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2021.01.03 말씀묵상
[요1:48-51]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될 무렵, 제자들이 하나 둘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 사건들이 펼쳐진다. 세례요한의 제자 둘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고, 그 다음은 빌립이었으며, 그 다음은 빌립의 지인 나다나엘이었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나사렛의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했으나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라며 일축했다. 빌립은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와서 보라” 라는 말을 할뿐이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찾아오자 예수님은 그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리고 나다나엘은 자신의 양심에 찔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게 된다. 예수님은 작은 일을 이야기하심으로 나다나엘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런것을 듣고 믿음이 생겼느냐며, 더 큰 일을 보게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알고계신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나도 잘 알고계신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모르는 것이 이상하다. 나는 그 분이 만드신 이 세계안에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이라는 영역에 인류는 많은 상상력을 가지고 도전해왔지만, 바로 앞에 그를 맞이하는 지금이다.
할말을 잊는다.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하는 분. 역사를 움직이는 분. 내 머리카락 개수까지 알고계시는 분. 그분이 나의 이름과 나만 알고있는 지극히 작은 내면의 고민을 알고계신다는 그 정보의 파편만으로, 나는 큰 충격과 혼돈을 경험할 것이다. 그 전까지 나의 마음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냐는 말과 같았으니 말이다. 눈 앞의 버젓이 현현한 메시아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믿음이 일상이 되어 하루하루 침식해가는 삶을 사는 내가,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나 변화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와서 보라, 그 한마디면 내 삶의 중추에 깊은 영적개입이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그분을 만났다면, 더 큰일들이 일어나는 것들을 소망하고 그것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자리까지 인도하시는 것을 경험해야 할 것이다.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다. 잘 살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 게을러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말씀묵상을 지금 늦게 하지만, 오늘 주일예배는 성실히 드리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나의 고민 안에 고립되고 침식해가는 것 같다. 하나님이 이런 고민하는 나를 알아주신다면 나는 나다나엘처럼 정신이 번뜩 들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그리스도의 역사는 그런 작은 기적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쩍 나의 시선이 세상을 향해 낮아져가고 있는 듯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시선이 나의 삶을 붙들어 가신다는 믿음을 저버리고 말이다. 믿음은 굳건하게, 의지는 두텁게, 나의 삶이 게을러지지 않도록 주께서 내 영혼의 칼을 벼리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