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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두부 May 20. 2023

생일선물 3

친구 따라 강남에 가기로 했다.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저축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어릴 때 잠시 엄마 손에 이끌려 동네 은행에서 저금통장 하나를 만들었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급여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월급통장이 전부였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돈을 모은다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혼자서는 영 자신이 없었던 것인지, 돈을 모으겠다는 나의 결심을 주변에 떠벌리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어떻게든 나와의 약속을 지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주변 사람들은 티끌 모아 태산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고,

그런 지인들의 반응에 저축이 의미 없는 짓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마음이 흐지부지 해지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따라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나는 오전에 잡혀있던 커피약속을 굳이 취소하고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비싼 스벅커피 대신 인스턴트커피를 한잔 들고 아이패드를 옆구리에 끼고 소파에 앉아 밤 사이 새롭게 업로드 됐을 최애 식물 채널과 함께 알고리즘 신에게 나의 아침을 맡길 작정이었다.

그런데 유튜브를 열자 나의 기대와는 달리 온갖 재테크에 관한 채널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얘는 내가 하는 말을 엿듣고 있는 게 분명해!

그리고 그날 아침부터 나는 뭔가에 홀린 듯 유명하다는 재테크 채널을 며칠 만에 모두 섭렵해버리고 말았다.


관심 있는 분들은 다 아실만한,

툭하면 우는 너나위님, 잘생긴 외모로 팩폭 하시는 부읽남님, 요점정리여왕 코크님, 이런 선생님이라면 나는 서울대입학 따놓은 당상 갓건영 님, 풍채만큼이나 믿음직한 송사무장님, 인터뷰의 신 김작가님, 친근한 동네 형 자청님, 내가 사는 미국 경제까지 실시간으로 읽어주는 김광석 교수님, 맨날 혼만 내시는 돈쭐남님, 그리고 짠순이 김짠부님 등등... 그 외에 너무 많아서 다 언급할 수도 없다.

나는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분들 채널의 조회수와 누적시간에 지대한 공헌을 끼쳤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일 아침 들을 만났다.


사람들은 재테크 채널이니 주식 종목이나 어느 지역 부동산을 콕 짚어 주는 내용일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물론 없지는 않지만) 이곳에서는 주로 자기 객관화에 대해, 실현가능한 계획에 대해, 지속가능한 노력에 대해, 이루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에 대해, 그리고 실제 성공의 경험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비록 영상 속의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나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최근 어려워진 경제로 '거지방'이라는 이름의 카톡 오픈 채팅방이 생겼다고 들었다.

그곳에서는 짠테크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가 소비를 감시하고 절약방법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엉뚱하고 재미난 해결책을 올리며 절약의 고충을 웃음으로 승화하고 있다니 같이 한다는 것은 분명 기운 나는 일이다.


생각해 보니 나에게 이런 동료는 돈을 모으겠다고 결심했을 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글을 썼을 때는 허접한  글을 읽고 의견을 나눠준 친구와 가족이 있었다.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같이 작업하며 격려해 주던 선후배가 있었다.

그리고 똥만 싸도 황금똥이라며 칭찬받던 어릴 때와는 달리, 하루 온종일이 지나도 잘했다 소리 한번 듣기 어려운 어른이 된 내게 그저 잘했다고 하트를 눌러준 온라인 친구들도 있었다.

혼자서도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헤쳐 나아간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나는 어쩐지 그렇게 하다가는 외롭고 힘에 부쳐 그만 쉽게 포기할 것 같다.


동료가 갑자기 계모임을 만들자 소리만 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을 언제나 내 곁에 두고 싶다.

언젠가 그 친구 따라 나도 강남에 가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누구나 곁에 두고 싶어하는 좋은 동료의 모습을 한 미래의 나를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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