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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디안 Nov 21. 2021

불타오르네

최애, 타오르다 - 우사미 린 (2021)

한국 대중가요 중흥기 문화대통령 서태지
솔로가수 가수이자 일본 음악시장 선봉장 보아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맞았던 보이그룹의 신기원 빅뱅
비틀즈 이후 세계 최고의 보이밴드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방탄소년단


나에게도 위와 같은 아이돌이 있었다. 서태지로 대중음악을 입문하여 인생 첫 콘서트를 경험했고 보아가 오리콘 차트를 점령하는 것을 보며 응원하기도 했다. 빅뱅의 음악은 친구들과의 노래방 단골 넘버였고 지금 BTS는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주목시키는 최고의 그룹이 되었다. 새로운 앨범이 나오면 스트리밍 서비스나 mp3로 다운로드하여 정주행하고 지인들에게 추천하기도 하고 sns에 공유하는 정도가 내 팬심을 표하는 게 고작이지만 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샤이 팬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돌의 원래 의미는 우상이다. 원래는 종교적인 의미가 강했지만 1940년대 프랭크 시나트라의 대중적인 인기를 통해 젊은 층에 열광을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되면서 대중문화계 그리고 연예계에서 사용되게 되었다. 그런데 나 같은 팬은 일코 팬도 아니고 아주 라이트 한 팬이라고 하더라. 아이돌 팬의 일상과 그들이 생각하는 아이돌, 그리고 그중에 최고로 애정 하는 멤버 또는 팀을 의미하는 '최애'라는 단어는 사전적인 의미만 알고 있었다. 아이돌 팬덤 문화와 이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일상이나 면면은 솔직히 잘 알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감정이나 응원에 대한 본질적인 기쁨이나 맹목적인 면도 자세히 들어본 적이 없다.


이미지 출처 : 예스24

그러던 중, 일본에서 화제가 되는 책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19세에 등단한 작가가 써 내려간 기존 내가 알던 일본 문학과는 궤가 다른 책이 바로 "최애, 타오르다"였다. 일명 덕질하는 사람들에 생각이나 상황 묘사 그리고 현실들이 짧지만 고스란히 적어 내려간 이 작품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1. 강렬한 첫 문장


최애가 불타버렸다. (1p)

이 책에 첫 문장이다. 책을 읽을 때 첫 문장이나 문단을 유심히 곱씹어 보는 편이다. 그리고 책을 마무리하고 다시 한번 책에 첫 문장을 다시 보면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런 의미로 이 책에 첫 문장은 8글자로 책에 전반적인 내용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인 이 책에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 '야마시타 아카리'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여학생으로 아이돌 그룹 '마자마좌'의 멤버로 활동하는 '우에노 아사키'를 최애로 삼는 여학생이다. 그에 대한 굿즈, 공연, 스케줄을 함께 하기도 하며 자기만의 회원제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최애를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과 직 간접적으로 소통한다. 그러던 도중 최애 '우에노 아사키'가 팬을 때렸다는 내용이 팬들과 SNS 사이에서 떠들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내용이다.


2. 예사롭지 않은 표현들 


어떤 아이돌을 좋아하는 덕후들에 쉬운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이 작가의 표현은 생각보다 강렬해서 폄하할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이런 생소한 주제가 이런 표현을 가능하게 해 준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한다. 아래의 내용들은 그중에서 생각을 많이 안겨준 내용들이다.


공부나 동아리나 아르바이트를 하고, 일해서 번 돈으로 친구와 영화를 보거나 밥을 먹거나 옷을 사거나, 대부분은 그렇게 인생을 꾸미고 살찌움으로써 더욱 풍족해질 것이다. 나는 역행하고 있다. 무슨 고행이라도 하듯이 나 자신이 척추에 집약된다. 무의미한 것을 깎아내고 척추만 남는다. (44p)

여러 표현들을 줄 쳐놓고 곱씹었던 것 같은데 그중에서 위의 표현이 왠지 모르게 다시 읽어보게 되었던 것 같다. 누군가를 응원하고 최애로써 마음을 표현하는 한 사람인 아카리가 왜 이렇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자신을 왜 역행한다고 표현하는지 안타깝기도 하고 왜 그렇게 자신을 하찮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분명히 자신도 충분히 사랑받을만하고 아낌 받을 만한 존재일 텐데 말이다.


