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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Feb 04. 2022

저, 연영과 가고 싶어요! (2)

꿈이 없던 고3의 반란 - 학원편

 자습시간, 화장실에 숨어서 연기학원을 찾아보던 친구와 내가 농담처럼 하던 얘기가 있었다. 


"그나저나 학원에서 우리 안 받아주는 거 아니야?"


 옛 말에 '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조상님들은 하나같이 어쩜 그리 현명하셨는지, 그 말도 정확하게 맞았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처음으로 문을 두드렸던 학원에서, 친구와 나에게 돌아온 건 부정적인 답변이었다. 너무 늦어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다들 하나같이 늦었다며 우리를 돌려보냈다. '살도 빼야겠는데 저희는 못 받아 줘요.'라는 상처와 함께.


 내가 실기시험을 약 4달 앞둔 시점부터 학원을 알아보았으니 늦은 게 맞았다. 그래서 우리도 더 동동거렸고 더 절실했다. 하루라도 빨리 학원을 등록해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했고, 간절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에게 차갑기만 했다.


 -연영과에 가려면 다이어트도 해야 하고 특기도 준비해야 하는데 이미 너무 늦었다. 벌서 입시반을 꾸려서 안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학원들이 우리를 거절했다. 학원 입장에서는 입시가 코앞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을  받자니,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너무 속상한 일이었다. 연영과 가기에는 부족한 걸 알기 때문에 학원을 다니려는 건데.


 그렇게 시작부터 튕기고 나니까, 약간 무서웠다. 주위에서 다 안된다고 하니까 역시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하지만 이미 나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미 집에도 선전포고를 해놨고, 이제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연영과 입시라는 길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락을 한 곳에서 일단 한번 와보라고 했다. 테스트를 볼 수도 있으니까 간단한 준비를 해오라는 말과. 

 

 학원 하나 등록하는데 뭐 이리 어려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마지막 모험이었기 때문에 장황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나는 그 학원에 가기 전, 나름 알아본 대로 준비를 했다. 연영과에서는 무용과 노래 특기를 보기 때문에, 나는 춤과 뮤지컬 노래를 준비해 갔다. 평소 내가 좋아하던 뮤지컬 노래를 했고, 학교 축제로 준비했던 춤을 췄다. 뒤늦게 들었는데, 그때 원장 선생님께서 나를 순순히(?) 받아준 이유는 '눈빛에서 뭐든 할것 같은 애'라는 게 느껴져서 라고 말하셨다. 그렇게 나는 드디어 연기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친구와 함께 등록한 그 학원에는 당시 우리 학교에 몇 없는 연영과 입시생 친구도 한 명 있었다. 학교에서 오며 가며 봤던 이쁜 그 친구는 우리를 보자마자 반갑게 대해줬다. '학교 친구랑 같은 학원을 다니다니!' 하면서. 약간 낯을 가리는 내게, 처음 보는 활발한 친구들이 가득했던 학원은 조금 어려웠다. 하지만 그 분위기에 적응할 새도 없이 수업은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입시반'의 수업이. 


 첫 수업 때 우리는 입시반의 마지막 기초 연기 수업을 들었다. 그러니까, 기초 연기 수업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채 입시를 준비하게 된 것이다. 사실 좀 걱정이 되긴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독백을 먼저 하게 되었으니 막막했다.


 첫 독백을 받았던 날은 아직도 기억난다. 처음 보는 희곡의 처음 보는 대사들과 말투, 그리고 앞에 쭉 앉아있는 눈빛들에 나는 얼었다. 단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10분을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기다리던 선생님은 결국 침묵을 먼저 깨고 입을 여셨다.


"너 사람들 앞이라 긴장하는 거야? 얘내들 어차피 너 학원 나가면 다신 안 볼 애들이야. 그냥 해."


 라고. 그때 나는 덩달아 긴장하고 있는 친구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그러고 있는 내가 너무 못나게 느껴졌다. 나는 그제서야 독백 종이에 적혀있는 대사를 제대로 쳐다봤다. 그리고 상황을 상상하며 한 글자씩 소리 내어 읽었다. 앞에 앉아있던 친구들은 박수를 쳐줬다. 내가 뭐라고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내 첫 독백은 그렇게 최악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말은 틀렸었다. 난 아직도 몇몇 학원 친구들과 가끔 연락한다!)


 학원에 가면 수업을 시작하기 전 1시간 동안은 당일 나눠주는 독백과 스트레칭을 한다. 독백을 받으면 약 10분 동안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외운다. 그 대사가 무슨 작품인지 까지 알면 좋겠지만 나는 많은 작품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 모르는 것이었다. (덕분에 벼락치기라도 공부가 되었다.) 그리고 각자 연습을 하고, 시간이 되면 다 같이 둘러앉아 보는 가운데 발표를 했다.


