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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면 내장산, 그리고 정읍 맛보기

우화정과 미르공원, 한국가요촌 달하와 캡슐호텔

by 천둥벌거숭숭이

정읍으로 달려오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난 사람들의 목적지가 같았다.

내장산. 푸르른 녹음도 아름다웠지만, 내장산하면 노랑, 주황, 빨강의 옷을 입은 가을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단풍의 절정이 아니다. 단풍이 아름다움을 뽐낼때면 주차장을 넘어 전방 1km가 넘게 관람객을 태운 차량으로 가득하다고 담당자분께서 말해주셨다. 그렇다면 여유롭게 가는 지금 내장산을 찾은 것이 다행일수도.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다. 오히려 좋아.

내장산 입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보다 깨끗한 냇물을 지나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간다.

사람은 걷기위해 산에 왔음에도 또 차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좋아한다. 셔틀버스가 있어서 다행이야.

내장산 케이블카 왕복은 11,000원 입니다
로또 당첨을 부르는 내장산의 거북이는 꼭 만져보세요

케이블카 왕복이용권을 끊고 하행 케이블카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환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나보다.

선택은 신중해야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다하라는 케이블카 운영진의 전언이 매표소에 떡하니 붙어있다.

역시 뭐든 돈과 관계된 일은 쉬이 흘러가는 것이 없다. 어디서나 주객이 전도될 수 있고, 진상은 기필코 본인이 진상임을 모른다. 그리고 본인이 행한 행동은 반드시 자신에게로 되돌아 오는 것이 이치.

케이블카로 내장사를 오르는 기분이 오묘하다. 힘들게 산을 오르는 이유가 분명 있지만, 짧은 코스로 여행을 하기에 케이블카만큼 큰 도움을 주는 운송수단이 또 있을까.

바로 앞에서 바라본 우화정도 아름답지만, 멀리서 바라보아도 그 존재감이 뚜렷하다. 하늘에서 내려온 정자는 하늘에서 바라보아도 아름답다. 다정한 가을의 색을 입은 내장산이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300m를 더 가야 내장산 전망대를 볼 수 있다. 산길은 언제나 오르락내리락 걷는 이들을 긴장하게 만든다. 전망대 휴게소에는 200년을 넘게 살았다는 거북이가 나무에 전시되어 있다. 로또같은 행운을 가져다 줄 거라는 상인의 말에 나도 가만히 손을 대어본다. 1등 되고 싶습니다. 야무지게 허투루 쓰지 않겠습니다. 꼭 1등 되게 해주세요. 부지런히 로또를 사겠습니다.

내장산의 봉우리와 우화정
내장산 순환버스 요금은 성인 천원. 어린이 오백원.

짧은 등산이지만 그래도 땀이 난다. 역시 산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보고 가라는 이치가 그대로 느껴진다.

내장산 전망대에서는 내장산 전체를 볼 수 있다.

망해봉, 불출봉, 서래봉, 월영봉, 원적암, 벽련암, 우화정까지.

다음에는 반드시 두발로 걸어서 모든 봉을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여행보다 국내여행을 선호하는 나에게 꼭 이루어야하는 목표를 내안의 약속으로 깊숙히 저장해본다.

친구와의 인증샷도 잊지 않는다. 팀장님이 함께 오르지 않아 팀원이 친구와 나 단둘밖에 없지만, 3년간 비었던 대화의 시간을 야무지게 채운다는 마음으로 다독인다.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휴식과 걷기를 적당히 배분하며 다시 케이블카 입구로 돌아와 만석의 케이블카를 타고 무사히 내장산 입구로 귀가. 내장산 순환버스가 시간절약에 최선의 도움을 준다.

이것이 바로 천원의 행복인가.

4개의 조가 휴양이 테마였지만, 각 조마다 원하는 것과 사람들간의 취향이 다르다.

우리조의 다음 목적지는 내장사였다.

내장사로 가는 길에 만나는 108그루의 단풍나무와 힘차게 나아가는 뱀
사고로 불타 복원된 내장사 대웅전

불교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숫자. 108. 108번뇌를 벗기 위해 108번의 절을 하는 사람들.

