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 걸어가요
오늘은 티후아나가 아닌 과달라하라 여행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사실 여행이라기보다, 친척집에 가서 몇 주 머문 것뿐이지만.
과달라하라는 티후아나에서 비행기로 3시간 거리로, 사실 티후아나 보다 더 좋아하는 도시다.
덜 개발되고 덜 삭막하고 덜 위험한 곳이자, 사랑하는 친척들이 모여있는 곳.
그리고 멕시코의 '테킬라'를 만드는 본고장으로도 유명한 곳.
오늘은 관광보다 그곳에서 보낸 일상의 하루를 나누고자 한다.
가방가게를 하는 이모, 이모와 종일 붙어있으며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
이모의 가게는 도매가게가 모여있는 시장쪽에 위치해 있다.
직원이 두명 있고, 대부분 도매로 물건을 주문해가는 식이어서 크게 힘들일은 없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하루는 참 단조롭다.
일단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야 한다.
"Hola Senora"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라며 인사하고,
"Adelante!" (어서오세요) 라고 큰 소리로 반기며 -잊고 있던- 웃으며 인사하는 방법을 익혀야 했다.
열한 시 정도가 되면 자전거를 탄 소년들, 손에 메모지를 든 자전거 탄 소년들이 보이는데,
근처 식당에서 일하며 주문을 받으러 오는 직원들이다.
이모와 나는 가끔 도시락을 싸오기도 하고,
어쩔 땐 이들이 파는 멕시코 음식들을 시켜먹기도 했다.
이모 가게에 있는 동안 제일 자주 보던 자전거 맨.
어떤 날은 포장 된 음식을 싣고 다니며 팔길래 뭐가 있나 살펴보니
타코, 또띠야와 스프, 께사디야, 부리또가 한가득이었다.
나는 플라우따를 하나 집어 들었다.
(플라우따는 얇게 만 또띠야 안에 고기가 들어있는 부리또를 살짝 튀겨낸 것. (모습은 스프링 롤과 같다!))
로컬 식당의 음식으로 끼니를 떼우고, 한차례 바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디선가 달달한 분위기가 풍겨온다.
이삼일에 걸러 한번씩, 오후 네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꼭 이곳을 찾는 아이스크림 삼형제가 그 주인공.
배가 나온 뚱뚱보 아저씨 (가운데)는 매번,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100% 사랑에 빠진 미소 띤 얼굴로 가게에 들어와 손에 든 걸 건넨다.
처음엔 당황해서 웃지도 않고 눈을 크게 뜨고 침묵했는데, 자세히보니 아이스크림이었다!
(오, 내 사랑 아이스크림)
길에서 파는걸 함부로 먹어도 되는지, 까탈스러운 고민에 거절하려다가 도저히, 정말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아저씨의 미소에 못이겨 스푼에 있는 맛보기 아이스크림을 냉큼 입에 넣어버렸다. 그럼 이모가 묻는다.
"오늘은 무슨 맛이에요?"
"오늘은 레몬이랑 캔디"
"오!"
딱 봐도 불량품 같지만, 뚱뚱보 아저씨는 내 앞에서, 나머지 아저씨 둘은 가게 밖에서 너무너무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주문을- 기다리고 있어서, 난 이모에게 졸랐다.
"이모, 아이스크림 먹자!"
그럼 이모는 또 고개를 끄덕이며, 직원 둘과 조카 것까지 사라며 동전을 이만큼 집어주신다.
그럼 아저씨들은 저기서 더 행복한 미소를 뿜어내며 천천히 아이스크림을 푸기 시작한다.
아이스크림 삼형제가 올때마다 우린 행복한 미소를 나눠 먹었다. 새콤달콤하고 시원한 그런 맛으로.
나중에 세 사람이 함께 있는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봤을 때 물어봤다. 세 분이 어떤 관계냐고.
그런데, 정말로 형제라고 하네? 진짠지 농담인지.
그래도 보기 좋았다.
행복해 보인다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
이런 날도 있었다.
딱 봐도 손님도 아니고,
물건을 납품하는 사람도 아닌데 가게에 성큼성큼 들어오는 거라.
