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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파티쉐 Jul 14. 2020

본차이나가 되고픈 질그릇

내 안에 너 있다

비가 온다.  오늘 저녁 메뉴는 매콤한 짜장 떡볶이로 해볼까.  어라, 유통기한이 좀 지나있다.  아니나 다를까, 라면사리에선 산폐된 냄새가 살짝 난다.  떡과 양념은 진즉 냉동고에 넣어둔 상태라 그냥 쓰고, 여기에 다른 재료를 추가해 보기로 한다.  마침 푸실리(Fusilli 나선형의 파스타)가 집에 있는 터라 레시피에 적힌 시간보다 짧게 삶아 끓는 소스에 부었다.  접시에 옮겨담으니 떡에 진밤색의 윤기가 좔좔 흐르는 것이 갑자기 식욕이 돋는다.  


떡은 쫄깃쫄깃 매콤 짭짤하고, 푸실리는 아뿔싸...소스와 너무 겉도는 맛이다.

이번 회차의 ‘근본없는 요리(하고픈 유튜브 테마)’는 실패로군.  그래도 꽤 많이 발전했네 어깨를 으쓱하며 저녁식사를 마쳤다.

짜장푸실리떡볶이

실패한 '짜장 푸실리 떡볶이' 사진을 SNS에 업로드하다보니 '바질 크림치즈 마카롱' 사진이 추천에 떠있다.  파티쉐로 일하면서 손님들이 엄지 척을 남발한 몇몇 레시피들은 직접 개발을 했는데, 이 마카롱도 그중 하나다.  바질 크림치즈 마카롱은 스스로도 자랑할 만한 맛이라고 느끼는데, 나는 사실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기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파티쉐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몇 년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나는 사람들에게 흠을 잡히거나 손가락질당하지 않을까 싶어 늘 배운 방식대로의 작업만 하고 있었다.  내가 아직 경험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려서부터 실패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게 성공이라고 믿고 자란 탓인 것 같다.


이때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두 명의 남자가 있었으니.  한 사람은 당시의 사업파트너이자 애인, 또 한 명은 내 생애 첫 직원이었던 청년이었다.   나와 살아온 세계 또는 세대가 너무 다른 사람들이다 보니 비슷한 환경, 고만고만한 사람들과 살아오던 나에게는 일보다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게 더 괴로웠다.    


리더십이라곤 코빼기도 없는 데다 장사 경험이 부족한 나는 직원을 잘 다루는 건 '잘 통제하는'것인 줄로만 알고 그저 내 말에 따라주기만 바랐다.  그 둘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가끔 합이 맞을 때가 있었으니, 바로 '새로운 레시피'에 대한 열망(?) 같은 것이었다.


“김쌤!  초콜릿대신 카카오닙을 써보면 좋을것 같아요.”

“카카오닙은 너무 쓰잖아. 게다가 식감이 너무 거칠고 섞으면 눅눅해져서 더 별로일걸?”


나는 잠시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곤 보나마나 결과가 안좋을 것이라는 말을 해주곤 했다.

초콜릿에 고기를 넣자던가, 마카롱 크림에 김치를 응용해 보자는 엉뚱발랄한 제안은 고려할 가치도 없는 아이디어라며 단칼에 거절했다(구글이나 애플에서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때 나는 열린 사람이 아니었다).

내 예측은 맞을 것이므로 수고스럽게 모험을 하기 싫었다.

정해진 규칙대로 해야 한다는 내 생각은 틀릴 리가 없으므로 내 눈에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바질 크림치즈 페스토


남직원의 뾰로통한 얼굴은 날이 갈 수록 정도가 심해졌다.    애인과는 하루 중 반을 싸우고 반은 작업실에 쳐박혀 얼굴을 피하게 되었다.

듣자니 '사람은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이라는데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내 경험상 사람은 부딪치고, 한쪽이 깨지거나 금 가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투박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내 그릇은 접착제로 간신히 붙이거나 테두리가 깨진 채였다.  서로의 의견을 담을 수 없을 때마다 깨진 조각이 쌓여갔다.   


그때 나는 소뼈로 만든 고급 도자기 '본차이나(Bone china)가 아니라면 바닥에 내동댕이쳐도 흠 하나 가지 않는다는 코렐 그릇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코렐은 미국 그릇 제품 브랜드로서,  '깨지지 않는 아름다움 (Long Lasting Beauty)'는 광고로 유명하다.  도자기가 아닌 삼중 접합 유리로 만들어 잘 깨지지 않고, 화공약품에도 강하며, 심지어 180도의 오븐 열에도 강하다고 한다.)


‘온전한 채로 평화롭게 지내고 싶어.  다른 사람들은 내 그릇을 돋보이게 해주는 밑접시처럼 그냥 있어주면 될 텐데 말이야(양식 상 차림에 보면 넓은 접시 위에 오목하고 아름다운 접시들이 올라가 있는 형태처럼 말이지).’

바질 청사과 마카롱

몇 년간 그들과 함께 하고, 다시 직원이 여럿 바뀌고 (애인도 바뀌면서) 그런 과정들이 꽤 힘들었다.  구멍이 군데군데 뚫리고 금이 간 질그릇처럼 나는 점점 형편없어지는 걸까...  자신감이 바닥을 칠 때쯤, 마카롱에 들어갈 어마어마한 양의 바질 잎을 다듬으며 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그런데 문득 내가 참 많이 변했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티쉐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외골수였는데.  틀에서 벗어나는 레시피는 꿈도 못 꿨는데.  지금은 이렇게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세상에 있지도 않은 걸 만들고 있잖아?  


돌아보니 첫 직원도 고집이 있어서 그냥 단념하기가 여의치 않을때면 본인이 직접 시도를 해서 결과물을 내게 들이밀기도 했다.   다른 직원들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를 설득했다.  

“쌔애애앰~~ 초콜릿쉘에 오렌지랑 보드카를 넣으면 엄청 맛있을것 같지 않아요?”

“음... 글쎄.  뭐 해리씨가 한번 해보던지?”

“네, 좋아용 ㅎ”

“...?  예상보다 훨 괜찮잖아?!”


아... 그런 시도가 거듭될 수록 내 태도가 바뀌었구나.


마냥 부딪치기만 한 건 아니었나 보다.  시간이 그저 흐르기만 한 건 아니었나 보다.  파편들이 무덤처럼 쌓여갈 때마다 고통스러웠는데, 그걸 가져다 다시 빻아서 가루를 만들고, 물을 붓고 더 단단하고 넓은 그릇이 되어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타인의 조각들이 내게 녹아들어 날 성장시켰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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