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죽음 앞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가

by 몽당

이야기는 이반 일리치가 죽은 뒤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반 일리치의 학교 동기이자 직장 동료였던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조문을 가고, 그의 시선을 따라 고인의 죽음을 대하는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그 자신의 태도가 드러난다.


"그의 표정에는 산 자를 향한 모종의 비난과 경고까지 담겨 있었다.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는 그러한 경고가 부적절한 것으로, 적어도 자신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마치 죽음이란 이반 일리치에게만 닥친 특별한 사건일 뿐,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이."
"그가 숙연한 태도로 그들과 인사를 나눈 후, 고인이 안치된 방으로 가려 할 때 계단 아래 쪽에서 이반 일리치를 섬뜩하도록 빼닮은 중학생 아들이 나타났다. 그 모습은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기억하는 법률 학교 시절의 소년 이반 일리치 그대로였다. 울어서 퉁퉁 부은 두 눈은 순수함을 잃어버린, 열서너 살 된 남자 아이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그런 눈이었다."


여기서 '섬뜩하도록 빼닮은' 이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았다.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고인에게 느끼는 감정이 애도가 아닌 위선이기 때문에, 그를 빼닮은 그의 아들을 만났을 때 섬뜩함을 느낀 것 아니었을까. 이반의 아들은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이반 일리치가 죽기 직전 자신의 삶에 대해 회상할 때 떠올리는 어린 시절을 상징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은 진실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표트르 이바노비치가 이반의 아들을 통해 진실을 마주했기 때문에 섬뜩함을 느끼는 것일수도 있겠다.


"이반 일리치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대단히 끔찍한 것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삶은 그가 살아오며 생각하기에는 평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래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그는 끊임없이 기준에 맞추기 위해, 탁월해 보이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이었던 것 같다. 세상에서 말하는, 품위 있고 유쾌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형처럼 지나치게 냉정하지도 계산적이지도 않았고 동생처럼 방만하지도 않았다. 이반 일리치는 형과 동생의 중간쯤 되는, 똑똑하고 활달하고, 유쾌하고, 예의 바른 인간이었다."
"법률 학교를 다니는 동안 이반 일리치는 이후 평생 동안 변치 않을 그런 인물로 성장했다. 요컨대, 그는 능력 있고 활달하고 상냥하고 사교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철저하게 해내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에게 의무란 높은 사람들이 의무라고 판단하는 모든 것을 의미했다."
"그는 법률 학교 재학 시절에 본인이 생각해도 추악한 행동, 스스로를 혐오할 수밖에 없는 그런 행동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그런 행동을 저지르며,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생각을 바꿨다. 바람직한 행동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냥 다 잊어버리고 더 이상 괴로운 기억을 되살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는 젊었고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일을 할 때만큼은 극도로 신중하고 사무적이었으며 엄격하기까지 했다. 반면 사교적인 자리에서는 종종 장난스럽고 재기 발랄하면서도 언제나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그들로 하여금 <나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사람이 이렇게 격의 없이 대해 주다니>라고 느끼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쓰며 그 사실 자체를 즐겼던 것이다. ... 아무리 중요하고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라 해도 모두 예외 없이 자신의 손아귀 안에 있다는 것, 제목이 달린 종이 쪼가리에 몇 마디 상투적인 말만 적으면 이 중요하고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들을 피의자나 증인 자격으로 소환할 수 있고, 마음먹기에 따라 앉히지도 않고 세워 둔 채로 묻는 말에 대답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면면이 그의 삶에서 과연 무엇을 보장해주었을까?

그리고 또 무엇을 보장해주지 못했을까?

결혼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그의 삶에 뭔가가 결여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 부분이 담담하게 쓰여 있는데도 이반 일리치의 마음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신랄하게 느껴졌다.


"이반 일리치가 이 아가씨를 사랑했고 또 인생관에 공감대가 있어서 결혼했다고 하는 것은, 그가 속한 상류 사회가 인정해 주었기 때문에 결혼했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편파적인 말이다. 그는 이 두 가지 이유 모두를 고려해서 결혼했다. 그런 아가씨를 아내로 맞이하면 자기 자신에게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최상류층 사람들이 바람직하다고 여겨 주는 일을 한다는 뿌듯한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반 일리치는 결혼했다."
"그는 아내의 기분을 무시하려고 애쓰면서 전처럼 편안하고 유쾌하게 생활했다."
"그는 결혼 생활은 유쾌하고 품위 있는 삶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종종 그런 삶을 망쳐 놓는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이러한 파괴적 영향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 공무는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도 어찌하지 못하는 유일한 영역이었다. 그리하여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독립된 세계를 지켜 내기 위해 공무와 거기서 비롯된 온갖 의무를 무기 삼아 아내에게 대항해 나갔다."
"다만 그럴수록 가정을 벗어나 자기만의 세계를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더 절실해졌다. ... 그는 더욱더 일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명예욕 역시 이전에 비해 훨씬 강해졌다."
"그가 결혼 생활에 요구한 것은 아내가 남편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편리함들, 즉 집밥과 집안 살림과 잠자리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사회 통념이 정해 놓은 외적인 품위와 형식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즐겁고 유쾌한 일은 다른 영역에서 추구했는데, 어쩌다 그걸 찾게 되면 무척 고맙게 생각했다. 그러나 만약 자신에 대한 저항이나 투정 등을 마주하게 되면 그는 즉시 자신만의 고립된 일의 세계로 달아나 거기서 즐거움을 찾았다."


