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환 Aug 24. 2021

저항을 연기하다

8.15일 이전과 이후

반복되는 말이지만 '저항자'가 되고자 하는 이는 어떤 경우에도 제도권으로부터 아름답게 그려질 수가 없다. 만일 당신이 '진짜 저항'을 원하고 있다면, 당신은 못생겨지고 추해질 각오를 해야만 한다. 당신은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다. 죽거나, 혹은 혁명이 성공할 때까지.


저항자가 예쁘고 멋지게 묘사된다는 건 역설적으로 '저항의 종결'을 의미한다. 당신의 세력이 이미 승리해서 가장 필수적인 문화권력(스피커 권력, 관념 권력)을 장악해 버렸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한 사회의 문화권력을 장악한 이가 그 사회 제도권에서 약자일 수는 없다. 그건 기만적인 위선, 사기극이다. 


다시 말해, 저항자였던 당신이 예쁘고 멋지게 묘사되는 건 어떤 식으로 건 '저항이 끝난 뒤' 일 수밖에 없다. 아직 저항이 진행되는 중인데 그 저항자가 제도권 문화권력으로부터 예쁘게 묘사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언어도단이니까.


...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신좌파 '저항자(?)'들은 언제나 제도권 문화권력으로부터 아름답고 멋지게 묘사된다.(ex : "자, 다음 시사코너에선 남성의 억압에 맞서는 멋진 페미니즘 여성들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어른들의 억압에 저항하는 멋진 불량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영화화되어 극장가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으로 68 혁명 이래 시작됐던 어떤 '저항들'이 종결되었음을 의미한다. 

"예쁘게 묘사되는 저항"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저항은 진짜 저항이 아니라 "연기되는 저항" 일 뿐이다. 애꿎은 이들을 앙시앙 레짐의 하수인으로 몰아붙이고 빨갱이(?) 몰이해서 두들겨 패며 자신들이 마치 멋지고 정의로운 저항자인 냥 '연기'를 시도하는 거지.



8월 15일 이전의 광복군은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취급받았는데, 테러리스트로 취급받던 오직 그때만이 진정한 저항자였다. 물론 8월 15일 이후에도 광복군에 입대하는 이들은 존재했지만 이들은 그저 항일을 연기하러 들어간 연기자였을 뿐, 진정한 저항자로 취급될 수는 없으며 그러해서도 안된다. 


8월 15일 이후에 외쳐지는 "일제 타도"는 더 이상 저항의 목소리일 수 없다. 


...


물론 신좌파사상을 둘러싼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긴 하다. 하지만 68 혁명까지 유효했던 '기득권자-저항자'의 도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간단하게, 이젠 신좌파+리버럴 엘리트 늬들이 기득권자다. 

자, 신좌파와 그 반대자들의 대립 속에 제도권 문화권력으로부터 예쁘고 아름답게 묘사되는 쪽은 보통 어디인가?  


+아프간 구 정부는 '신 탈레반 정부'로부터 서방 미제 침략자 앞잡이, 이슬람을 외면하는 서구 숭배 반역자로 규정된다. 그렇게 정부군에서 저항자로 굴러 떨어진다.   


 




작가의 이전글 단지 전쟁이 증오를 만들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