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정률 Mar 03. 2024

결혼식에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음악이었다.

나의 웨딩 BGM 리스트를 기록한다


나와 나의 큰 짝꿍은 비슷한 점이 있었는데, 쇼핑을 긴 시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화려한 쇼핑쇼와 같았던 결혼 준비는 그런 이유로 무척 빠르게 지나갔다. 촬영은 셀프, 식장은 맛있어야지, 드레스 고르는 샵은 단 한곳, 신혼여행은 가장 먼곳, 나머지는 플래너님께.


그럼에도 쉽지 않았던 결혼이라는 프로세스에서 가장 긴 시간 고민하고 결정하기 어려웠던 것은 "결혼식에서 흘러나올 적절한 음악"이었다. 몰개성한 한국결혼식에서 유일한 개성의 표현이며 동시에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예고편이 바로 음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꽤나 소중했던, 그리고 몇몇 알아봐주는 하객들이 고마웠던 결혼식 BGM 리스트를 기록으로 남겨둔다.


#1. 화촉점화 입장 : 로큰롤인생OST - Fix you (coldplay)
#2. 신랑 입장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OST - Hooked On a Feeling (Blue Swede)
#3. 신부 입장 : 인어공주 OST - Part of the World
#4. 혼인 서약 : 말할 수 없는 비밀 OST - Lu Xiao Yu
#5. 행진 : 라이온킹 OST - Hakuna Matata
화촉점화 입장 : 로큰롤인생OST - Fix you (coldplay)


결혼식에는 왜 화촉점화를 하는 걸까, 어색한 양가 어머님이 손을 잡아야할까 말아야할까, 웃어야할까 말아야할까를 고민하며 빠르게 걷고 한마디도 없이 사라지는 걸까, 꼭 해야하는 걸까,


내가 가장 아끼는 Fix you, Young@Heart Chrous


화촉점화를 식순에 빼지 않고 하게 된 것은 얼핏 찾아본 그 의미 때문이었고, 이 음악을 틀 수 있기 때문이었다. 화촉점화는 - 출처는 불분명하다 - 세상에 자식을 내어준 어머니가 또 다른 세상으로 자식을 안내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몸에서 품고 또 그들의 힘으로 어두운 세계에서 꺼내준 것처럼, 다시 불을 들고 어두운 공간에서 첫 걸음을 내딛는 것은 엄마이다. 탄생의 순간을 반복하는 '재탄생의 순간'.


우리 결혼식의 첫 순서, 빛을 들고 걷는 것은 엄마가 해줬으면 좋겠어. 그럴 땐 이 노래 뿐이었다.   


Lights will guide you home

빛이 너를 집으로 인도하고

And ignite your bones

너의 뼛속까지 따뜻하게 할거야

And I will try to fix you

내가 너를 치유해줄게


신랑 입장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OST - Hooked On a Feeling (Blue Swede)


가끔 같이 사는 사람인데도 갑자기 취향을 알게 될 때가 있다. 남편이 이 음악을 고를때가 그랬다. 그는 제법 망설임 없이 노래를 가져왔는데, 너무도 선명한 것이었다. 


그정도로 가오갤의 팬이었더냐 너! 물론 너의 프사는 늘 그루트였지만. 아이엠그루트.


https://youtu.be/7WKqc-bxiHY

뚝딱이는 짝꿍과 상당히 잘어울렸다


아마도 우가차카 우가우가로 검색해도 나올 이 음악, 의외로 그의 사랑하는 단순한 방식과 묘한 긍정적임과도 닮아 있었다. 그는 남몰래 걸음까지 계산하며 자신만의 연출을 계획했으나, 고도의 긴장과 땀으로 이미 풀려버린 헤어메이크업 등등의 이유로 눈이 부신 속도로 걸어가 버렸고,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다만 몇개의 포즈가 그의 노력을 증명했을 뿐이다.


Im hooked on a feeling

Im high on believing

That youre in love with me


신부 입장 : 인어공주 OST - Part of the World

후보는 세곡 이었다.

하나.  Sarah McLachlan - Ordinary Miracle

둘. Julie Andrews, Bill Lee-Something Good

셋. Jodi Benson, Parts of Your World


https://youtu.be/SXKlJuO07eM

슬픈 엔딩을 바꿔나가는 것이 여자의 숙명


사랑 때문에 물거품이 되기로 선택한 공주도, 천방지축 공주도, 결국은 사랑이라는 선택으로 인해 무언가를 배우고 그것 때문에 세계가 변해버린다. 스스로 세계를 찾아가겠다고 나서는 일, 자기가 태어난 세계가 완벽하다고 하더라도 다른 바깥의 세계가 궁금해지는 일, 왠지 결혼과 닮았다.  


Bright young women Sick o' swimmin' Ready to stand

헤엄치는 게 싫증 난 명랑한 소녀가 일어설 준비가 된 것을

And ready to know what the people know

나는 사람들이 아는 것을 배울 준비가 되었어


혼인 서약 : 말할 수 없는 비밀 OST - Lu Xiao Yu


영화의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루 샤오위'는 길 위에 잠깐 내린 비, 가랑비를 말한다고 한다. 잠깐 내리지만 아주 오래 남은 잔상이다.   

https://youtu.be/iNiDc_bfKxI


피아노 건반 위로 하나의 손이 더해지는 장면은 아름답다. 혼자 연주하던 음악을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아름답지만은 않을지도 몰라도 삶을, 때로 선명하게 해준다고 믿는다. 결혼에 대한 나의 결심이 그랬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혼인서약서가 많이 돌아다닌다. 꼭 자신의 문장으로 고쳐쓰길 권하고 싶다.


행진 : 라이온킹 OST - Hakuna Matata


가장 쉽게 고른 것은 결혼행진 곡이다.  

그러니까 우리 "하쿠나 마타타" 하며 살자, 그게 우리의 철학이지. 생각이 많아 늘상 진지한 쪽과 보기보다 예민한 쪽이 만나 늘상 웃으면 살았으면 하는 다짐이랄까, 나름의 퍼포먼스로 준비했는데 퇴장하면서 추는 춤이다. 딱히 리허설로 하지 않았는데, "하쿠나 마타타"에 저절로 움직였다.  


https://youtu.be/EgqQSuwYpA0?si=eVjnb-2thCnOwJcY


하쿠나 마타타(스와힐리어: Hakuna matata)는 말 그대로 옮기면 "문제 없다"라는 뜻이다.  스와힐리어로 Hakuna는 "없다." Matata는 "문제"라는 뜻이라는데, 정작 스와힐리어에서 자주 쓰는 표현은 아니라고?


어쨌거나 우리는 결혼기념일마다 듣는다, 그리고 자주 외친다 - 이 또한 노력이 필요한 일로 변하고 있다는 걸 고백한다. 그럼에도 다짐의 문장이 노래라는 건, 노래하며 마주치는 눈빛에 조금 더 사랑스러움을 담을 수 있는 일이다. 다음에는 우리가 싸울 때 엔딩곡으로 써보아야 겠다도 다짐을 보태어 본다.


Hakuna Matata!

하쿠나 마타타!

Ain't no passing craze

잠깐의 열광이 아니라네

It means no worries

걱정 없이 살란 말이네

For the rest of your days

남은 여생 동안

It's our problem-free philosophy

우리의 인생 철학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