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한번 만나봐 달라고 일 년째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했었는데... 우리는 이런저런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면서 차일피일 미뤄왔었다.
그랬었는데...
이제는 그 말도 안 되었던 이유들을 모두 해결했다면서 둘째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며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잘생긴 청년을 데려왔다.
신중하고 진중한 둘째이기 때문에 딸의 선택을 지지해줘야 한다는 건 머리로 이해하고 알겠는데...
마음 한편으론 한국인이었으면... 그러면... 어쩌면... 딸만 셋인 우리에게 둘째 사위는 아들 삼아 우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을 갖고 있었기에 사실 아쉬운 마음이 컸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것도 아니고 홈타운이 이탈리아이고 이탈리아 지사 책임자로 와 있다고 하니... 혹시 아들 같은 내 딸까지 달고 돌아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도 있었기에 영 탐탁지가 않았다.
그가 왔다.
이곳 이탈리아 상점에서 샀다는 Made in Italy 인 오일부터 크리스마스 정통 파이까지 선물 바구니를 낑낑거리며 들고 왔다.
어정쩡하게 들어오던 그는 이렇게 인사를 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해서인지 잔뜩 얼어있었다.
둘째의 매파 노릇을 했고 지금도 친구처럼 지내는 셋째 말이 이런 그의 모습이 처음이라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아마도... 딸들도 그렇고 둘째 사위가 된 J도 그렇고... 우리가 까다로운 시험관처럼 이것저것 트집을 잡을 줄 알았던듯하다. 중매쟁이였던 셋째도 당사자인 둘째도 더욱이 둘째 사위가 된 J도 모두 어색하기만 했으니까...
참... 부모인 우리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데려와~~ "라는 의미는 사실 "승낙!!"이라는 것을... 그만큼 내 딸을 믿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잔뜩 얼어서 통과의례를 거쳤던 둘째 예비사위는 휴가가 끝나고 올라갈 즈음에는 서로 농담도 주고받았고 남편이 이렇게 영어를 잘했나? 싶을 정도로 둘이 서로 잘 통했다.
그래서 좋았다.
어차피 사윗감이 혼자 신혼집에서 생활을 하고 있고, 둘째는 같은 지역 작은 아빠집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으니... 후딱 결혼을 시키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루는 교회에서 거창하게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했다가, 다음날 아침에는 이곳에 여기저기 인맥이 널려있는 둘째의 모든 지인들까지 초대하는 것으로 했다가, 점심때에는 스몰웨딩으로 했다가, 그러다가.... 4월에 사윗감의 부모님이 오시니까 상견례를 하고 9월경에 이태리로 가서 결혼식을 하자고 했다가...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결국... 우리의 결론은...
4월에 상견례를 하고 다음날 바로 스몰웨딩으로 하고 법적인 부부가 되는 것으로...
물론 유럽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다는 사위의 친인척들을 위해 8월경에 그곳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
둘째도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지인들이 물었다.
그래~ 이태리 사윗감은 어땠어?
나의 답은 이랬다. 그냥 하늘이 보내준 내 아들 같았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대화를 시도하곤 했지~ 그 정도로 이질감이 전혀 없었어~ 그리고... 우리 남편이 그렇게 영어를 잘하는 줄도 몰랐고 그렇게 말이 많은 줄도 몰랐지 뭐야~ 아주 옛날부터 알아온 사이처럼 둘이 너무 잘 통하더라고...
그래서 생각해 봤다. 그 이유를...
한국음식을 모두 잘 먹어서였을까?
예의상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먹는 모습은 행복해 보였으니까...
둘째가 식당에서 파는 양념게장도 잘 먹는다고 하고 셋째가 입맛은 거의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이라고 하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실제로 보니 더 놀라웠다.
그리고... 그냥 내가 콩글리쉬 + 바디랭귀지 + 한국어를 모두 섞어 말을 해도 다 척척 알아들고 딱 맞는 답을 내놓곤 했다. 마치 내 속을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옆에서 듣던 딸들도 신기해할 정도였으니까...
그래서였겠지? 유럽영화에서 툭 튀어나온 것처럼 생겼음에도 내 아들로 여겨지는 것이 말이다.
그 먼 길을 돌고 돌아 이 낯선 나라에 와서 한국계 작디작은 내 딸을 만나 이곳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그가 내 아들로 여겨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고 필연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