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어린 시절, 다들 한 번씩은 불러보거나 들어봤을 그 노래. 나는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릴 적 내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불렀다고 한다. 내가 연영과를 가겠다고 부모님께 처음 말씀을 드린 날에도 내가 존경하는 부모님은,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 정말로 하고 싶은 거니? 하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 꿈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이 아니었다.
나는 사실 꿈이 없었다. 대학 진학을 코앞에 둔 대한민국의 고3이 말이다.
"나는 성우가 되고 싶어."
"나는 PD."
"넌 꿈이 뭐야?"
"나는……."
고3 때 나는 멋진 친구들을 만났었다. 명확한 꿈은 없지만 공부를 잘하는 친구, 꿈도 있고 성적도 좋은 친구, 아주 어릴 때부터 꿈이 정해져 있던 친구. 나는 그중에서 꿈도 없고 성적도 그저 그런 학생1이었다. 나는 분명,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있던 '특별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말았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이 된 나를 상상했던 12살의 소녀는, 어느새 세상의 쓴맛을 보고야 말았다. 대학은 성적순이라는 당연한 쓴맛.
아직도 기억난다. 고3 학기 초에 담임 선생님과 했던 진학 상담이.
나는 아마 그날 비로소 본인이 고3이라는 걸 직감했을 것이다. 내 평범한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교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집 근처'에 있던 이름들이었고, 더 어렸을 때는 설마 내가 '그' 학교들은 가지 않겠지. 하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더군다나, 더 아찔했던 것은 확실한 전공 하나 생각해 둔 것도 없었던 내 게으름을 인정한 순간이었다.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어린아이는 그대로 자라, 하고 싶은 것만 많은 고3이 되어있었다. 항상 마음속에 간직했던 꿈들은 넘쳐났지만 벼랑 끝에 몰린 그날의 고3은 어느 것 하나 꺼낼 수 없었다. '자, 어떻게 할래?'하고 바라보는 담임 선생님의 눈빛 앞에서. 나는 그대로 희망 직업란에 '공무원'이라는 세 글자를 썼다. 사실은 희망하지 않으면서.
나는 그날 절망했다. 그리고 과거의 내 안일함을 탓했다. 하지만 아무리 자책해 봤자 내가 올해 대입을 앞둔 고3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고, 나는 선택을 해야 했었다. 이대로 내 성적이라는 숫자 앞에 굴복할지. 아니면 눈 질끈 감고 마음 한구석으로 미뤄왔던 내 꿈을 잡을지.
그 생각들을 정리하는 데는 생각보다 적잖은 시간이 들었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나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내가 간직하던 꿈. 많고 많은 하고 싶은 것들 중에 가장 하고 싶은 것. 당연히 힘드니까 안될 거라 생각했던, 내가 한구석에 꼭꼭 간직해 온 꿈은 바로 '작가'였다. 그저 글을 쓰는 사람. 내가 원하는 건 단순했다.
그리고 여름이 다가올 무렵 나는 선생님을 찾아갔다.
"저 점심, 저녁 급식 다 취소할 수 있어요?"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물어왔다. '너, 작가가 하고 싶다고 안 했니? 그런데 왜 밥을 안 먹으려 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어본 선생님께 나는 좀 더 자신감을 가지려 노력하며 말했다.
"저, 연영과 가려고요."
선생님을 설득하는 데는 며칠이 걸렸지만, 나는 결국 급식을 다 취소했다. 일단 연영과에 가려면 행복한 인간답게 살던 내 체중에서 벗어나야 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통통한 편이었기 때문에, 다이어트부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다들 어느 정도는 알고 있겠지만 연영과 입시란 외적인 것들에서도 점수를 매기기 때문이다. 그 때 내가 정한 목표를 위해선 당연한 순서였다. 그런데 여기서 거슬러 내려가서, 내가 왜 연영과를 택했느냐고? 답은 간단하다. 그야 연영과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니까.
사실 성우가 꿈이던 친구가 그렇게 말했다. 연극영화과는 많은 것을 배운다고. 우리는 학과 이름에 연극도 영화도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가야할 곳을 찾은 듯 잔뜩 들떠있던 우리는 행복한 상상만을 했다. 원하는 학과에 가서 연기하는 것도 배우고 시나리오를 쓰는 법도 배우고 있을 우리의 모습을. 그 행복한 생각들에,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선택했다. 연영과에 가기로!
연영과에서는 시나리오 작법과 창의적 글쓰기 등 내가 배우고 싶은 수업들이 많았다. 자습시간에 숨어서 검색해 볼 때마다 꿈을 찾은 것처럼 벅차오르던 19살의 나는, 연영과 커리큘럼에서 그 생각들에 확신을 얻고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연영과에 가기만 하면 하고 싶은 게 많던 나는 다양한 것들을 배울 수 있고,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글을 쓰는 법도 배울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열정을 불태웠다. 공무원을 적어 냈을 학기 초와는 달리 기뻤다. 생각만 해도 설렜으며 너무 하고 싶었고, 빨리 가고 싶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부모님의 응원과 지지로, 바로 학원을 등록했다. 그때는 내 10대의 마지막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이였다. 입시는 4달밖에 남지 않았고 모든 것이 부족했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발등에 용암이 떨어진 격이었다. 나는 이때까지의 모든 내 게으름과 안일함을 청산하고, 마지막이라는 생각 하나로 매달렸다.
8층짜리 학원 건물의 계단을 맨발로 뛰어 오르고, 근처의 큰 공원을 몇 바퀴나 뛰며 미친 듯이 운동을 했다. 입시 전까지 인스턴트와 치킨, 케이크 같은 것들을 싹 끊고 고구마나 달걀흰자, 과일만 먹고살았다. 또, 학원에서 주는 독백들을 달달 외우고 무용 특기를 위해 울면서 다리를 찢었다. 매일 발성 연습에 노래 연습도 했고, 하루에 물 2L는 거뜬히 넘게 마셨다. 물로 배가 부른 날에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뿌듯해하며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내 인생 중 가장 뜨거웠던 여름이 지났을 때쯤엔 나는 무려 '16키로'를 감량한 상태였다. 그렇게 나는 입시를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