결혼 생활에서 뭔가가 결여된 것을 조금도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이반 일리치.


"한번은 영 말귀를 못 알아듣는 도배장이에게 커든 다는 법을 직접 보여 줘야겠다 싶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다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진 적이 있었다. ... 창틀 손잡이에 옆구리를 부딪히기만 했다."


이때 옆구리를 부딪히면서부터 이반 일리치의 고통이 시작되지만 처음엔 몰랐다.

파티를 연 날에도 뒤에선 격하게 다투기도 하는 이반 일리치 부부. 하지만 겉으로는 상류층 사교계와 교류하며 나날이 화려한 삶을 이어간다. 이반 일리치가 원하던 품위 있고, 높은 계급에 속하는 삶이다.


"말다툼이 점점 격해지자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남편에게 <멍청이, 벽창호>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또한 분통이 터져 머리를 감싸 쥐며 이혼을 암시하는 말들을 마구 내뱉었다."
"그들은 그렇게 살았다. 그들은 최고 사교계와 교류했으며 고위층 인사들과 젊은이들이 그의 집에 드나들었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딸은 지인들에 대해 완벽하게 동일한 시각을 견지했다. 그래서 그들은 미리 말을 맞추지 않고도 일본산 수입 접시들이 벽에 걸린 응접실에 몰려 와 친한 척하는 온갖 시시껄렁한 친구들이며 친척 나부랭이들을 깨끗이 떼어내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시시껄렁한 지인 나부랭이들은 발길을 뚝 끊었고, 이제 골로빈가에는 오로지 최상층 사람들만이 드나들었다. ... 그렇게 그들은 살았다. 모든 것은 변함없이 흘러갔고, 모든 것이 매우 좋았다."


아프기 시작하자 화목한 듯 보이던 가정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가족들은 일반 일리치의 비정상적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크게 관심을 보이지도 않는다. 아내와 딸의 관심은 사교계 일 뿐이다. 이반 일리치는 혼자서 "아직은 아무 것도 아닐지도 몰라."라고 되뇌이고, 의사들에게 철저하게 의지하며 자신을 속여보려 한다.


"그러나 이 거북한 느낌은 점점 심해졌다. ... 남편과 아내는 더 자주 다투기 시작했고, 곧 이들 가족이 누리던 가벼움과 유쾌함은 사라지고 품위만 간신히 유지되었다."
"딸은 앉아서 그 따분한 이야기를 들어 보려 노력했지만 오래 견디지 못했고, 아내 역시 남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았다.
「뭐, 어쨌든 안심이 되네요.」아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으면 되겠네요. 처방전 좀 이리 줘봐요. 게라심더러 약국에 다녀오라고 할게요.」 이렇게 말하고 아내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에서 나갔다.
그는 아내가 방 안에 있는 동안에는 숨도 제대로 못 쉬다가 그녀가 방을 나가자 그제야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그는 중얼거렸다. 「어쩌면, 정말 아직은 아무 것도 아닐지도 몰라.」"

"그래도 이반 일리치는 정확하게 의사의 지시 사항을 따랐고 처음 한동안은 거기서 위안을 찾았다."


이반 일리치는 이제 병이 낫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하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겐 병과 고통이 오로지 이반 일리치만의 문제인 것이다.


"그걸 아는 것은 오직 그 자신뿐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세상이 전과 다름없이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 점이 무엇보다도 이반 일리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가 보기에 가족들, 특히 근래 들어 사교계에서 날리기 시작한 아내와 딸은 이해는 고사하고 그가 심술맞고 까다롭게 군다며 화까지 냈다."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가 남편의 병에 대해 남편은 물론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드러내 보인 생각은 이랬다. 남편은 병은 순전히 그의 책임이며, 그의 병 때문에 부인인 자기는 더욱더 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이제 죽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 육체적 고통보다 두려운 것은 자신이 죽음을 향해가고 있다는 자각이다.