 나는 이 일명 '당일 대사'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건 즉흥적인 독백에 대비를 하기 위한 훈련이기도 했고, 대사의 상황을 빨리 파악하거나 인물을 구현하는데 그 당시에는 준비가 덜 되어서 항상 싫던 시간이었지만,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충분하지 않던 나에게 선생님은 어울리는 독백을 찾아서 주셨고, 본격적으로 입시 독백을 연습했다. 


 이렇게 쓰다 보니까 내 입시는 온갖 걱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은데, 대입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그래도 나는 아찔했던 대입을 무사히 치렀고,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 쓸 수 있는 거니까 사실은 행복했던 기억이다. 


 독백 다음으로 쓸 걱정거리는 무용 특기 이야기다. 무용은 내가 입시를 하면서 가장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지만, 끝에는 결국 내가 대학을 가는데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용이라고는 유치원 때 다녔던 발레가 전부였던 나에게 무용 특기라는 것은 아주 높은 장벽과도 같았다. 게다가 아크로바틱 테크닉까지 있는 무용작품이 바로 내가 준비해야 했던 것이었다.


 연영과 입시는 보통 독백과 특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기는 다양했지만 주로 노래와 무용을 봤다. 나는 노래를 좋아하기도 했고, 무용이라는 장르에 자신도 없었기 때문에 노래가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시는 원하는 것만 할 수 없는 일. 결국 특기 결정 날 목 상태가 최악이던 나는 약 한 달간 있었던 노래 특기반에서 무용 특기반으로 옮겨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집에서 나는,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울었다. 


 눈물의 이유는 정말 많았다. 아크로바틱 테크닉에 대한 두려움과, 이제 겨우 친해진 노래 특기반 친구들과 멀어져 또다시 새로운 반에서 적응해야 한다는 걱정 등. 기타 많은 이유로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선생님한테 노래가 하고 싶다고 얘기도 해봤고, 연습도 해서 보여드렸지만 결국 나는 무용반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계속 징징거리는 나에게 '입시가 원래 그런 거야.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어.'라고 단호하게 말해주셨고, 그 답을 마지막으로 나는 마음을 먹었다. 그래, 해야지 뭐. 하며 부딪혀 보기로. 


 마음먹고 무용반에 들어간 후로는 다리 찢기와 그놈의 물구나무서기가 날 괴롭혔다. 테크닉 선생님과의 수업은 나에게 피하고 싶은 시간들이었다. 벽 없이 그냐 물구나무 서기, 물구나무를 서서 손바닥으로 걷기, 물구나무를 선 채로 떨어지지 않고 발로 착지하기, 한 손을 짚고 물구나무를 서는 등 이미 기본기가 탄탄한 학원생들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반대로 나는 점점 작아졌다. 물구나무를 서는 기본도 안 되는 나. 그리고 그 새로운 수업과 새로운 반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초라한 나. 


  계속 적응하지 못하던 나에게 친구들은 먼저 손을 뻗어줬다. 혼자 부들거리면서 다리를 찢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요령을 알려주고, 포인이라는 뜻밖의 재능을 찾아주었다. (포인-Pointe : 발등을 쭉 펴서 둥글게 만들어 주는 발레의 기본 발 동작) 친구들과 친해지고 내가 잘하는 것을 찾아 나가며 나는 입시를 견녀냈다.


 '버텼다.' 나는 몇 달에 한번 한다는 지옥의 체력훈련도 버텼고, 5분짜리 노래 한 곡이 끝나기 전까지 완벽한 다리 찢기를 만들기 위해 부들거리며 버텼고, 무용 입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테크닉을 하다가 떨어져도 다시 벌떡 일어나서 동작을 하며 버텼다. 그렇게 독하게 버티다 보니, 자연스럽게 살도 빠져 있었고(달마다 체중 검사를 했는데 두달만에 12키로를 감량한 상태였다. 선생님들이 깜짝 놀랐다) 무용 작품도 완성되어 있었다. 그때는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입시를 시작한 지 약 두 달이 좀 넘었을 때였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내가 할 일은 특기와 독백 디테일을 살리고, 내가 갈 수 있는 학교를 찾아봐야 했다.


 나는 고작 4달을 입시학원을 다녔기에,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보고 싶었던 꿈의 학교부터 겨우겨우 추가합격이라도 기대할 수 있을까 싶은 학교, 그리고 갈 수 있다고 생각되는 학교를 넣었다. 


 결국 나는, 모두가. 아니, 나조차도 기대하지 않았던 학교에 붙었다. 그렇게 나는 연영과 전공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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