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길을 걷겠다.
나는 앞 글에서 말했듯, 내가 왜 계속 연기를 하고 있는 지를 몰랐다. 말 그대로 그 이유를 찾지 못하고 그냥 학교만 계속 다니고 있었다. 그때 나는 슬럼프를 겪었다. 내가 이걸 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니까 재밌게 잘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연기를 왜 하는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뚜렷한 목표가 있는 동기, 선배들 사이에서 '그냥' 하고 있는 나는 당연히 그들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를 찾은 것은 '유레카!'하고 깨달은 게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거창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어느 순간 그런 거였구나, 하고 알아차렸다.
한 학기가 끝나고, 자주 놀던 친한 동기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그간 힘들었던 일을 얘기하며 새벽 해가 뜨도록 대화를 했다. 그리고 그날 집에 와서 그 학기를 정리하면서 돌이켜봤다. 뭐가 문제였고, 나는 어떤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지. 결국 어떤 결과를 맞이 했고 어떻게 수긍했는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러다 내가 연기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를 찾았다.
나는 나를 알아가고 있었다. 연기를 하면서 나의 또 다른 모습들을 조금씩 찾고 있었다. 원래 있었지만 내가 미쳐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의 모습들을 깨달았다. 연기를 하고, 풀리지 않는 캐릭터들을 연구하면서 나는 나에 대해 더 이해하고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연기는 내게 그런 것이다. 연기를 하고 연극을 준비하면서 아직도 나는 나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이런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는구나. 내가 작업을 하는 성격은 이렇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나의 단점은 이것이구나. 그리고 또 내가 잘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나 많구나. 하면서. 나는 점점 레벨 업하고 있다. 연기를 배우고 사람을 만나고, 연극을 하고 연기를 하면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성장하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계속 연기를 하는 이유다. 나는 누군가가 '너는 왜 연기를 시작했어?' 하고 묻는다면 솔직하게 대학입시를 그걸로 선택해서. 하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을 누군가가 '그럼 왜 계속 연기를 하는 거야?' 하고 물으면 이제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나는 연기를 하면서 나를 알아가는 중이거든.'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눈을 감을 순 없다. 왜냐하면 아직 그 사람이 겪어보지 않았을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사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연기를 하면서 내가 겪어보지 못했을 것들의 몇 퍼센트라도 느끼고 갈 수 있다. 나는 연기를 하면서 몰랐던 나의 다른 모습을 찾고 있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누구인지 알게 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살고, 나의 성격은 이러하고…. '나'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에 대해 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가장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나를 알아가면서 최소한 내가 배운 것들과 내가 하고 있는 연기가 지루해서 미쳐버리기 전까지는 연극을 계속할 생각이다. 일단은 하면서 행복하니까. 그게 가장 큰 이유이다.
이건 내가 4년 동안 연기과를 다니면서 배운 것이다. 나는 왜 계속 연기를 하고 있는지. 연극을 하며 꿈꾸고 있는 '나'는 누구인지.
나는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배운 것들로 한발 더 디뎌, 내 인생의 제2막을 시작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