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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코알라 May 11. 2024

제모받으러 갔다가 뭉클해진 이유 - 하


"상처가 꽤 큰데...." 


원장님은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시곤 아직 끝나지 않은 제모 시술을 마저 이어가셨다. 두 손에 힘을 꽉 쥐게 했던 몇 분간의 제모 시술이 드디어 끝나고. 누워있던 의자에서 막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였다. 원장님은 잠깐 일어나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고 하셨다.


왜 그러시지? 어리둥절한 채 누워있는데, 뭔가 분주하게 레이저 기계를 이동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따닥. 따닥. 따닥' 그리고 이어진 낯선 레이저 소리. 방금까지 받았던 레이저와는 분명 다른 종류였는데 그 레이저가 집중해서 닿고 있는 부위는 다름 아닌 오른쪽 종아리의 흉터 부위였다.


제모를 받을 때만큼이나 꼼꼼하게 원장님은 흉터 부위를 치료해 주셨다. 따로 부탁드린 것도 아닌데, 토요일 이 바쁜 와중에 레이저까지 일부러 바꿔가며 제대로 아물지 못한 흉터를 봐주신 것이다.


치료가 다 끝나고 짐을 챙긴 뒤 나는 데스크에 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내가 다리에 화상 흉터가 있는데 원장님이 치료를 해주신 것 같다고. 이건 비용이 얼마인지 문의드린 것이다. 상황을 몰라 어리둥절하던 간호사님은 원장님께 확인해 보겠다며 사라졌다가 금세 돌아왔다. "아, 그냥 가셔도 될 것 같아요 :) 원장님이 그냥 해드린 거라고 하시네요."


그날 이후, 제모 시술을 위해 방문한 다음 회차에서도 원장님의 무료 치료는 계속되었다. '이건 제가 서비스로 해드리는 거예요' 이런 생색조차 하나 없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함께 치료를 해주셨다.


10회 남짓의 제모레이저 치료가 끝나고. 말끔하게 된 제모보다 더욱 기뻤던 건 티도 안 날 정도로 원래 살색을 되찾은 화상 흉터였다. 그동안은 부끄러워 짧은 바지를 쉽게 입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자유롭게 원하는 하의를 고르고 입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무 말 없이 덜컥 얻게 된 선물 같은 진료 덕분에 말이다.


나는 요즘도 피부과에 갈 일이 있으면 굳이 지하철을 타고 먼 거리에 있는 이곳 피부과를 찾는다. 일종의 의리 같은 거랄까. 묵묵하게 치료해 주신 그 마음이 감사해 요즘에도 진료를 받을 때면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전한다. 이 인사를 통해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사진출처 : Photo by Farhad Ibrahimzad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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