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해보세요.
오레오 쿠키 치즈 케이크
6달러 50센트'
어지간하면 약속을 잡지 않는 일요일 오후,
대학 선배 언니를 만나기 위해 나는 급하게 차에 올라탔다.
그녀의 집까지 가는 내내, 머릿속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져만 갔다.
며칠 전 그녀가 카톡을 통해 곧 치료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다.
병은 증상도 없이 도둑처럼 찾아왔고 그녀는 속수무책 당하게 생겼다.
내가 늘 화가 나는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다.
’속수무책 당하게 생긴‘
마치 어디선가 나타단 손가락에 눌려 속수무책 찌그러져 땅바닥에 붙어버린 개미가 된 기분이다.
이유도 모른 체.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이런 사고를 마주하게 되는가?
나는 잡고 있던 손으로 애꿎은 운전대만 연신 때렸다.
언니가 얼른 마음을 진정시키고 치료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겠지만,
마음의 변화는 순서가 있어서 각 단계마다 정해진 양만큼 충분한 시간을 채워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에 지금 이 분노의 단계를 스킵할 수도 없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럼 일단 언니를 만나면 둘이서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은 다 싸잡아서
무당이 굿이라도 하듯, 레퍼가 렙이라도 하듯 욕이라도 퍼부울까?
그렇게 실컷 욕을 하고 난 후에는,
그간 캘리포니아에서 하이킹으로 다져진 언니의 막강한 체력을 믿어보라고,
미국이 뭐든 좀 느려터지긴 했지만 신약도 많고 짱짱한 의료진의 창의적인 방법도 기대해 볼 법하니 다행이라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할까?
그렇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난 후에는,
몇 년 전 마스크를 쓰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만났을 때,
우리가 삶과 죽음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 나눈 것을 기억하는지,
그때부터 단련된 우리의 정신이 이제는 아픈 몸을 이끌어줄 때가 왔다고,
그것이 우리의 자존심을 잘 지켜줄 것이라고,
우리는 결국엔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을 앞으로도 계속 찾으며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우리가 했던 말들을 상기시켜 줘야 할까?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도 우리는 정체불명의 손가락에 눌려 잔뜩 찌그러져 있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때마다 서로가 서로를 땅에 완전히 붙어버리지 않게 슬며시 끌어올려주고 있었다.
아마도 손가락의 관점에서 우리가 별 의미 없고 하찮은 개미들의 연대처럼 보이겠지만,
그림 모임을 가졌던 우리 집 거실 한 편의 관점에서 우리는(인간은),
절대 서로를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 서로를 끌어올려주는 존재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우리는 서로를 절대로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한참을 운전하니,
멀리 언니가 사는 아파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팜트리가 드리워진 휴양지 같은 수영장과 단지 내 멋진 카페가 있는 새로 지은 아파트였다.
도착해서 차를 세우니 마침 주차장 저편에서 같이 만나기로 한 대학 동창이 손에 뭔가를 한 보따리 들고 내리는 것이 보였다.
친구는 선배언니 주려고 갈비탕을 끓여 왔다고 했다.
나는 고작 오키드 화분 하나를 사들고서는 어떤 말을 해야 하나 그것만 고민했는데,
친구는 언니의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어젯밤 내내 부엌에 서서 갈비탕에 기름을 걷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만나기로 한 카페에 들어가 언니를 기다렸다.
곧 언니가 한 손에는 자기 팔뚝만 한 큰 물병을 옆에 끼고 수줍은 것인지 쇼트커트를 한 머리를 툭툭 털며 나타났다.
언니의 얼굴을 보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차분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친구와 나는 언니구역까지 우리가 힘겹게 왔으니 언니가 밥사라고 생떼를 부렸다.
언니는 우리에게 흔쾌히 밥도 사주고 커피도 사줬다.
그리고는 창밖에 노을이 지도록 우리 셋은 끝없이 수다를 떨었다.
우리는 울다가 웃었고 또 웃다가 울었다.
우리는 몇 시간을 그렇게 울다 웃기를 반복했다.
*그림설명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 이상하셨나요?
저는 요즘 아이가 바리스타로 파트타임 일하는 카페에 3시간가량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은 혼자 놔두고 갈 수가 없어서요.
그래서 카페에서 작업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그날도 이 글과 같이 할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매니저님이 치즈케이크 프라이스 태그가 급하게 필요하시다고 해서 그리고 있던 그림 위에 급하게 문구를 써드렸습니다.
그림도 같이 사용해도 되냐고 하셔서 흔쾌히 드렸습니다.
저는 그분께 감사한 것이 참 많거든요.
케이크가 다 팔린 지금은 카페에 저 싸인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뭔가 제가 급하게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언니에게 그날 했던 위로의 말들 역시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지는 못하겠죠.
하지만 잠깐이라도 제가 필요하다면 언제나 옆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이 글을 썼습니다.
매일 언니가 지내고 있는 하루를 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완성된 그림은 다음에 다시 업로드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