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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Mar 25. 2022

상상과 다른 현실

입시 탈출한 새내기

 나는 내 입시 결과가 만족스러웠다. 4 달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입시를 했고, 다들 못 간다고 했던 생각보다 경쟁률이 높은 학교에 들어왔다. 그렇게 넓은 강의실과 연습실. 만개할 꽃들과 화사한 20살의 봄을 잔뜩 기대하고 입학한 나는, 첫 수업과 동시에 캠퍼스 라이프의 꿈을 접게 된다.


 연영과가 있는 캠퍼스는 본캠에서는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캠퍼스보다는 그냥 '건물'에 가까웠다. 계단 몇 층만 내려가면 금방 다른 층 다른 과에 도착했다. 전공 책을 들고 벚꽃을 맞으며 느긋하게 수업을 들으러 가는 모습을 상상했던 예체능 새내기는, 넓은 강의실에서 아침부터 다리를 찢고 있었다. 연기과 1학년의 시간표는 그야말로 '정신없음'이었다.


 나는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했다. 짧게 한 입시와 부족한 기본기를 알기에 더 열심히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수업을 듣고 밤을 새우고 작업을 하는 동안 1년이 훌쩍 지나갔다. 솔직히 지금 내 20살에 대해 물어본다면 그냥 열심히 살았던 것 밖에 해줄 말이 없다. 기억도 가물가물해서. 나의 20살은 여느 10대가 꿈꿀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은 즐기지 못한 것에 조금 후회가 되지만 그때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고 학교만 열심히 다녔다.


 그리고 뭔가가 이상하다는 걸 2학년 1학기 즈음에 알아챘다. 그때부터 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과연 이게 내가 원하던 것이 맞는지. 막 2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오신 교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질문을 했다. 


"너희는 왜 연기를 하니?"


 나는 그날, 거짓말을 했다. 






 그때 자퇴나 휴학을 생각하기에는 두려웠고 더욱 막막했다. 다시 입시를 하기는 싫었고, 자신도 없었다. 학교를 와서 전국 각지에서 만난 친구들이 좋았고, 아주 힘들었지만 수업도 나름 재미있었다. 하지만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뭐가 맞는 것인지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다 맞는 길인 것을. 


 교수님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다양한 직업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보는 것이 흥미로워서'였다. 정말 바보 같은 대답이었다. 그 후로 내 동기들의 대답은 줄줄이 화려하고 묵직했다. 이기적이었던 자신이 타인의 인생을 느끼며 이해할 수 있어서, 연기를 하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연기가 내 우울했던 인생을 바꿔줘서. 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내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물론 그에 대한 답(?)을 찾은 건 그 후로부터 1년 정도가 지난 후지만. 


 그 간단한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었던 나는 그날부터 엄청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나는 왜 연기를 하고 있는가.' 아니, 왜 '계속'하고 있는가. 분명 내 꿈은 작가였는데. 정신없는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왜 연기과에 도전을 하게 되었는지 잠시 잊고 살고 있었다. 그 수업은 그런 내 머리를 세게 한 대 때렸다. 고민을 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았고, 그저 열심히 수업을 듣던 청춘에게 그것은 슬럼프의 시발점이 되었다.


 2학년 1학기를 나는 정말 힘들게 보냈다. 연기 수업도 잘 따라가지 못하고, 길을 잃은 것 같았다. 그런 고민들과 생각을 할수록 연기는 더 안됐다. 맞게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항상 들었고, 이건 내 모습이 맞나? 하는 고민도 항상 따라붙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인물을 창조해서 내가 연기를 해야 하는데 자꾸 그 인물한테 말려들고 내 모습과 다른 점만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맡은 캐릭터는 이럴 것 같은데 나는 아니니까 이만큼만 하자.'


 나는 내가 맡은 캐릭터와 타협을 봤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그랬다. 그 캐릭터의 성격과 말투, 차림을 다 파악했지만 내가 따라가지 못했다. 하려고 하면 자꾸 어색해졌다. 나는 이러지 않는데, 진짜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얘기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에 캐릭터를 연기하지 않고 자꾸 내 모습만 들고 왔다. 어영부영 수업을 듣고 나는 반쪽짜리 캐릭터를 만들었다. 발표회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한 과정을 마치면 발표회를 했고,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학생들이 만들어온 상황극을 걸러낸다. 어떤 상황극은 올리고, 어떤 것은 올리지 않는 등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것들을 추려내는 작업을 거의 일주일 내도록 한다. 그리고 내 대학생활 처음으로 발표회 준비 날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그건 굉장히 창피한 일이었다.


 겨우겨우 친구와 상황 하나를 가지고 나가, 발표회를 무사히 올렸다. 그날 했던 우리들의 발표회는 다른 교수님들과 선배들의 입에서 근 몇 년간 가장 감동적이고 재미있던 발표회였다는 말이 나왔다.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에게는 아니었으니까. 교수님은 평가회에서 그런 나에게 '이번에 왜 열심히 안 했어.'하고 말씀하셨다. 할 말이 없었다.


 슬럼프는 나에게 매일매일 같지만 다른 고민거리를 안겨주었고, 그럴수록 나는 점점 답답해져 갔다. 그렇게 캐릭터를 연구하는 과정인 1학기를 끝마칠 무렵, 나는 찾았다. 내가 왜 계속 연기를 하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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