랑도 하지요. 그저 장식품으로 자리 지킴 하는 피아노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고요. 얼마나 신이 나는지. 상상이 되세요? 

 또 있어요. 이제 3개월이 지났는데. 실제로는 6개월이 지난 것과 같아요. 화실에 다니거든요. 주 1회 수업이라는데. 주 2회로 배우고 있어요. 물론 회비는 곱으로 주지요.     


 야, 자넨 정말 여전하네. 진짜 비타민이야. 자넬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니까. 

    

 예전에. 미술 치료 상담 교수님이 하신 말씀을 많이 생각해요. 울며불며 통통 뛰며, 팔팔하게 살라고 하신 것을요. 또. 책을 읽으니, 생각은 많지요. 제 인생의 마무리 시간이 되면, 어떤 생각을 할까? 고민하라는 말이 많더라고요. 설마하니 방문 요양을 더 할 걸. 하는 후회는 안 할 테고. 돈을 조금 더 모을걸 하는 후회도 안 할 거구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있어요. 피아노나 미술, 예전에는 꿈도 못 꾸던 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 전 모든 게 감사 해요. 4부는. 다음으로 미룰게요. 기대가 있어야 또 만나고 싶어질 테니까. 윤희에게 작은엄마가 본이 되려나? 하는 생각도 있고요.    

  

 오, 하나님. 

 너무 말이 많았지요? 이런저런 남의 이야기에 휘둘리려나 하는 마음에 혼자서 마구 떠들었네요. 바라기는, 잘못 말한 게 있다면, 그들의 기억에서 싹- 지워주세요. 

 잠자리에 들기 전, 기도했네. 엄청 간절함으로. 20241101.     

작가의 이전글 비밀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