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병원에서 레지던트를 하고 있어 바빠서 못 온다고 했던 여동생이 007 작전을 방불케 하며 왔다.
서프라이즈로 선물처럼 오는 거라 둘째 사위에겐 비밀로 했단다. 그럼에도 공항으로 마중은 나가야 하니까... 둘째가 기껏 생각해 낸 것이 자신의 얼굴이 엄마보다 이모랑 똑같이 닮았다는 둥~ 이모가 유럽여행을 마치고 결혼을 보러 온다는 둥~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부모님까지 모시고 공항으로 갔단다...
우리의 순진한 사위는 오로지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예비 신부를 닮았다는 한국인 아줌마만 찾고 있는 사이에 여동생이 바로 옆까지 왔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네 가족이 정말 오랜만에 모였다.
같은 이탈리아에 살고 있으면서도 크리스마스 때 잠깐 얼굴만 봤다며 이곳 뉴질랜드에서 만나 서로 얼싸안고 울고불고했다니... 세상 어디에 사나 참 바쁜 현대인이구나 싶었다.
4월이면 이곳은 가을이 깊어간다.
북섬인 오클랜드는 비교적 따뜻하지만 남섬인 이곳은 남극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옷깃을 단단히 여미게 하곤 한다.
사위네 가족 4명은 시내 근처에 B&B를 잡았고 결혼 전이니 둘째는 우리 집 자기 방에 짐을 풀었다.
결혼 전날 저녁으로 상견례를 잡았다.
시내에 있는 둘이 연예할 때 자주 갔다는 레스토랑이란다.
우리는 이탈리아어를 못하고 그쪽 부모님은 영어를 못하고... 다행히 여동생과 사위가 영어를 하니까 두 딸이 한국어로 통역을 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잔뜩 긴장을 하고 약속장소에 주차를 하는데 공교롭게도 차를 앞뒤로 주차를 했다.
본의 아니게 길거리에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첫 느낌이...
이분들이 생전처음 동양인을 만나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 인사조차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하는 당황해하는 느낌... 정말 어색하게 첫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레스토랑 한쪽 방안에 빙 둘러앉았다.
알바니아에서 이탈리아로 이민을 왔단다.
사위가 아기였을 때였다니 우리와 비슷한 이민스토리였다.
공산치하에 있을 때 공산당원이 아니었음에도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돈어른은 보기에도 단단해 보였다.
그럼에도 우리처럼 여기저기 이민 생활의 애환이 배어있으리라...
우린 서로 자식 키운 이야기로 어색함을 풀어갔다.
알바니아어와 이탈리아어가 엄청 다름에도 아이들을 키우고 그곳에서 생활을 하면서 언어에 장벽이 없어졌단다. (이 부분에서 나는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아직도 그놈의 장벽이 높기만 하기에...)
그러면서도 자녀들에게 두 언어를 모두 가르쳤다고...
그러니까 두 남매는 이탈리어가 모국어고, 알바니아어가 부모의 언어인 셈이고... 거기에 영어까지...
참 녹녹지 않은 교육이었겠다 싶었다.
우리도 그랬으니까...
우리는 영어를 완벽하게 할 자신이 없었고, 그럼 내 자식들이 한국어를 완벽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정말 죽기 살기로 한국어를 시켰다. 덕분에... 지금도 속에 있는 말을, 세계의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회사에서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을 수 있게 되었고... (이게 평생에 내가 한 일 중에서 제일 잘한 일인듯하다.)
우리처럼...
자식이 잘되기를 바랐단다.
그래서 열심히 교육을 시켰다고...
그랬는데... 사돈댁 입장에선.... 갑자기 30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갈아타며 와야 하는 이 작은 섬나라에 와서 난생처음 보는 한국인 아가씨와 결혼을 한다고 하니... 웬 날벼락인가? 싶었을 테고...
우리 입장에선... 이민 와서 고생고생해서 잘 키워 이곳 사회에 깊숙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해 놓았더니만... 갑자기 어디서 왔는지~ 부모가 누군지~ 뿌리가 어떤지도 모를 허우대 멀쩡한 이탈리아 총각과 결혼을 한다고??? 이건 뭔 소리??? 였고...
만나고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쪽도 그랬을 텐데... 우리만 그런 줄 알고 호들갑을 떨었구나 싶었고...
참 이분들도 난감했겠구나 싶었다.
그런 마음이 통했을까...
3시간 정도의 만남을 뒤로하고 레스토랑을 나와서는 서로 악수를 힘주어하고... 동성끼리는 따스한 마음이 전달될 정도로 꽉 안고 인사를 나누었다.
우린 필연일까?
집에 오는 길에 속마음을 잘 말하지 않는 남편이 "참 좋으신 분들 같아~" 했다.
나는 호들갑스럽게... "그냥 오랜만에 만난 친척 느낌~ 그렇지 않았어?" 했다.
딸이 사위에게 전하니...
그쪽도 그랬단다.
오랜만에 만난 형제 같았다고...
이쯤 되면 둘이 연분은 연분인가 보다 했다.
그렇게 둘째는 이곳에서 결혼을 하고...
멋진 사위를 둔 덕분에 알바니아에서 말그대로 성대한 결혼식도 다시 했고...
결혼식 후에는 사돈가족과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이탈리아 여행도 다녔다...
그 소소한 이야기는 언젠가 한번 풀어봐야지 싶다.
그렇게 여행을 하면서 더 돈독해진 우리는 헤어질 때 부둥켜안고 엉엉~ 소리 내서 울기까지 했다.
지금... 둘째는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결혼을 한 후에도 둘째와 우리는 매일 패톡을 주고받는다. 딸은 회사와 일상의 소소한 것부터... 부모의 조언이 필요한 묵직한 일까지 풀어놓는다. 참 한결같은 딸이다... 그래서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도 꽃길만 걸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그 길이 어떤 길이던 현명하게 헤쳐나가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