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세상] 크렁매카의 밤

수로 위에 떠 있는 것들

by sooki

치앙마이의 밤은 천천히 물든다. 해가 산 너머로 기울 무렵, 핑강 옆 수로를 따라 하나둘 불이 켜지고, 크렁매카는 비로소 자기 얼굴을 드러낸다.

2년 전에도 물은 더러웠다. 그때 이미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빛깔이었는데, 이번에는 냄새까지 올라왔다. 운하를 따라 걷는 산책로인데 정작 운하는 찍을 수 없다 — 카메라를 들이대면 렌즈가 거부하는 수면이 있다. 그래서 이 글에 물 사진은 없다. 없는 것이 오히려 정직한 기록이다.


2년 전 1월은 더 더웠고, 사람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골목이 어깨와 어깨 사이로만 보였다. 이번에는 월요일 평일 저녁, 인파가 적당했다. 덕분에 사람 틈이 아니라 골목 자체를 볼 수 있었다. 상점의 윤곽, 지붕 위 양철판의 녹, 처마 끝에 매달린 전구의 흔들림 — 붐비는 풍경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한산한 저녁에는 제 모습을 내보였다. 물은 더 탁해졌는데, 골목은 더 잘 보였다. 크렁매카의 아이러니는 거기서 시작한다.​​​​​​​​​​​​​​​​


낡은 양철 지붕 아래, 백열등 하나에 의지해 목걸이를 다듬는 노인의 손등에 시간이 쌓여 있다. 산족 문양의 천, 코끼리를 수놓은 가방, 피 마이 축제 때나 걸었을 법한 목재 가면들 — 이것들은 팔리기 위해 존재하지만, 동시에 사라지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그 구분이 무너지는 지점에서 상점은 작은 박물관이 된다. 구매자가 없는 시간에도 노인은 자리를 지킨다. 지키는 것이 그의 노동이고, 동시에 그의 존엄이다.


골목 한쪽에서 아이 셋이 바닥에 뒹굴며 놀고 있다. 하나는 엎드려 있고, 하나는 그 위에 올라타고, 가장 어린아이는 카메라를 의식하듯 웃는다. 뒤편에는 색색의 인형을 파는 노점이 있고, 그 불빛이 아이들의 등을 따뜻하게 비춘다. 어른들의 장터는 생계이지만, 아이들에게 이 골목은 놀이터다. 이 격차가 잔인한 것인지 아름다운 것인지, 오래 서서 봐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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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 건너편, “เทศบาลนครเชียงใหม่”라고 적힌 건물 앞 벤치에 여행자들이 앉아 있다. 녹슨 양철판과 낡은 셔터 사이, 한 줄의 LED 조명이 건물 윤곽을 따라 흐른다. 이 불빛은 장식이자 경계선이다 — 여기서부터는 구경하면서 걷는 산책길입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여행자는 벤치에서 쉬고, 그 옆에서 상인은 일한다. 같은 밤공기를 마시지만 다른 시간을 산다.


‘居酒屋’라 적힌 일본식 이자카야처럼 보이던 가게의 벽엔 내용을 알 수 없는 망가(만화) 몇 장이 너덜너덜하다. 문 앞에는 일가족으로 보이는 여자와 아이, 남자가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장면은 치앙마이에도, 도쿄에도, 서울의 어느 골목에도 속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의 고유성이 사라진 자리에 가족의 보편성이 남는다. 그것이 세계화의 슬픔인지 위로인지, 이것도 역시 결론이 나지 않는다.


타이어 화분 위에 앉아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청년들. 그들 뒤로 색색의 탄산음료가 줄지어 있고, 전구 줄이 지붕을 따라 늘어져 있다. 이 장면에서 고독은 복수형이다. 나란히 앉아 있되 각자의 화면 속에 있는 사람들 — 우리 시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낡은 나무집과 야시장 불빛 앞에 놓이니 묘하게 쓸쓸하다.


그리고 수공예품 가게 처마 밑, 할머니와 손녀가 마주 앉아 있다. 할머니는 무언가를 건네고, 아이는 두 손으로 받는다. 코끼리 가방과 산족 직물 사이, 이 작은 교환이 크렁매카에서 내가 본 가장 오래된 거래다.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건네는 일. 상점의 불빛은 이 장면을 위해 켜져 있었다고, 나중에야 생각했다.


다 돌고 입구로 나왔을 때, 버스킹을 하던 여자가 한국 노래를 불렀다. 일부 가사는 정확하지 않았고, 기타 코드는 군데군데 빗나갔을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불완전한 한국어가 낯선 도시의 밤을 마감하는 데에는 더없이 정확한 언어였다. 완벽한 노래는 감동을 주지만, 어긋난 노래는 그리움을 준다. 치앙마이 수로 위에 떠가는 것은 탁한 물만이 아니었다 — 노인의 고단함, 아이들의 웃음, 녹슨 양철판에 기댄 여행자의 무료함, 그리고 엉뚱한 한국어 가사. 이것들이 뒤섞여 흐르고 있었다.


물은 2년 전보다 탁해졌다. 그러나 탁한 물에도 불빛은 비친다. 아니, 어쩌면 탁한 물이기에 빛이 더 오래 머문다. 맑은 물은 빛을 통과시키지만, 탁한 물은 빛을 붙잡는다. 크렁매카가 그렇다. 세련되지 못해서, 정리되지 못해서, 깨끗하지 못해서 — 거기에 사람의 흔적이 더 오래 남는다. 아니, 오래 남기를 염원해 본다.


2025년 2월 9일, 치앙마이에서


p.s. 2년 전에는 아장아장 걷는 동생과 네댓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노래를 불렀었다. 일명 앵벌이(?) 같은 모습이었다. 앞에 팁 바구니가 있었다. 그 장면을 보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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