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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Jul 10. 2024

통제 속의 행복

나의 행복감을 위해 네가 이단 악당이 되어줘.

왕실이나 황실, 종교적 신과 같은 어떤 '전근대적' 산물들, 혹은 민족주의와 같은 가치에 대한 대한 인간의 예속을 추구하는 이들(주로 전통 보수주의)과 논쟁(?)을 할 때, 필자는 보통 "그러한 예속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쁘다."라고 따지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모두에게 그러한 건 아니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러한 예속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많은 어떤 사람들에겐 엄청난 행복감을 준다. 전체주의적이고 절대적인 강한 속박은 실제로 어떤 사람들에게, 주로 자아가 빈곤하고 정신적 혼란을 자주 겪는 이들에게 마약과 같은 강력한 행복감을 준다. 그리고 필자는 바로 '그러한 손쉬운 행복감'이 너무나도 싫다. 




저 하늘에 어떤 숭고한 존재가 있고, 나는 그저 그의 노예로 시키는 것만 따름으로써 충분히 고결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사람을 정말 '편하게' 만들어준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우리의 신께서, 교주님께서, 총통각하께서, 김일성 주석께서 너를 이단자, 반동분자, 빨갱이, 반역자라 하심에 때려죽이라 하셨다고. 이것이 사아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주는지 아는가? 


나는 그 눈빛을, 확신으로 가득 찬 그 행복한 눈빛을 본 적이 있다. 나를 두들겨 패면서, "나는 숭고한 무엇에 따라 숭고함을 실천하기 위해 널 패고 있는 것뿐이야!"라는 그 믿음에 가득 차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고 있는 숭고한 눈빛을 보았다.

그래서, 그래서 필자는 그런 눈빛을 너무나 싫어한다. 혐오하고, 경멸한다. 끔찍하게 증오한다. 때리는 무력의 강도보다 그 확신에 찬 눈빛이 더 고통스러웠다. 때리는 물리적 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믿음으로 이글거리는 눈빛만큼은, 죽어서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그래서 민주진보 리버럴 페미니스트부터 푸틴을 숭배하는 대안우파까지 모두 싫은 것이다.)


자신이 믿는 어떤 숭고함을 외치며 폭탄을 쥐고 적진 한가운데로 띄어드는 행위는, 힘든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종종 너무 쉽기 때문에 혐오스러울 때가 있다. 죽음조차도 불사할 정도로 너무 행복하기에, 그들은 백만 명, 아니 심지어 천만명의 인명을 갈아 마시면서도 끝없이 적을 향해 돌격할 수 있다. 그리고 난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그들의 '손쉬운' 행복감이 너무나 경멸스럽다. 



그래서

그래서 필자는 혹자가 '자유주의적'이라 부르는 그 끝없는 공허의 사막을 더 사랑한다. 

그 어떤 의존할 신성성도 존재하지 않은 채, 끝없는 회의와 의심으로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삶이 더 값지다고 본다. 

자유란 무엇인가? 평등이란 무엇인가? 도덕이란? 이타란? 이기란? 오늘의 나의 행동은 정당했나? 나의 선행은 진정한 선행이었나? 선행을 베푼다 했지만 사실 나의 만족을 위한 것은 아니었나? 나는 충분히 도덕적인가? 나는 충분히 고결한다? 고결함이란 무엇인가? 하찮음이란 또 무엇인가? 이런 끝도 없는 고뇌 속에서, 인간은 끝없이 고통받아야만 하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너무 쉽게 편해져서는 안 된다! 그렇게 끝없이 외로워야 하며, 괴롭고 죽고 싶어 해야만 한다. 그런 고통이 너희를 인간으로 유지시켜 주니까!

(참고로 불교는 그 황량한 고통 속에서 아무것도 의존하지 않은 채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열반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절~대 의존하려 하지 말라고 한다.)




소위 자유를 싫어한다고 하는 이들은 종종 섹스와 약에 취한 '자유주의'의 인간군상들을 손쉽게 혐오하며 경멸하곤 한다. 물론 좋은 모습은 아니긴 하지. 그렇지만 최소한 섹스와 약에 취한 이들은 필자가 언급한 '그런 고뇌'들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기도 하다. 공허의 사막에 내 던저진 그 외롭고 황량한 개인으로써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다 보니 약과 섹스가 없이 도저히 견딜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결국 그 황량함을 견딜 수가 없어서 어떤 숭고하고 고결한 존재를 가정해 버리고, 그 존재에게 모든 생각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간편한 회피를 해 버린, 그렇게 네 이웃들을 이단으로 낙인찍고 죽창을 들고 돌진하는 당신들의 모습이 더 역겹다. 당신을 편하게 만들어준 그 전근대적 방식이야 말로 펜타닐보다 더 지독한 마약이었으며, 그 약에 취한 여러분의 모습은 좀비 그 자체니까. 


나는 영원히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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