인간의 고민은 무궁무진하고, 언제나 걱정에 짓눌린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당신의 시름을 맡겨둘 곳이 있다면 조금은 가볍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108그루의 나무에 고민 하나씩 덜어본다. 그 무게를 온전히 버텨내는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그늘이 우리에게 쉼터가 된다.

자연과 함께하는 내장산, 내장사 가는 길에 만난 뱀이 역동적이다. 저 작은 몸으로 거대한 인간들을 피해 필사의 노력으로 수풀로 향하는 모습이, 마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는 내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필사의 노력. 그것으로 우리는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연의 미물을 보고도 나를, 그리고 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신묘한 곳이다.

예기치 못한 사건은 언제, 어디서든 존재하기 마련이다. 내장사 대웅전 또한 그러한 연유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누군가의 실수, 혹은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 화재로 인해 긴 세월을 지켜낸 대웅전이 전소되었다.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는 공사중이라 못 보았지만, 완공된 모습을 보니 더욱 웅장해진것만 같다.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수가 번복되어서는 안되고 발전하여 더 강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긴 역사적 시간 속에서 수많은 외침이 있었지만 굳건히 자리를 지켜내었던 우리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그 하루하루가 모여 내가 만들어지고, 지금 이 순간 함께하는 당신과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매순간이 힘들지라도 버티고 스스로를 극복한다면 분명 더 좋아질거라고. 힘든 순간을 이겨내고 있는 친구에게, 또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마음으로 전한다. 함께 해줘서 고마운 존재가 곁에 있는 이 순간에 감사하다.

정읍 용산호 미르샘분수
미르공원에서 즐거운 용

내장산을 야무지게 둘러보고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다분히 현지인 추천의 정읍 명소였다.

용산호 미르샘분수. 우연인지 필연인지, 함께 간 조원들 모두가 용띠라는 것을 알고 있던 팀장님의 위트였는지는 모르겠다면, 올해가 가기전 용을 보게되어 무언가 만족스럽게 돌아본 곳이다.

미르는 용의 순 우리말이다. 정읍을 상징하는 구절초와 라벤더, 그리고 단풍으로 조형된 구(球)가 호수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하늘로 승천할 것만같은 용들이 주변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신이난 용띠들이 용산호수 위를 누비고 다녔다. 이색적인 인증샷을 찍기에도 제격이었다.

용산호 주차장에 도착하기 직전에 팀장님이 해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용산호 바로 앞에 위치한 깔끔한 숙소가 보이자, 저 곳이 정읍에서 가장 비싼 숙소라고 하여 찾아보게 되었다는. 깔끔하고 조용한 풀빌라 [앨리스테이]. 휴식을 위해 찾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맛있는 음식과 안락한 잠자리다.

비싸고 좋은 곳이구나. 다음에 정읍을 오게된다면, 누군가의 힐링을 위해 꼭 방문해야할 숙소로 저장해놓는다.

해질무렵의 한국가요촌 달하의 모습
한국가요촌 달하. 그리고 정읍사

여행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 바로 현지인 추천이다.

혼자 정읍에 왔다면 절대로 오지 않았을 법한 아름다운 곳에 오게 되었다. 한국가요촌 달하. 이곳에 데려다주신 팀장님의 순탄한 결혼을 바랍니다. 예비 신부님의 오빠분께 나이 속인 것을 절대 들키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초가집이 인상적이어서 가까이 가서보니 한식체험관이다.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전라도 음식을 배워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같지만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고 있다.

잔잔한 고요를 느낄 수 있는 취풍향(누각)이 저절로 정읍사를 생각하게 만든다. 기다리는 사람을 위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급하게 살아야 야무지게 하루를 보낸 것처럼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쉼터라는 생각이 든다. 정읍을 알아가기에 제격인 장소다.

해질무렵에 도착해 한국가요촌을 다른 관람객 없이 여유롭게 돌아보니 더 없이 좋았다.

특히 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는 묘미가 있다. 장독대 앞에서도 한 컷, 취풍향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또 한 컷.

그리고 가장 아름다웠던 한국가요촌 가요전시관 입구에서의 한 컷이다.

