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어른, 어린 왕자를 만나다

감천문화마을에 있는 리틀 프린스 하우스

by 천둥벌거숭숭이

기다림을 지독하게 싫어한다.

약속이 잡히면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모든 시간들이 나에겐 기다림이다.

만약 4시에 만나게 된다면, 약속을 잡은 순간부터 초조하고 불안하다.

그 사이 다른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까.

약속이 취소되지는 않을까.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그런 나에게 늘 가르침을 주는 한 문장이 있다.


"만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걱정과 불안을 설렘과 기대로 채워주는 사람.

기다림을 행복으로 만들어주는 어린 왕자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생떽쥐베리 조카가 먼저 다녀간 리틀프린스하우스
모든 어른들은 한때 아이였다

부산역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자리한 감천문화마을은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포화상태다.

부산의 이야기가 진하게 담겨있는 알록달록한 마을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는 방증이다.

산자락에 위치한 감천문화마을에 위치한 리틀프린스하우스에 가기 위해서는 마을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몸과 마음에 이롭다.

사람들로 가득 찬 마을버스에 나를 위한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함께 좋아함처럼 좋은 것은 없다.

짧은 등산을 마치고 만난 리틀프린스하우스가 반가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꿈의 궁전. 동심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놀이터가 저만의 푸르름으로 존재감을 뽐낸다.


어린 왕자의 저자 생떽쥐베리는 이미 떠났지만, 그의 손자가 이미 다녀간 곳.

모든 존재는 한때 아이였다.

시공간을 초월한 상상력이 어느새 숫자로 치환되어야지만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내 맘속 한편에는 아직도 아이의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각 층마다 담긴 이야기에 흠뻑 빠질 준비가 되어있는 어른이 입장이다.

어린왕자 책 표지와 생떽쥐베리의 삶
생떽쥐베리의 직업은 항공비행사

어린 왕자는,

남녀노소, 언어를 초월한 전지구적 사랑을 받은 책이다.

각양각색으로 인쇄된 어린 왕자의 책 표지가 인상적이다.

알록달록. 모두가 꿈꾸는 상상 속 세상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구나.


평생 순수하게만 살았을 것 같은 이야기의 저자는 생각보다 거친 삶을 살았다.

정말 비행기 조종사였고, 전 세계를 누비며 위험과 위기가 언제나 그의 곁에 존재한다.

제복을 입고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생떽쥐베리의 여린 마음이 간단한 눈 맞춤으로 이해된다.

그는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다.

귀찮게 하는 장미가 어느새 특별해진 이유

전시의 시작은 저자에 대한 안내였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어린 왕자에 대한 이야기가 실체화된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40번도 넘게 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작은 별에 사는 어린 왕자에게 불현듯 나타난 장미 하나.

손과 발이 없는 장미에게 처음에는 도움을 주고픈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 어느새 귀찮아져 버렸다.

바람을 막아줘. 물을 줘. 심심하니까 놀아줘.

나를 필요로 하지만, 나를 괴롭게 만드는 존재에게로의 도피.

도망간 곳에서 만난 새로운 세상은 흥미롭고 아름다웠지만, 결국 마주하게 된 것은 장미라는 존재의 특별함이다.


이토록 많은 장미가 존재함에도 단 한 송이의 장미만 생각나는 이유는,

네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길들여짐.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

우리는 그것을 어른의 언어로 관계라 칭한다.

어른들은 정말이지 아주 아주 이상해

우주를 누비며 만난 어른들은 이상해.

정말이지 아주 아주 이상해.

다스릴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임금인 사람.

술을 먹고 괴로운데도 술을 먹었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술을 먹는 사람.

쉴 틈 없이 일만 하는 사람.

하지만 그들에게도 존재에의 이유가 있다.

각자가 가진 역할이 바로 그러하다.


이미 임금이므로 처음 만난 사람을 자신의 임금처럼 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취해있기에 자신의 치부를 기꺼이 드러내는 것이다.

끊임없이 일하기 때문에 다른 생각할 틈이 없는 것이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린이의 행복과 어른의 행복은 다른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때론 오해와 편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모두 어린이였지만, 그 시간은 한정적이고 복잡한 세상과 타협하는 순간 아주아주 이상한 어른이 되고 만다.

나는. 아주 이상하지 않지만, 조금 이상한 어른이다.

행복으로 가는 티켓과 어린왕자와 함께하는 네컷사진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을 담은 쿠폰을 출력할 수 있다.

내가 건네고 싶은 마음 한 줄은 바로 '매일 소중하기.'

주는 사람은 나, 받는 사람은 너.

책의 내용을 상기시키면서 지금을 선물할 수 있는 공간이 더 좋아진다.

지금을 기억할 네 컷 사진은 오늘을 저장하기에 딱이다.


상자에 뚫린 구멍으로 보이는 것은 양일까, 고독일까.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선명히 보이는 것들을 바라본다.

어린 왕자가 그려달라는 양의 모습은 오로지 자신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귀찮아서 대충 그린 상자 안에 양이 있다고 말했지만, 그의 말이 어린 왕자에게 만족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지만 언제나 좌절하고 마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네가 지켜야 할 것은 소중한 너 자신 하나뿐이야.

여행자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별, 그리고 어린왕자.
어느새 감천문화마을 알림이가 된 어린 왕자

같은 곳을 보아도 각자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사람이다.

책 한 권에 담긴 이야기 속에서 자신만의 문장을 고르다 보면 결국 한 책이 완성된다.

다양한 언어로 준비된 어린 왕자 속 대사가 참 좋다.

그중에서도 나만의 문장을 고르자면,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만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어른들은 정말이지 아주아주 이상해.


모두 관계와 관련된 문장이다.

내가 나와 친해야 할 수 있는 말들.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중요한 이유.

과거의 관계에서 파생된 지금을 생각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감천문화마을의 이색공간, 그리고 바오밥나무

일상에서의 탈피를 위해 종종 떠났던 곳이 바로 감천문화마을이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냉장고에서 꺼내듯 손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매년 찾는 이곳이 매일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그곳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조금씩 이상한 어른으로 자라는 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다.

아직은 어긋나지 않은 어른이니까.

하나의 목표를 잡고 찾아왔지만, 천천히 오래 바라보는 어른이에게 나타난 새로운 동화는 계속 이어진다.

집모양의 타일로 만들어낸 공간에서 나만의 집을 찾고, 거꾸로 자라는 것만 같은 바오밥 나무를 마주할 수 있는 여유가 내게 있다는 사실이 참 좋다.


어린 왕자의 결말은 존재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기다림이 싫은 사람에게 기다림이 주는 설렘을 알려준 어린 왕자는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내 안의 어린 왕자는 영원히 성장한다.

그래서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이상한 어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