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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osh Apr 24. 2021

아예 믿어버리는 믿음에 대하여

쓰러져 넘어진대도 앞으로 간다


2021.01.04 말씀묵상 -1


[요2:4-11]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혼례잔치에 초청을 받은 예수님에게, 어머니 마리아는 술이 떨어진 사건을 있는그대로 고백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여자여 나와 무슨상관이 있나이까. 그러나  다음에 어머니 마리아의 대응은, 하인들에게 예수가 지시하는 대로 하라는 실행지침을 내리는 것이다.  장면을 보고, 믿음에 대한  도전을 받았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애원하였으나 예수님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녀들의 밥상을 개에게 던져주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씀하신  있다. 그러나  여인은 개들도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말씀에 대응했다. 믿음은 뒤가 없다. 앞으로 기울어져 결국 넘어진대도 그냥 앞으로만 간다.


예수님을 의지한다는 말은 우리가 너무 많이   있지만,  말의 진정한 의미는 이런 것이다. 믿어버리는 , 기대버리는 , 완전히 뒤가 없는 사람처럼 당연한 전제를 가슴에 품는 사람처럼 그렇게 자기자신을 던져버리는 그것이 믿음이다.


물론 예수님의 말씀이 틀린  하나 없다. 구원의 사역을 베풀러오신 이에게, 당장  삶의 포도주 없어 흥이 깨질 위험이 있는 삶의 사연을 들어달라고 하는 , 하등 상관 없는 일일  있다. 그러나 구주를 의지하는 사람은  말씀마저 받아들이고, 예수께 아뢴다. 그리고 믿은대로 행동한다.


진정 나의 부모되시는 주님을 믿기 때문에, 그가 나를 완전히 내치시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 않을까. 예수님은 우리 영혼의 구원자 되시지만, 나의 모든 문제의 원인과 해결 그리고 과정까지 개입하셔서 해결하실  있는 능력과 그럴 의지가 있으신 분이다. 거기까지 바라보고 믿는게 진짜 믿음이다.


본문에서는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지만, 믿은대로 행동하는  시점에도 위험이 따른다.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명령한 항아리는 본래 음식을 담는 항아리가 아니라, 손을 씻기위한 세척용도의 물을 담는 항아리 였다. 그런 항아리에 물을 담아서 잔치에 가져다놓으라는 명령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사람들이 혼례잔치에 와서 먹고마실 술을 대접해야하는데 손씻을 물을 가져다 놓으라는  명령을 어떻게 받아들일  있는가.


믿음은 이렇듯 끝없는 시험의 연속이다. 망신당할 위험, 비웃음당할 위험, 멸시와 핍박을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믿음을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의 싸움에 대해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다. 예수님이 너무 야속하다고 생각되기도   같다.  머리가 너무 큰걸까.  굳이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믿음을 시험하려 하시는 걸까.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아직은 믿음을 위해 그정도를 희생할 준비가 안되어있는 거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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