사랑하는 이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누군가의 절절한 마음이 정읍사에 담겨있다.

그 잔잔하고 깊은 마음을 달에 빌고, 속을 알 수가 없는 물에 띄운다.

아름답고 아름답도다. 달하곰 노피 도다샤. 달님이시어 높게 떠오르소서. 내 님이 오는 길 환하게 비추어 주시옵소서.

한국가요촌 달하 가요전시관 내부모습
가요전시관 BTS 포토존은 못 참지

한국가요촌은 대중가요에 대한 역사를 체감하기에 적격인 장소다.

입구에서 마주하는 BTS와의 인증샷을 시작으로 전시를 감상한다.

전쟁이 끝나 폐허가 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문화를 즐겼다. 없는 돈을 모아 만화를 보기도 했고, 만화방에서는 빌린 책의 권수에 따라 tv시청권을 주기도 했다. 영화관이라는 것이 생기며 청춘들의 모임장소가 되기도하고 다양하게 생겨난 직업군에 사람들의 꿈의 영역이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나 만석인 영화관에 몰래 잠입하던 순이, 소주 한병에 오뎅국물로 밤새 연명하던 철이는 전봇대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일수였다. 엄마와 아빠가 만났던 옛날 카페에서 먹는 차는 맛이 구렸지만, 그 공간이 주는 힘에 의해 둘의 사랑은 깊어졌다.

그저 보기만해도 이야기가 술술 피어나는 옛모습을 재현한 전시가 내 마음에 꼭 들었다.

사진 찍을 때만큼은 부끄럼이 없는 내가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면 친구가 엄마처럼 열심히 찍어준다.

이렇게 추억을 저장하고나면 언젠가 찾아볼 날이 있겠지. 혼자가 아니여서 더 좋은 순간이 계속된다.

혼자도 좋지만, 함께하는 즐거움은 언제나 배가 된다. 외로울 틈없이 여행을 선택한 것이 기특하다.

정읍역 숙소 달하 노피곰 캡슐호텔
정읍역 행사의 주전부리

드디어 만나는 오늘의 숙소는 나의 로망이었던 캠슐호텔이다. 작은 공간이지만 오롯이 혼자인 곳.

1층에 큰 짐과 신발을 놓을 수 있는 사물함이 있고, 2층이 화장실과 샤워실, 그리고 나의 캡슐 방이 자리잡고 있다. 담요와 세면도구가 바구니안에 담겨 있었다. 생각보다 안락하고 잠을 자기에 충분한 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의를 위해 발 아래쪽에 가방을 두었을 때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남녀 혼숙이 가능하기 때문에 크기가 널찍한 것 같다. 다행히 오늘밤은 여성들만이 캡슐호텔을 차지해서 더욱이 안심이 된다.

누웠을 때 안락한 것이 최고다. 문을 닫으면 완벽히 나만의 숙소가 완성되지만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았다.

캡슐호텔에 가게된다면 꼭 귀마개를 챙겨가길.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는 소음에 인내심을 잃고 틱톡을 찍는 MZ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줄수 있습니다. 잠 못 자면 괴물되는 사람의 변(辨).

저녁식사는 정읍역 앞에서 정읍시 축제와 함께하게 되었다.

정읍을 대표하는 식도락메뉴가 총출동.

우리팀은 떡볶이와 김밥, 소떡소떡과 파전, 그리고 두부김치를 선택했다. 특히나 맛있었던 메뉴는 정읍의 막걸리 '정우'였다. 탁주 특유의 시큼함을 빼고, 달콤함과 부드러운 목넘김이 일품이었다. 꼭 가져가고픈 소중한 막걸리를 알게되어서 참 좋았다.

호응을 잘하는 친구가 선물로 정읍쿠키를 받은 것도 재밌는 경험이었다. 행사와 행사가 더해지니 더욱 풍부해진 밤이다.


잠깐 바람쐬고 돌아오니 자리가 정리되어 있다. 세상 쿨한 사람들과 함께하면 눈치가 빨라야한다.

처음 만났던 컨퍼런스장으로 쫓아가니 사람들이 모여있다.

게임 못하는 사람의 처절한 절규가 울려퍼지는 우리들의 밤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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