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투어에서 한국 인디를 다시 배웠다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

by njelo

코로나로 2021년 예정된 일본 투어는 취소되었다. 대신 중국에서 두 번째 투어를 시작했다.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핵산 검사를 했다. 한 도시를 나가고, 다른 도시에 들어가고, 공연을 하고 다시 상하이로 돌아올 때마다 기본 4번은 코가 알싸한 순간을 맞이해야 했다. 예정된 20개 도시 중 15개 도시를 돌았으니, 적어도 60번. 소재지의 건강코드 결과 화면을 실시간으로 꺼내 보이는 게 일상이었다. 도시를 나갈 때도, 가게에 들어갈 때도. 신기한 건, 그렇게 돌아다니면서도 한 번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진정한 '슈퍼 유전자'였다.


투어를 하면서 본 중국은 교환학생이나 주재원으로도 보던 것과 또 달랐다. 라이브하우스 대기실에서, 도시와 도시를 잇는 비행기와 기차 안에서, 공연이 끝난 뒤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나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만났다. 뮤지션들과 나눈 이야기, 관객들과 나눈 시선, 무대 위에서 느낀 공기. 이건 회사 생활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중국에서 생활한 이후로 한국 인디 음악을 별로 찾아듣지 않았다. 상하이에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일본 밴드를 많이 듣게 됐다. 실제로 일본 아티스트들이 중국 투어를 자주 해서 공연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본 음악을 좋아하는 중국 인디 팬들이 내게 한국 아티스트 이름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아도이 들어봤어?"

"위아더나잇, 잔나비, 랜드오브피스는 한국에서 유명해?"


다른 도시에서 만난 중국 뮤지션들이 한국 음악이 있는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보여주기도 했고, 공연장에 가면 가끔 한국 인디 음악이 나오기도 했다. 이 무대와 경험은 훨씬 좋은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한국 아티스트들이 충분히 누려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철저하게 로컬라이징할 수 있으니까. 가끔 한국 아티스트들이 상하이에 와도, 한인 관객 앞에서만 공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너무 안타까웠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도 그것이었다.


그리고 중국 아티스트들도 한국에서 공연할 기회가 없을지 자주 물어왔다. 이미 그들은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으로 투어를 가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까지는 닿을 수 있는 네트워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무대는 나보다 더 좋은 뮤지션들에게 넘겨주고, 이 경험을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입장벽이 높다고들 말하는 엔터 산업이었지만, 내가 할 일은 분명히 존재했다.


나는 7년간 제조·무역업에서 제품이 기획되고,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시장에 도착하는 과정을 몸으로 배웠다. 이제 그 제품을 음악으로 바꿔보는거다. 좋은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제대로 닿게 만드는 일을.


그렇게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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