최애의 전부가 사랑스러웠다. 최애라면 모든 걸 바치고 싶다. 모든 걸 바치겠다니, 유치한 연애 드라마 대사 같지만 나는 어디엔가 최애가 존재하고 그 최애를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이를테면 가쓰 씨나 사치요 씨가 하는 ‘현실에 있는 남자를 봐야지’ 같은 말은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다. (68p)

최애에 대한 맹목적인 마음가짐이 너무 잘 드러나있는 문장이다. 정말 표현처럼 유치하기 그지없지만 누군가에게 온 마음을 다해서 집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하면 개인적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현실과의 괴리감이라는 부분에서는 조금은 양보를 해야겠지만 그래도 이 표현이 덕후스럽다고 폄하하거나 낮추어 보고 싶지는 않다.


3. 아이돌 덕질이 소설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아이돌 팬덤 문화에 대한 글이 일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이건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아쿠타가와상은 1927년 사망한 소설가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업적일 기려 1935년에 만들어진 순수문학을 꿈꾸는 소설 지망생들이 등단하는 권위 있는 문학상이다. 매년 2회(상반기/하반기) 수상하며 과거 읽어봤던 일본 문학중 2016년에 수상한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도 있었다. 일본의 젊은 작가들이 기성세대들이 보지 못했거나 지금의 세대들만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의식을 문학을 통해 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주제가 명확하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의 아이돌에 대한 팬덤 문화는 확고하고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나와 같은 세대를 '사토리 세대'라고 하는데 깨달음 또는 득도라는 의미이다. 욕망을 억제하고 프리터로 일상을 연명하거나 '10 마일족'이라고 하여 자신이 태어난 지역 기준으로 10마일을 벗어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온라인에 발달 그리고 그들이 가장 합리적으로 자신의 취향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아이돌에 대한 응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린 00년대생 일본인들의 생각을 이 책으로 단편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는 점이 꽤나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최애'에 대한 생각, 그리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나 행동도 바라볼 수 있었다. 한 번 상상해 보았다. 우리나라 팬덤에 대한 문학이 나온다면 어떨까? 나름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마치 판교 IT 회사인들에 대한 애환이 온라인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처럼 말이다.


4. 최애를 생각하는 팬의 마음은 제각각


이 책에서 최애를 생각하는 팬의 방식이나 성향을 여러 가지로 설명한다. 최애의 모든 행동을 믿고 떠받드는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팬, 최애를 연애 감정으로 좋아해서 그의 음악이나 작품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 최애에게 적극적으로 DM 등을 보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사람, 최애가 출연한 작품에 진심인 사람, 좋아하는 아이돌 팬들끼리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사람 등등.


다양한 팬덤들이 존재하고 저마다 즐기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아카리는 최애의 작품도 인간 그 자체도 통째로 꾸준히 분석 및 해석하는 것을 통해 그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만의 비밀 블로그를 통해 팬들과 소통을 한다. 그녀가 최애를 대하는 방식은 어쩌면 그녀가 처한 상황과 성격이라는 전제 조건하에서 누군가에게 애정을 보내는 최선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최애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알고 조심할 수도 있으니까. 



최근 취향에 개인화와 몰두하는 개인만의 방식이 점점 세분화되고 있다. 팬덤을 이루고 연예인이나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이 흔한 덕질이라는 단어로 폄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개인이 향유하는 하나의 취미 활동이라고 존중해 줄 필요는 있으니까. 하지만 어느 정도 선을 지켜야 할 필요는 있다. 일부 사생팬들에 최애 연예인들에 대한 사생활 침해 등에 방식은 범죄이자 본인들의 최애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이나 애정이 아니라 함께 즐기고 성장하는 문화로 성숙됐으면 한다. 그리고 나는 라이트 팬이자 콘텐츠 소비자로서 그들을 조용히 응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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