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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정률 Jan 24. 2024

그 녀석 때문에 새벽 택시를 탔다

엄마가 자꾸 나쁜 상상을 한다면


꺼진 불을 보러 왕복 택시비를 냈다


     겨울이면 손발이 곱아버리는 탓에 전열기는 필수품이었다. 사무실에도 자리를 덥히는 싸구려 전기방석이 하나 있었다. 늘 그 녀석이 문제였다. 새벽 한두 시나 되어서야 게으르게 씻고 이불 속에 들어가 있다 보면, 한 가지 생각이 날 압도했다. "전기방석은 껐나?" "당연히 껐을 거야, 습관의 동물이니까" "불이 나서 사무실이 다 타버리면 어쩌지? 화재 보험 따위는 없을 텐데 내가 다 물어내야 하는 거 아니야? 당장 회사에서 잘리겠지.."등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인터넷에 화재 소식이 있는지 한참을 살펴보다가도 안되면, 택시를 불렀다.

    운동복 바지에 팔이 겨우 들어가는 두꺼운 패딩에 몸을 끼워 넣고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사무실에 갔다. 깜깜하고 냉기가 바닥에 깔려 있는 사무실은 언제나 아무 일도 없었다. 적은 월급에 먹는 것도 아끼던 시절, 택시비가 아까워 집까지 걸어갈까 했는데 그날따라 너무 추웠다. 그날의 자책엔 여전히 냉기가 있다.


   여름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선풍기는 전봇대 옆에 누가 버리고 간 구식이었고, 벅벅 닦아도 먼지가 지워지지 않았다. 에어컨이 없는 방에 유일한 냉방장치였다. 추위보다는 더위에 자신이 있었다. 굳이 돈을 들이지 않고 살지, 자원도 아끼고, 했다. 그러나 그 녀석이 또 문제였다. 타 지역으로 출장을 가야 해서 기차를 탔다. 앉자마자 다시 시작되었다. "그 선풍기는 낡아서 계속 켜 두면 분명히 불이 날 거야." "3일이나 집에 가지 못할 텐데 혹시라도 켜두고 온 건 아니겠지?"

   한참 넋두리를 듣던 짝꿍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자취방 맞은편에 있는 국숫집에 전화를 건 것이다. "혹시 맞은편 건물에 불이 났나요?" 마음씨 착한 짝꿍은 주인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까지는 전해주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야 그도 나도 편안한 며칠을 보냈다.

 

   전기장판을 껐나 확인하느라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지각을 한 것도 여러 번이다. 계좌이체를 잘못했을까 봐 번호랑 이름은 다섯 번씩은 본다. 어린 시절 가족들끼리 차를 타고 멀리 여행 갈 때를 추억하면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도도도 거리는 지면을 울림과 내 머릿속에서 반복되던 나쁜 상상이다. 나의 불안은 구체적인 모양이 있는데, 대개는 질이 나쁘다.


엄마가 하는 쓸모 없는 상상


   모양이 나쁜 상상은 내겐 너무 쉬운 일이었다. 엄마가 되어서는 움직이는 대상이 추가되었다. 인간의 아이는 천천히 자란다. 목을 스스로 가눌 수도 없는 연약한 존재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아이는 뒤집기와 되집기를 동시에 하지 못한다. 그때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행한 사고의 기록은 나의 잠을 빼앗아 갔다. 새근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땐 벌떡 일어나 잠든 아이를 노려보았다. 손가락 하나 보다도 작은 코 밑에 손을 대어 뜨끈한 바람을 느끼고 나서야 다시 누울 수 있었다. 그건 아이가 스스로 몸을 데굴데굴 굴려 잘 수 있는 나이까지도 그랬다. 분리수면은 나에게는 시도하기 어려운 먼 얘기 같았다.


