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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Mar 23. 2024

저항을 연기하다 2

새로운 저항의 주체

'이미 예쁘고 멋지게 묘사되고 있는 쪽'으로 가서 무언가 새로운 저항의 깃발을 들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위선자일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문화권력을 장악한)신좌파들이 말하는 저항'에 위선과 기만감을 느끼는 이유이다.


오늘날 무언가 새로운 저항이 일어나야만 한다면, 그것은 제도권 문화권력으로부터 '가장 추하고 못생기게 묘사되는 어떤 부류'로부터 시작됨이 마땅할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역사 속에서 혁명이라고 부르는 많은 것들이 다 그렇게 시작되었으니까. 

(2030남성들, 남성 조커들. 68 혁명 리버럴 질서 이후 이들만큼 매번 못생기고 추하게 묘사되는 이들이 어디있냐)


오늘날 우리가 역사 속 혁명의 시작 주체들에 대해 예쁘고 멋졌다고 배우고 있는 건 그들이 결국 승리했기 때문이며, 당연히 승리가 확정되지 못했던 시점에 그들은 그 사회 속에서 결코 예쁘게 묘사되지 못했다.




'이미 예쁘고 멋지게 묘사되고 있는 쪽'을 편들고 싶어 하는 이들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이들이다. 우파적인 이들이다.(그들 스스로는 진보좌파라고 우겨댈지언정..) 이미 기득권을 장악한 이들의 편을 계속 들겠다는 의미니까. 


"남자 찐따들을 구원할 수는 없어. 그들이 받는 천대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야."라고 너무나 당연히 말하는 '진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오늘날 '진보'가 얼마나 보수화되고 타성에 젖어있는지 절감하곤 한다.



"귀족과 천민의 구분은 어쩔 수 없어."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어쩔 수 없어."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어쩔 수 없어." "타 문화에 대한 거부감은 어쩔 수 없어."라 말하는 이들과 맞서 싸웠던 역사적 투사들을 정신적 선조로 삼겠다는 이들이 "찐따 남성들이 받는 천대는 어쩔 수 없어."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말한다. 


위선자들. 기만자들.

신이여, 보수화되고 타성에 젖어버린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나이다..




한 세대가 지나고, 두 세대가 넘어갈 대 즘, '우리'는 더 이상 못생기게 묘사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더 예쁘고 더 멋지고 더 아름답게 묘사될 것이다. 우리의 후손들은 지금 우리를 "아름다웠다."라고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말했던" 투사들의 뒤를 이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미래가 있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부터 우리에게 당연했던 어떤 것들에 대해 "당연하지 않다."라고 말해야만 한다. 

그럴 수 있어야 한다.  


+저항을 연기하다1 : https://brunch.co.kr/@pmsehwan/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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