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霜降) : 서리가 내린다
2025.10.2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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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선선
가을의 마지막 절기
<동국세시기>에는 "서리가 내리면 대지가 쉰다" 는 말이 있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에는 추수를 서둘러 마무리 하고 땅이 쉴 시간을 준비한다. 땅의 시간에 매달려 있던 인간에게도 마지막 노동의 시간이 된다. 더러는 보리를 심고 고구마와 감자를 캐내어 찬 계절의 먹거리들을 채비한다. 가을의 마지막 절기, 그리고 겨울을 준비하는 시간.
그러나 수확의 계절은 인간이 손댄 지구의 날씨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상강 전에는 일주일이 넘도록 비가 내렸다. 여름의 장마는 가을의 장마로 바뀌었다. 가을과 장마라니, 계절의 단어들이 혼돈 속에 뒤섞이기 시작한다. 늦고 오랜 비로 전국 각지에서 농작물 피해가 생겨났다. 김장을 담궈야 하는 배추에는 무름병이 생겼고, 사과는 검게 썩었다. 벼들은 길어진 비에 논에서 그대로 쓰러진 채 낟알에서 싹을 틔웠고, 암갈색 반점이 생기는 깨씨무늬 병이 돈다. 이런 재해에 사람이 먹을 쌀알도 부족하고 소가 먹을 볏집도 줄어든다. 대지가 쉬어가는 시간에 아직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을 것이다. 질척한 땅에 트랙터를 밀지 못해 고민하고, 거두지 못하는 한해의 농작물들을 제 손으로 갈아 엎어야 하는 농민들이 비오는 가을 앞에 서 있다.
인간의 시간은 땅의 시계가 아니라 도시의 시계로 바뀌어 진지 오래라, 비와 서리, 더움과 추움이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이 계절들과 날씨들에 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애쓴다.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배추전을 해먹기에 배추가 너무 비싸다고 푸념하게 될 때, 사과 사기엔 내 지갑이 얇다고 서러운 마음이 들 때, 그런 스스로가 철이 없다고 말해본다.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쳐다보며 자신의 땅을 스스로 엎어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먼저 떠올리려고, 눈에 보이지 않은 그 연결들이 항상 우리를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려 한다.
밀린 책과 고구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시간이 훌쩍 지나버려, 결국 밀려버리는 일들이 있다. 우리 가족은 2주일에 한번은 도서관에 가려하는데, 8권의 책 중 하나를 빠뜨렸다. 그 마지막 한권을 반납해야하는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움직이지 않아 10일이 밀려버렸다. 도서관의 책은 가져가지 않은 날만큼 빌리지 못한다. 아마도 내가 약속을 어겨 가져 가지 못한 날짜만큼, 읽지 못한 사람들의 날을 내가 대신 가져오는 것이리라. 나도 읽지 못하는 날들로 갚는 것이다. 오늘은 그 밀린 책을 반납하려고 길을 나섰는데, 도서관이 있는 나즈막한 산의 공기가 왜그랬어 이렇게 좋은데, 라고 말을 건다. 이게 뭐라고, 밀린 일을 처리했다고 조금 개운했다. 어쩌면 가을덕분일지도 모른다.
둘째는 가을이라 고구마를 수확하는 어린이집에서 견학을 떠났고 주렁주렁 달려오는 고구마를 보며 내내 소리를 질렀다. 고구마가 심겨진 땅에서 손에 흙을 묻혀가며 직접 고구마를 꺼내온 아이는 뿌듯하게 맛탕을 해먹자고 말한다. 땅의 일을 견학해야만 볼 수 있는 도시의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 때때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과일이나 쌀, 고기 같은 우리 밥상의 식재료들의 출처가 마트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만나는 세계는 거기까지니까. 하지만 애들만 그럴까? 나 또한 알지 못하는 세계가 저 너머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고구마의 진짜 출처를 확인하는 '견학'은 물론 좋은 체험이긴 하지만, 이것이 단지 체험인 것이 불편하다. 꺼내기만 하는 체험은 진짜 체험은 아니기 때문이다. 싹을 틔우고 물을 주고 김을 메고 그 과정에서 틔우지 못한 싹도 쓰러진 줄기도 우리는 보지 못하고, 그 사이에 내리 쬐는 태양을 견디지도 않는데.
우리에게로 오는 데까지의 수많은 고리들을,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얼굴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아니, 나도 알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 어떻게 하면 그 기록되지 않는 땀들을 상상할 수 있을까. 연체 기간이 끝나면 조금 더 두꺼운 외투를 챙겨 입고 도서관에 가보아야 겠다. 아이들과 같이 읽고 싶은 책을 미리 골라두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