"혼자 남은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삶에 스며든 독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퍼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는 그렇게 파멸의 벼랑 끝에서 자신을 이해해 주고 불쌍히 여겨 주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외롭게 살아가야만 했다."
"<죽음, 그래, 죽음. 저들은 아무도 몰라.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 날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아. 그냥 놀 따름이야(깔깔거리는 소리와 음악 소리가 문 너머에서 어렴풋이 들려왔다). 저들도 똑같아, 똑같이 죽게 될 거라고. 멍청이들. 내가 조금 먼저 가고, 저들은 조금 늦게 갈 뿐, 결국엔 다 마찬가지야. 그런데도 저렇게 좋을까, 짐승같은 것들!> 울화가 치밀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려 하는 이가 없다는 캄캄한 고독의 길 위. 그는 그런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끼고 증오하기 시작한다.

죽음은 이반 일리치가 살아온 삶에는 속해있지 않던 무엇이었다. 생각조차 해본 적 없던 것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죽음을 통해 '진실'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렇다, 카이사르는 분명히 필멸의 인간이니 그가 죽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나, 바냐, 수많은 감정과 생각을 가진 이반 일리치에게 그건 전혀 다른 문제다.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너무 끔찍한 일이다."
"<정녕 죽음만이 진실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죽음이 이반 일리치를 자꾸만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무언가를 하도록 하기 위해 그러는 게 아니었다. 단지 그로 하여금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죽음만을 쳐다보도록,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오로지 죽음만을 똑바로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었다."


정녕 죽음만이 진실이란 말인가?


"이반 일리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거짓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모두가 묵인하고 있는 거짓말, 그는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플 뿐이다, 그러니 잠자코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거라는 그 거짓말이 그를 괴롭혔다. ... 사람들의 거짓말은 그를 고문했다. 그들은 모두가 알고 있고 그도 알고 있는 사실을 인정해 주려 들지 않았다. 이반 일리치의 끔찍한 상태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이반 일리치 자신도 그 거짓말에 동참하게 만들려고 했다. 거짓, 거짓, 그의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행해지는 이 거짓, 무시무시하고 장엄한 죽음의 의식을 한낱 문병이니 커튼이니 식사에 나온 철갑상어니 하는 것들로 격하시키는 이런 거짓이 이반 일리치를 무섭도록 고통스럽게 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 앞에서 그런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를 벌일 때면 <거짓말은 그만둬. 내가 곧 죽는다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잖아. 그러니 제발, 거짓말만은 좀 그만둬>라고 여러 번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이상하게도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럴 기력도 없었다. 그가 보기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무섭고 끔찍한 의식을 그저 어쩌다가 발생한 불쾌한 사건, 품위가 떨어지는 일 정도로(마치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응접실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을 대하듯이) 격하시켰다. 그가 평생토록 지키려 애섰던 <품위>라는 게 고작 그런 것이었다. 그도 알다시피 그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그의 처지를 이해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게라심만이 그에게 그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 다만 점차 쇠잔해 가는 나약한 주인을 가엾게 여기고 있었다."
"거짓말 외에, 아니 거짓말 때문에, 이반 일리치를 고통스럽게 했던 또 한 가지는 그 누구도 그가 바라는 만큼 그를 가엾게 여겨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오랜 기간 고통스럽게 병마와 씨름하면서 이반 일리치는 사실대로 고백하는 것이 부끄럽기는 해도 누군가가 자신을 병든 어린아이 대하듯 마냥 불쌍히 여겨 주기를 그 무엇보다 간절히 소망했다. 아이를 달래며 보살피듯 다독여 주고 입을 맞춰 주고 자기를 위해 울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볍원 동료인 셰베크가 찾아오자, 이반 일리치는 소리 내어 울거나 다독임을 구하는 대신 진지하고 근엄하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바로 이 거짓, 주변 사람들과 그 자신의 거짓이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 나날들을 해치는 가장 무서운 독이었다."
"그는 온 몸의 힘을 다 짜내서 아내를 증오했다. 그녀와 몸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증오심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 의사가 환자에게 일정한 태도를 정해 놓듯이 그녀도 남편에 대한 한 가지 태도를 정해 놓았다. 남편은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병이 낫지 않는다, 고로 모든 것은 남편 책임이다, 그러나 자기는 그런 남편을 사랑으로 나무라고 있다, 이런 식의 태도를 고수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거짓이 하도 뒤엉켜서 이제는 뭐가 뭔지 도무지 가닥조차 잡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다 나가자 이반 일리치는 좀 편안해졌다. 거짓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진실을 직면하고자 하는 이반 일리치. 그가 마주해야 했던 것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세상이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진실이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얼마나 무섭고 고독할까.