머리에 무스도 바르고 셔츠도 입고 이모네 가게와는 안 어울리는 조금은 세련된 가죽 가방을 들고 온 남자.
그 남자는 손님용 의자 (?)에 앉아 여직원 Carina 와 이런저런 얘기를 무려 30분 동안 나눴다.
나는 책 읽는 척, 몰래 둘의 대화를 엿들어봣는데, 남자는 Carina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더니, 금세 Carina를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Tonicol 음료를 하나 꺼내 놓고는 사라졌다.
"뭐지? 까리나, 저 남자가 너한테 이거 왜 주는 거야?"
Carina는 그냥 웃기만 했다.
나중에 이모한테 들은 얘기, 이 동네엔 Carina 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꽤 있어서,
일부러 가게를 오가며 인사를 하고, 눈을 마주치고 가끔은 저렇게 콜라나 타코 선물을 바치기도 한단다.
뭐랄까... 소년이 좋아하는 소녀에게 달콤한 사탕을 선물하는 것과 같은 건가.
여기서는 이렇게 음료수 한 병으로도 그런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건가.
한국으로 치면 카페라테 캔커피를 하나 건네는 것과 같은 그런 거?
그 맛이 궁금해서 다음 날 한 병 사마 셔 봤다.
첫맛은 톡 쏘고, 곧 달았지만 입안에 바닐라 향이 맴돌았다.
가끔 생갈 날 것 같다.
(하지만 Carina는 그 남자의 고백을 거절했다는 후문)
-
이모 가게 돈통엔 동전이 아주 아주 많았다.
뭘 이렇게 많이 갖고 있지? 하고 지폐로 바꿔놓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가끔은 지나가던 마림바 팀의 통통 튀는 연주 비용,
인디언 분장을 한 젊은이를 위한 팁,
그리고 씩씩하게 가게로 걸어 들어와 "이것 좀 사주세요" 라며 코코 맛 사탕을 파는 꼬마에게 줄 동전들.
나는 가게에 동전 몇개로 멕시코의 여러 문화를 구경했다.
의외로 어린 (이모의) 친구들도 많았다.
가방을 도매로 사가는 아주머니의 쌍둥이들. 엄마를 따라 이런저런 구경을 하는 게 신이 났는지,
참 밝아 보였다. 어떻게 눈이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지?
내가 계속 쳐다보자 토끼 같은 앞니를 활짝 드러내며 웃는다.
가방을 만들어오는 형제도 있었다.
이모가 다른 업무를 마칠 때가지 조용히 기다리던 둘은, 어쩌다 자기네 가방이 손님의 손에 들리면 조용히 미소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한참이나 자리를 지켰다.
나 같으면 "아 줄 건 빨리 줘요 우리도 바빠요" 하고 성질을 부렸을 텐데, 참 착하기도 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모두가 행복하고 열심이었다.
예를 들어 시장에 빌딩이 몇 개나 있는 이모 가게 건물주, 그 남자는 엄청난 부자이면서도,
이모가 어디가 망가지고 물이 샌다고 하면 아들을 데려와 페인트를 칠하고, 망치질을 하며 고쳐주었다.
길에서 과일을 컵에 넣어 파는 아주머니도 벌이 무서워 덜덜 떠는 나에게
먼저 해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며 넉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런 여유 넘치는 사람들이 있는 과달라하라.
이곳에서의 일상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행복의 온도, 내가 가진 직위, 소유한 것과 비례하는 만족도,
이런 게, 여기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중요한 사람에겐 중요하겠지만,
내가 가진 어떤 것과 상대방의 것을 비교하며 더 가지려고 욕심내는 모습이 없어 보여 참 좋았다.
나는 단순히 이런 그들의 마음을 "소박"하거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라 단정 짓지 않겠다.
그들에게 이곳은 어마어마한 세계,
삶의 터전,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공간,
짝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소...
덥고 지칠 때 들어와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는 곳.
그리고 사랑하는 이모에겐
아침마다 성경을 묵상할 수 있는 작은 성전이니까,
이 곳은 결코 초라하지 않다.
나는 자꾸만 아쉽다.
두고두고 이모의 가게가 그리울 것 같다.
그곳은 과달라하라의 작은 천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