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들이 찾는 아담한 마켓
오늘은 멕시코 국경을 넘어 티후아나의 유일한 시장으로 향했다.
항상 지나치기만 했던 M.Hidalgo (이하 이달고) 시장은,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주로 애용하는 곳.
(*Miguel Hidalgo y Costilla (1753-1811)는 성직자이자 멕시코 독립 전쟁의 지도자였던 위인으로 꼽힌다)
네모난 담벼락 안에 U자모양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상점들을 보니
티후아나도 사람 사는 곳이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50년에 개장해 지금까지 늘 새벽을 열고 닫은 이달고 시장.
성직자의 이름을 따온 곳인 만큼,
시장의 한가운데엔 작은 예배당이 있어 가톨릭 국가인 멕시코 사람들의 신앙심을 보여준다.
바로 앞엔 과달루페 성모상도 자리해 시장상인과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을 지켜주는 거라고,
이 곳 사람들은 믿고 있다고 했다.
약 80개의 노점상들 중에서 내 시선을 끈 곳은 과일가게, 그 자리에서 코코넛 물과 속을 발라주는 코코넛 가게, 사람들이 줄을 사서 사가던 막 만들어낸 따끈따끈한 또띠야 집, 그리고 따말(*멕시코 전통음식 : 바나나 잎에 다진 옥수수를 쪄낸 것) 전문점과 주방용품점 등이었다.
물론 한국보다, 아니 한국만큼? 고추를 사랑하는,
멕시코의 여러 가지 고추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였다.
생 고추, 말린 고추, 절인 고추.... 캘리포니아 고추, 멕시코 고추... 다른 지방의 고추..... 한마디로 고추 총집합.
요리할 때도 넣어먹고, 갈아먹고, 갈아서 과일에도 뿌려 먹고, 절여 먹고. 타코에도 뿌려먹고 (치즈 시즈닝처럼)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우리나라도 있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정말 chile를 사랑한다!
(멕시코에서는 고추를 chile라고 부른다!)
오죽하면 이 chile를 로고로 한 Chillis라는 멕시코 음식 프랜차이즈도 생겨났을까. 물론 미국 기업이지만.
한창 chile 구경을 하다 보면 과일과 치즈를 파는 상점이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한 가지 치즈만 팔고 있었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14가지 치즈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국민 치즈 Cotija.
정확히 미초아칸의 코티하 지역 전통방식으로 숙성시킨 치즈인데,
치즈를 넣어 만든 께사디야에는 거의 이 코티하 치즈가 사용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멕시코에서 께사디야를 먹어보았다면, 코티하 치즈도 당연히 맛본 게 되겠다.
* 이달고 시장에는 이 상점 외에 종합 치즈 상점(?)인 El Cavo de Queso라는 체인점도 자리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조금은 방치된 치즈에 더 마음이 간다.
아마 잘라진 저만큼의 치즈는 누가 가져갔을까, 어떤 맛의 께사디야를 만들었을까, 상상해보는 것을 좋아해서가 아닐까.
그리고 조금 더 가다 보면 내가 제일 제일 좋아하는 곳이 나오는데.....
'코코넛 열매와 과일 전문점'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여기!
카우보이 모자를 쓴 사장님에게 25페소를 내고 쿠폰을 받으면, 앞에서 이 아저씨가 내게 묻는다.
"마실 거야? 먹을 거야"
"둘 다요!"
"그럼 코코넛 물은 비닐봉지에 따라줄 테니까 빨대로 마시고, 코코넛 알맹이도 파서 줄게.
어떤 게 좋아? 말랑말랑한 거? 중간? 아니면 딱딱한 코코넛?"
"말랑말랑!"
"소스 뿌려줘?"
(*현지인들이 뿌려먹는 칠리, 라임 소스 등 양념통을 집어 직접 뿌릴 수 있지만 나는 생략.
멕시코 사람들은 대부분 모든 과일에 고춧가루, 라임, 그리고 차모이(mango o chabacano + chile + sal + azucar + auga)라는 소스를 뿌려 먹는 편)
"아니요!"
"근데 너 스페인어 왜 이렇게 잘해? 하하하. 그러고 보니 나도 한국사람 같이 생겼지?"
"하하하 아니요."
한국에서는 먹어볼 수 없는 생 코코넛의 맛. 물론 비닐봉지에 따라 마시는 코코넛워터는 세련된 맛은 아니지만,
배와 같이 아삭하고 감말랭이처럼 살짝 쫄깃하기도 한 코코넛을 먹다 보면, 이달고 시장이 금세 좋아지고 만다.
그리고 좋은 에너지를 전파하는 코코넛 아저씨의 미소는, 남아있는 동전 모두를 팁으로 주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그다음으로는 주부들이 줄을 서서 사가는 또띠야 집을 어슬렁거린다.
밀가루, 옥수수 또띠야 외에도 선인장, 호박즙을 넣어 구운 또띠야가 있는데,
한 번도 도전해보지 못한 선인장 또띠야 맛이 궁금했다가,
"한장은 팔지 않지요?" 라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해봤다가,
아쉬운 마음을 안고 카메라를 꺼내 든다.
어떤 상인들보다 일찍 일어나 반죽을 준비하고, 손님들의 아침식사용 또띠야를 제공하는 사장님. 미소도 따뜻해 보이는 건 아마 또띠야 익는 냄새가 모락모락 나서 일까.
귀여운 이름 하나! *totopo 또또뽀.
( 또또뽀 : 또띠야를 튀긴 것, salsa에 찍어 먹는 주전부리) 흔히 우리가 나쵸라고 생각하는 옥수수 또띠야를 세모 모양으로 튀긴 걸, 여기서는 또또뽀 라고 부른다.
또또뽀, 또또뽀 를 한참 중얼거리다 맞닥 드리는 작은 멕시코의 소소한 생활 용품들 :)
상인들에겐 이곳이 소중한 삶의 터전일 테니까,
나도 조금은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하나하나 눈길을 선사해본다.
허접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귀한 것.
누군가에겐 큰 마음먹고 마련한 선물, 장식품, 기념하기 위한 보물일 수도 있으니까.
다 예쁘다 예쁘다, 하는 마음을 갖고 보니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30분이면 훌쩍 구경할 수 있는 티후아나의 이달고 시장, 정겨운 이곳을 또 찾아야겠다.
새로운 보석을 발견하는 마음을 가득 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