   화장실이 급할 땐 범보 의자 앉혀서 눈을 맞춰야 마음이 편했고, 아이가 깨어있던 잠을 자던 샤워를 하지 못했다. 며칠 동안 파트너가 기다리지 못할 만큼 늦게 올 때는 화장실 문을 열어두고 시린 몸을 빠르게 문질렀다. 하얀 거품이 아슬아슬하게 달려 있는 걸 보는 순간, 문득 아이가 침대 끝내 걸려 있는 상상이 떠올랐다. 거품 체로 수건을 두르고 후다닥 방으로 뛰어갔다.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물을 닦아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 날이면 파트너랑도 싸웠다. "네가 와야 내가 씻지"라고 쏘아붙였지만 파트너는 왜 씻지 못할 일인지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주차장에 나가도 사람이 많은 곳을 나가도 순간 어떤 이미지들이 나를 덮친다. 미아방지 목걸이를 꼭 챙겨나간다. 그러고도 옷걸이 뒤에 숨은 아이를 찾느라 쇼핑몰이 떠나가게 소리친 적도 많다. 가끔은 "안돼 안돼"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할 것 같아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어가면 참는다. 그럴수록 내 자유는 사라지고, 가끔은 같이 사는 사람들의 자유도 없애갈지 모른다. 나는 이제 그것도 두렵다.  


나쁜 상상의 쓸모


   때로 나쁜 상상이 쓸모가 있을 때도 있다. 주로 현장에서 일을 할 때였다. 나는 "뭘 하면 되지?"라는 상상보다는 "이걸 했을 때 안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사람이었다. "비가 와서 젖어버리면 어쩌지?" "사람들이 하나도 안 오면 어쩌지?" "신호가 안 들어오면 어쩌지?" 해야 하는 일 목록 옆에서는 실패하게 되는 가능성의 목록이 같이 만들어졌다. 사소한 실패부터 최악의 실패까지의 목록을 만드는 것도 나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나쁜 상상을 많이 연습한 덕분에 현장 매뉴얼은 A에 따르는 A-1부터 N번까지 번호가 달려 준비물을 챙겼다. 그 일이 일어나게 되면 오히려 "역시 그랬군"이라는 이상한 내적 환호와 함께 연장들을 꺼냈다.


   정체는 없으나 형체는 너무도 불분명한 불안을 가지고 엄마로 산다는 것은 때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심정이다. 아이는 매일 다르게 자라난다. 말이 통하면 더 나아질까 했는데, 그건 자기가 더 중요해진다는 의미였다. 내가 가는 방향과 줄곧 다른 의도와 방향을 가진다. 내가 안된다는 걸 해도 그다지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아이의 예측불가능성은 곧 나의 통제불가능한 불안의 짝꿍이 된다. 나조차도 살기 무서운 세상을 이 아이들이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가끔은 잠이 오지 않는 날도 생긴다. 전쟁의 소식이 들렸을 땐 여자인 제대로 뛰지 못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는 꿈을 꿨고, 기후 위기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는 생존 훈련을 해주는 수업을 맹렬히 검색했다. 후원하는 곳이 늘어가고, 예전의 내가 가지고 있던 세계보다 더 큰 세계를 상대로 고된 상상을 한다.


   불안을 다독이는 법이나 이기는 방법 같은 게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그냥 그 녀석들과 공존하고 있다. 택시를 타고 거품 묻은 몸으로 뛰어나가는 게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는 한 페이지이라기보다는 누군가 같은 속도로 무심히 넘겨주는 책 같다. 다음 것이 떠밀려 오기 때문에 겨우 멈추지 않는 힘만 가지고, 일단은 여기 있어본다. 그것 말고는 내가 아는 방법은 없다. 엄마가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생동하는 고된 상상이 이끌리는 시간들에서 내 손에 잡히는 것들을 먼저 쥐어잡아본다. 되도록이면 아주 소중히 안아본다.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이 나를 압도하지 않도록, 그래서 늘어가는 건 더 깊은 심호흡이다. 자꾸 무섭고, 너무 걱정된다, 말하는 엄마의 작디작은 세상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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