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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엠 Mar 20. 2020

(11) 쇤베르크와 아이들

그리고 아도르노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을 들은 순간, 제 머릿속에선 플라톤, 헤겔부터 벤야민까지 예술에 대한 수많은 담론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러게요, 예술은 대체 무엇일까요. 척척박사 타이틀이 여러 개나 있는 석학들이 내놓은 대답이 전부 제각각인 걸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 몇 마디로 정의내리기 매우 어려워 보입니다. 적어도 우리의 현재에선 ‘예술’이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을 명확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술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예술이 있다는 건 당연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겐 예술과 예술가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겠죠. 


‘현대’와 ‘예술’이라는 두 키워드를 내세운다면 가장 유력한 오늘의 주제는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산업화 시대 이후의 재생산성과 그로 인한 예술 개념의 변화겠지만 이 주제는 박사논문 하나가 나와도 부족할 만큼 방대하고 어려운 주제입니다. 대신에, ‘현대’에 ‘예술’을 하는 ‘음악가’들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현대와 예술에 대한 일면을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어느 예술 분야건 예술가들의 아티스트로서의 자아와 예술에 대한 인식이 그 어느 때 보다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다 못해 폭발해버린 시기는 모더니즘의 시대입니다. ‘모던’이라는 이름 아래에 완전히 저세상에 가까운 예술을 창조해내었죠. 음악도 예외가 아닙니다. 음악에서 모더니즘이라 하면 클래식 입문자와 숙련자 모두를 두려움과 수면에 빠지도록 만드는 쇤베르크와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과 같은 그 일당들이 대표적으로 언급되곤 합니다. 


에곤 쉴레(Egon Schiele)가 그린 쇤베르크의 초상화 (1917)


‘신 음악파(Neue Musik)’, 제 2 빈 악파(zweite Wiener Schule)‘ 등의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쇤베르크 악파는 무조음악(Atonale Musik)과 12음 기법(Zwölftonetechnik)을 기반으로 기존의 음악 법칙을 완전히 뒤집어놓은 새로운 음악 법칙을 만들어냈습니다. 무조음악은 이름 그대로 우리가 아는 장조나 단조 같은 조성이 전혀 없는 음악, 즉 장조나 단조의 기준이 되는 으뜸음의 존재가 무의미한 음악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으뜸음의 부재를 해결하는 방법이 12음 기법입니다. 12음 기법은 한 옥타브 내에 존재하는 모든 음을 다 써서 하나의 주제를 만든 후 그 주제를 변형하여 곡을 진행하는 기법입니다. 


쇤베르크의 op.33a에 나오는 주제를 예시로 설명하겠습니다. 



보시다시피 한 옥타브 내의 12음을 다 써서 만든 하나의 주제가 있습니다. 이 주제는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변형이 됩니다: 거꾸로 연주하거나, 뒤집어서 연주하거나 뒤집은 다음 거꾸로 연주하거나 합니다. 



물론 이대로 곧이곧대로 멜로디만 연주되는 게 아니고, 이 규칙을 기반으로 (불협)화음을 쌓고 리듬과 강약을 더해 하나의 곡을 만들어 내는 게 쇤베르크와 그 작당들이 만든 새로운 음악입니다. 


글렌 굴드가 연주한 op.33a를 들어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lVneJl9lGiM


네, 알고 들어도 여전히 저세상 음악입니다. 마치 생전 처음 보는 식재료를 맛볼 때와 같은 설명할 수 없는 난해함과 복잡함이 귀에 감돕니다. 실제로 아도르노는 그의 저서 <<신음악의 철학(Philosophie der neuen Musik)>>에서 쇤베르크의 음악을 파악할 때 ‘재료’(Material), 의 개념에 기반하여 분석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아도르노가 말하는 ‘재료’는 음악적 수단의 총체로서, 인간의 의식과 사회의 발전이 축적되어서 퍼포먼스라는 형태로 표현되는 정신을 의미합니다. 아도르노는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을 이러한 음악 재료의 완전한 합리화라 설명합니다. 이 합리화를 통해 음악은 미술에서의 모더니즘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예술가의 가능성을 극단적이고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고, 쇤베르크와 그의 기법은 이러한 음악의 모더니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다시 말해, 쇤베르크와 그 이후의 음악을 이해하는 방법은 현대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과 그 방향이 같습니다. 그 방향의 끝은 예술이 만들어지는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예술의 개념은 존재하지만 무엇이 예술인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그러기에 쇤베르크의 음악은 여전히 너무나도 그 맛이 복잡하고 미묘합니다. 아도르노 같은 분들 입맛엔 맞는 것 같은데 아직 저에게는 편안하게 맛볼 수는 없는 어른의 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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