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환 Oct 21. 2024

여러분들과 영영 이별할 뻔한 썰

사는 게 참 힘듦;

일전 진상 썰도 있었고 이래저래 대리운전이 넘 힘들다 싶어 좀 비슷한 다른 일을 물색해 보다 '퀵'이라는 걸 알게 되었더랬다. 소위 '딸배'라고 불리는 오토바이퀵도 게 중 하나인데 당연히 난 오토바이를 탈 줄 모르니 꼴랑 하나 있는 자차를 통한 승용차 퀵을 뛰어보게 되었더랬다. 그렇게 한 3일 뛰어보고 느낀 점은


... 단가가 싸도 너무 지나치게 싸다는 것이다.




승용차퀵보다 상위단계의 퀵이 다마스퀵인데, 여기부터는 전문 화물종사자 자격증을 가진 이들만 할 수 있는 나름 '전문직(?)'이고(당연히 5, 6백 정도 써서 중고 다마스 한대 장만해 놓는다고 아무나 다마스퀵을 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나처럼 아무 자격이 없는 이가 뛸 수 있는 영역은 승용차퀵이 마지막이다.  


문제는 이 한 단계 간의 단가 차이가 너무 심각하게 난다는 건데 이를테면 

강남역에서 서울시청까지 서랍장 하나를 다마스퀵으로 배송 시 보통 30000원 이상을 받는다.

강남역에서 서울시청까지 화분 하나를 승용차퀵으로 배송 시 보통 12000원 정도를 받는다.

두 퀵의 평균 단가차이가 2.5배가량 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승용차퀵은 한 번에 하나만 잡고 다니는 식으로는 도~저 히 수지가 맞지 않는다. 기름값 제하고 나면 정말 최저임금 맞추기도 빡세다. 해 봤는데 시간당 5천 원 나오더라;;(처음 물건을 수령하러 가는 시간, 목적지에 도착해 정확한 지점을 찾아가고, 물건을 수령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와서 차 빼고 나오는 시간 등등 고려..) 결국 다루는 물건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장점(???)을 최대한 이용해 한 번에 두세 건을 잡고 다녀야 한다. 이러다 보니 나오는 첫 번째 문제는, 먼저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한 건을 잡고 '운전'을 해 나아가면서 수시로 폰 어플을 확인하며 두 번째 세 번째 수요요청을 물색해야 한다. 물론 운전자가 이질알 하고 있다는 자체가 꽤 위법적이라 할 수 있겠다.



고객을 직접 모시고 움직이는 대리운전의 경우, 운전을 하면서 폰의 다른 어플을 확인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가 없다. 기사는 주행이 끝날 때까지 오직 앞만 보고 다녀야 하며, 사실 업무적으로 주행 중 다른 어플을 확인해야 할 별 다른 이유도 없긴 하다. 그런데 이 '승용차퀵'은 사정이 다른 것이다. 여기에 추가적인 문제가 또 있다.


고객을 직접 모시는 게 아니라 물건을 배송하는 '퀵'은 주행 중 고객의 통화를 받아야 할 상황이 왕왕 있다. 구체적인 배송상황을 궁금해하는 고객이 주행 중인 기사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다. 블루투스 연결을 통해 조금 더 쉽게 대응을 할 수 있다 한들, 운전대 잡는 이들은 다들 알겠지만 어지간한 긴급상황 아니고서야 원칙적으로 운전자의 전화통화는 금지이다. 운전자는 통화를 하며 주행을 해선 안된다. 그런데 '퀵'은 '그걸' 해야만 한다.


다마스 이상 단계의 '전문' 배송은, 한 번에 하나씩만 해도 단가가 나오기 때문에 그나마 상황이 나을 것이다. 그런데 말했죠? 승용차퀵은 한 번에 두세 건씩 들고 다닌다. 당연히 주행 중 전화요청도 두세 배 많이 들어온다.


실재 주행하며 앞을 보다가

휴대폰 어플로 주변 좋은 건 나온 거 없나 물색하다가

어디까지 오고 있냐 궁금해하는 고객 전화 응대하가다

결국 오늘 '일'이 터졌다.




주행 중 고객 전화를 받다가 주변에서 함성이 들렸다.


"어어~! 저 놈 저거 뭐야!!"


깜짝 놀라 급브레이크를 힘차게 밟고 보니 내 차가 횡단보도 정 중앙에 걸쳐 있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행인들이 길을 건너고 있었다. 종잡아 열 명은 될 법한 행인들이 내 차 바로 옆에 있었고, 그들과 내 차간 거리는 미터단위가 아닌 센티단위 정도였다. 깜짝 놀라 벙찐 얼굴들.. 


분명 1, 2초 정도 '운명의 어긋남'이 있었다면 게 중 몇 명은 분명 내 차 옆이 아닌 아래에 있었을 것이고, 여러분들은 오늘 9시 뉴스에서 필자의 실물을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9시 뉴스 아무개입니다. 얼마 전 시청에서 9명의 목숨을 앗아간 불행한 사건이 있었죠. 그 아픔이 채 가시기 전에, 또다시 불행한 일이 서울시내 한가운데서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 그 비극적인 시청사건의 뒤를 계승하는 불명예를 내가 피할 수 있었던 건 그저 오직 하느님과 조상님이 보우하신 1, 2초 남짓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 찰나의 시간이 아니었으면 내 차 아래에 존재했을 몇 명의 행인들과 함께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필자의 인생도 함께 사라졌을 것이다. 당연히 이 계정은 폭파되었을 것이고 공이들도 아마 해체수순을 거쳐야 했겠지.. 그 모든 운명을 가른 건, 그저 천운에 의한 '2초'의 시차였던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창 밖을 향해 힘차게 외쳤다. 

그리고 슬며시 차를 뺐다.

벙찐 얼굴을 했던 코 앞의 행인들은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장면이 단속 카메라에 찍혀 벌금을 물러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 하루 열심히 일 해 번 그 몇 푼의 돈보다 더 많은 손해를 보게 되겠지만 '이 정도' 사건을 거치고도 그 정도 손해로 끝날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한 일이라 할 것이다.


여튼 결론은

이래저래 살아가는 게 만만치가 않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조커 2는 왜 망작인가(스포일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