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사물을 표현하는 형식 관찰기>/제주도립미술관
제주살이 1년 차가 거의 채워질 때쯤 벼르고 벼르던 도립미술관을 다녀왔다. 도립미술관에서는 상설전시는 하지 않았고, 특별전시 <예술가의 사물을 표현하는 형식 관찰기> 전시가 한창이었다. 빛나는 홀로그램 그래픽 디자인 속에서 익숙한 단어 '포스트 모더니티'와 '모더니티'가 들어왔다.
앎…
20세기는 모더니티... 21세기는 포스트 모더니티...
이 두 글자를 빼놓지 않을 수 없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기부터 20세기의 전쟁을 하면서 식민지를 늘려가는 몇 세기 동안 인류는 '개발 (develop)'에 온 열정을 다했다고 해도 말이 아니었다. 항상 더 발전된 것... 더 나아진 것... 인간은 진보한다고 믿었고, 퇴보하는 것들은 사라지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잠깐 딴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현재 Spotify라는 음악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다. 그곳에는 내가 자주 들은 음악을 바탕으로 AI가 알고리즘 분석을 통해 한 주마다 나에게 음악을 추천해준다. 그런데 요즘 새로운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음악이 못마땅할 때가 있는데 과연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회가 '한 단계 더 진보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가져볼 수도 있겠다. (내 취향도 잘 모르면서!)
다시 되돌아와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가 당연시받아 들었던 전통적인 가치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하나씩 다시금 '인류는 진보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다시금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90년대 말부터 시작해서 전통적인 가족관계를 부정하고, 성에 대한 의식도 변화하고, 젠더갈등과 페미니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이분법 (dichotomy)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지양하고 있다.
전시 입구부터 마음에 와닿았던 한 문장이었다.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전시회를 보러 다니면 피곤해지는 이유였다. 많이 걸어 다니니까 다리가 아픈 것은 물론이요, 아티스트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이거는 무엇일까?'라는 정신적으로도 생각을 많이 해야 했기 때문일지도...
전시회에 들어가자마자, Wall text 혹은 Introduction text가 있다.
전시회의 기획의도를 쉽게 풀어써서, 왜 이런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는지, 관람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주제는 무엇인지, 전시의 큰 틀을 설명해준다.
'모더니티(즘)은 역사는 진보한다는 확신, 합리적 수단이 존재한다는 목적 합리성과 의사소통은 일치한다는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살아있는 시대가 가지고 있는 거대 서사를 추구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티(즘) 사회현상은 가부장에 대한 권위의 하락, 낯선 형태의 가족 구성, 성의식 변화와 페미니즘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기획전시 <예술가의 사물을 표현하는 형식 관찰기>는 전통적 가치를 대변하는 이미지인 <가족>, <소나무>, <백자>, <대나무>의 4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서 전통적 관념이 현대의 21세기에는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지 국내의 현대미술작가 25명의 작품을 바탕으로 이에 대한 대답을 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개념은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빠르게 와해되고 변화했다. 인간사회의 기본적인 구성이 가족이라는 믿음은 21세기 현재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전시 벽문에서-
아버지 없이 나머지 가족만 월남한 이만익의 작품에서는 현대사를 겪으면서 가족이 해체되고 있는 현상을 화폭에 담고 있다. 그림의 선을 단순하게 구성하여 판화에 찍힌듯한 명료한 선을 표현함과 동시에 가족 구성원의 숫자를 통해 현대 사회가 전통적인 가족상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 공중파 tv 프로그램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국제커플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가족 형태가 아니다. 변순철 작가는 <짝-패> 시리즈에서 관습적인 가족 구성에 대한 개념을 부수고 21세기에 걸맞은 다양한 가족 구성원을 보여주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미디어에서 국제커플을 보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이야기였는데, 요즘은 주위를 둘러보면 다문화가정 등 정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차츰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적인 가족상(像)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관찰할 수 있는 현상 중 하나이다.
오늘날의 문화적 상황에서 작품 속 기호나 이미지, 표상 체계는 실재와 관계없다. 다만 실재보다 터무니없이 미화되고 각색된 초-실재적 환상 만이 있을 뿐이다. - 전시 서문에서-
우리는 이미지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한다. 시각적인 이미지는 글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백 마디의 말을 하나의 이미지를 통해 하나의 기호로 우리에게 의미를 전달한다.
미디어 아티스트 임창민 작가는 사진과 디지털 화면을 병용해서 일종의 '눈속임 회화'를 보여준다. 모더니티(modernity)가 휩쓸고 간 이후인 포스트 모더니티 (post modernity) 사회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
요즘에는 증강현실 AR (augmented reality), 가상현실 VR (virtual reality) 가짜는 진짜 같고 진짜는 가짜 같은 것이 판치는 세상이다. 내가 바라보는 것이 진짜 존재하는 것인지 진위 유무 (authenticity)를 판단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
소나무는 항상 고전문학에서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비들이 글을 쓸 때 왕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의 정신을 '소나무'에 비교하고 있다. 21세기인 현재의 시점에서 현대미술 작가들은 자연에 대한 관습적인 상상 속에 이미지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통상적인 관념을 지우고 소나무 자체만을 바라보니 그냥 자연 속에 조화롭게 존재하고 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그냥 아름다운 자연 그 자체를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뮬라시옹 (simulation)은 포스트 모더니티 사회현상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그래서 실재를 압도할 수 있도록 이보다 미화, 과장되고 각색된 것을 통칭한다. -전시 본문에서-
사진작가 구본창은 백자 시리즈 <Moon Rising III> 을 통해서 세계의 여러 박물관 및 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달항아리 사진을 찍어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 프랑스 파리의 기메박물관, 일본 교토의 고려미술관, 서울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 등 달항아리의 복제된 이미지를 연속해서 보여줌으로써 각각 다른 달항아리를 대상마다 빛을 다르게 설정하여 마치 관람자가 일련의 시리즈로 착각하도록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가 쟝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는 그의 책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서 가상과 실재에 대한 담론을 펼치고 있다. 똑같이 생긴 수많은 달항아리들 가운데 달항아리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있을까?
합리성이라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현대미술에서는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어쩌면 이런 의문 제기는 현대미술이 가진 숙명일지도 모른다. -전시 본문에서-
사군자 중 하나인 대나무는 인간의 인성을 수양하고 지키는 것이 중요한 덕목을 보여준다.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조선시대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김선형의 작품 <가든 블루>는 파란색 단색으로 그림을 그려 수묵화 전통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캔버스를 타고 흘러내리는 잉크의 흘러내림이 마냥 전통적인 수묵화를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작품은 방 한편에 프로젝터로 영상작품이 상영되고 있다. 미디어를 활용하여 사라지고 반복되는 영상으로 작품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실제와 재현의 반복이라는 포스트 모더니티 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기획전 <예술가의 사물을 표현하는 형식 관찰기>
전시기간: 2021년 6월 22일~9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