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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정률 Mar 11. 2024

그러나 분홍은 죄가 없다.

스님의 옷장이 습격당했다.

옷장이 습격 당했다


"스님이세요?" 


누군가 나의 옷장을 보고 이렇게 한줄평을 내었다. 당연히 나에게 그에 반증할 만한 옷이 한벌도 없었다. 어두운 흰색과 희끗한 회색, 어두운 회색, 가끔 청, 기분 낼 땐 나무색, 그리고 온통 검은색과 또 다른 검은색과 재질이 다른 검은색. 어떤 옷을 사도 어떤 옷과도 입을 수 있을 만큼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옷장이라고 자부했지만, 약간의 명도와 두께만 달리하는 옷장의 주인은 어느덧 다른 색을 고를 수 없을 만큼 이미 내성적이었다.


출산을 앞두고 선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밝은 색들과 친해진 적 없던 소심함이 야속해졌다. 전에 없던 색채가 침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홍이었다. 축하의 말만큼 많이 들었던 말은 "성별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고, 나의 작은 짝꿍들은 그 색이 대표하는 성별의 주인이었다. 출산 선물은 주로 옷이나 신발, 모자, 양말 같은 입고 쓸 수 있는 것들이었다. 감사한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마음 저 너머에 당혹감과 두려움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햇빛을 가리는 손바닥만한 모자와 가운데 손가락 길이의 신발, 레이스가 달린 양말과 모자, 일명 우주복으로 불리우며 기저기 갈기 쉽게 버튼으로 조작되는 아기옷들, 리본을 달고 있는 토끼 등등. 그것들은 진한 분홍이거나 연한 분홍이거나 순백의 하얀색이었다.


흑백의 초음파로 심령사진쯤으로 여겨지는 이미지들이 순식간에 구체화된다. 한번도 안아보지 못한 인간을 위한 필수품들은 막연한 기분을 준다. 손바닥 몇개 만한 옷들이, 길게 잡아도 내 팔뚝만한 인간이 정말로 세상에 나올 예정인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늠되는 듯하다가도 이토록 작은 인간을 안아올릴 걱정에 공포스럽기도 하다.


게다가 이 인간의 옷은 내 옷장과는 다르게 준비되고 있다. 드디어 스님의 옷장에 색채가 등장하게 될 예정인 것이다. 분홍의 화려한 베리에이션들은 지독하게 말랑하고 괜시리 등이 간지러워지는 기분의 분홍으로. 색이 밀어넣는 한 인간의 형상에 마음이 울렁거린다. 분홍의 습격이었다.


색칠되어진 세계에서 살아가기


내 세계가 킨포크 때로 누아르여도, 아이는 엘사의 세계에 산다. 샤스커트가 바람이 정처 없이 휘날리는 드레스와 번쩍거리는 스팽글이 수놓여진 티셔츠, 마치 공주가 된 것 같은 티아라로 꾸며진 세계다. 선물의 색들도 저마다 주장한다. 여기 무한한 '분홍'의 세계가 있어! 그리고 그건 너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나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너를 찾아갈꺼야.


자라는 어느 순간 무심코, 나도 들었던 이야기이다. "남자는 파랑이고, 여자는 분홍이지. 그러니 너는 저쪽으로 가"라거나. "왜 너는 치마를 입지 않느냐"는 물음이거나, "손님이 오셨으니 커피를 좀 가져와"라는 심부름이거나. 하루 종일 숨을 참아 배에 힘을 주어야만 했던 H라인 스커트를 입은 날도, 회사 발표일에는 어떻게든 아이라인을 그려보려 분투했지만 결국 팬더가 되어야 했던 날도, 신지도 않던 뽀족하고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나가서는 지하철 바닥에 그냥 신발을 벗어 던질 수 밖에 없었던 날도. 비슷하다.


내가 무엇이기에, 당연히 바깥의 어떤 모양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장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언제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게 이미 알고 있었고, 따라하려고 애썼고, 숱하게 해내지 못했다. 그런 날은 뭔가 모자란 사람인가, 저사람은 나를 비난 하는 것인가 따위의 생각들로 마음이 시끄러웠다. 가끔은 시선들 속에 짜릿했고, 주로는 포기했다고 무신경하게 고백했으며, 때로 전전긍긍했다. 어떤 식으로든 분류하는 말들이었다.


세계는 이미 어떤 문장들로 가득차 있다. 그 문장들은 많이 색칠되어 있다. 그리고 고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때때로 그것은 선택지를 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반드시 통과해야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홍은 죄가 없다


작은 짝꿍이 처음으로 좋아한 색은 '파란색'이었다. 왠지 모를 짜릿함이 있었다. 아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파란색 옷을 사모으면서 해방감과 쾌감을 느꼈다. 제법 머리가 자라 또래가 생긴 아이가 어느날 말했다. "엄마, 이제 색이 있는 옷 좀 사주라." 스님은 또 할 말이 없다. 스스로 빨간 하트가 엄청나게 반복된 상하복 한벌을 함께 골랐다. 그래서 이악물고 샤랄라한 퍼프 소매의 옷을 사주니, 이렇게 말한다. "난 너무 예쁜 건 싫어"


다시 좋아하는 색을 물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가 좋아하는 '분홍색'이 좋다고 한다. 어제는 '노랑색'도 꽤 괜찮은 것 같다고, 오늘 잠들기 전에는 "나는 하얀색이 좋아"하고 고백한다. 나는 마음을 굳건히 하기로 다짐한다. 나는 이제 변화무쌍한 색체의 세계에 살아야 한다.


알다시피 분홍은 죄가 없다. 무엇이 분홍이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엇이 분홍이라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라는 것도 옳지 않은 문장일 것이다. 누군가가 무엇을 욕망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세계에 놓일지라도, 그 말들이 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날이 있더라도. 


그저 나는 내가 사랑하는 하나의 인간이 세계의 문장이나 색체에 묶여 살지 않기 만을 바랄 뿐이다.


+

큰일이다. 그 아이가 드디어 티니핑을 알아버렸다.

로미 공주야, 넌 왜 싸우러 가면서 드레스로 갈아입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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