나는 죽음을 앞두고 내 삶과 내 관계들이 진실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게라심이 옆방으로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는 의지할 데 없는 자신의 처지와 절대 고독과 사람들의 잔인함과 신의 잔인함이 서러워서, 신의 부재가 서러워서 목 놓아 울었다."
"<예전엔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았어?> 목소리가 물었다. ... 그런데 이상하게도, 즐거웠던 삶에서의 좋았던 순간들이 이제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제외한 모든 것이 다 그랬다. 그때, 어린 시절에는 진짜로 기쁜 무언가가 있었다. 그걸 되찾을 수 있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쁨을 누리던 인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사람을 회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목적지가 현재의 자기 자신인 회상 여행이 시작되자마자, 당시엔 기쁨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모두 그의 눈앞에서 녹아내려 부질없는 것으로, 그중 몇몇은 추악한 것으로 변해 버렸다."
"그래, 나는 산에 올라가고 있다고 상상했지. 하지만 일정한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던 거야. 그래, 그랬었던 거야. 분명 사람들 눈에 나는 올라가고 있었어. 하지만 정확하게는 그만큼씩 삶은 내 발아래서 멀어져 가고 있었던 거야 ……. 그래, 다 끝났어. 죽는 것만 남았어!"
"<어쩌면,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 <그렇지만 나는 뭐든지 다 제대로 했는데 어떻게 잘못 살았을 수가 있어?>"


이반 일리치는 이제 자신의 삶도 진실하게 돌아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는 계속해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자신이 유일하게 '진짜'라고 말할 수 있었던 그때로. 이후의 그의 삶은 무엇 때문에 진실함을 잃은 채로 내달리게 되었던 것일까. 무엇이 그를 그토록 진실에서 멀어지도록 만든 것일까.



"소파 등받이에 고개를 처박고 누워 지내는 요즘 이반 일리치는 고독과 함께 살았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우글대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느끼는 고독이었고, 지인들과 가족들이 북적대는 곳에서 느끼는 고독이었다. 바닷속 저 깊은 곳에서도, 땅 밑 저 아래에서도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절대 고독이었다. 이반 일리치는 이 끔찍한 고독을 오로지 과거의 상념에만 의지해서 견뎌 냈다."
"<죽음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속도는 점점 빨라져 가는구나.>"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저러시는 거예요?」 리자가 엄마에게 말했다. 「꼭 우리 때문에 저렇게 되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나도 아빠가 불쌍해요. 그렇지만 우리를 왜 이렇게 괴롭히시는 거죠?」"
"그러나 육체적 고통보다도 더욱 끔찍했던 것은 그의 정신적 고통이었고, 이것이야말로 그가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고통이었다."


가족들은 여전히 그에게 공감하지 못한다. 그는 깊은 고독 속에서 과거에 대한 회상으로 버텨낸다.


"<만약에, 의식적으로 살아온 내 평생의 삶이 정말로 《그게 아닌 삶》이었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높으신 분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저항하고 싶어 했던 한때의 희미한 충동,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르지마자 곧바로 떨쳐내 버리곤 했던 그 충동만이 진짜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는 의식만 지닌 채, 바로잡을 겨를도 없이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 땐 어떻게 하지?>"


그는 이제 마지막 진실을 마주하려 한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삶이 사실은 조금도 진실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직시하려 한다.


"그는 그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았고, 자기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보았다. 그리하여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가 <그게 아닌 것>이었다는 사실을, 모든 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가려 버리는 거대하고 무서운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아내의 옷차림, 몸매, 표정, 목소리, 이 모든 것들은 그에게 단 한 가지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게 아니야. 네가 살면서 추구해 온 모든 게 거짓이고 기만이야. 네 눈을 가려 삶과 죽음을 못 보게 한 거야.> 이렇게 생각하자마자 마음속에서 증오심이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끔찍한 육체적 고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가족들,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며 자신의 삶의 방식이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인다.


"「그래, 모든게 그게 아니었어.」 그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괜찮아. 할 수 있어, <그것>을 하면 되는 거야. 그런데 <그것>이 대체 뭐지?」"
"소년은 아버지의 손을 잡아 자신의 입술에 대고 울음을 떠뜨렸다.
바로 이 순간 이반 일리치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져 빛을 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그래서는 안 되는 삶이었지만 아직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도대체 뭐지?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는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귀를 기울였다. 그때 누군가가 자신의 손에 입을 맞추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뜨자 아들이 보였다."


이반 일리치는 마지막 힘을 다해 조금 남은 삶에서 진실함을 회복하려 한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수가 없다. 그 때 그의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그의 손에 입을 맞춘다. 그는 아들을 통해 어린 시절 잃었던 진실을 다시 본다.


"<그래, 내가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어.> ... <아니야, 뭣 하러 말을 해. 그냥 보여 주면 돼.>"
"그러자 갑자기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이제까지 그를 괴롭히면서 마음속에 갇혀 있던 것들이 일순간 두 방향, 열 방향, 모든 방향에서 쏟아져 나왔다. 저들이 불쌍해. 저들이 더 고통받지 않게 해주어야 해. 저들을 해방시켜 주고 나 자신도 이 고통에서 해방되어야 해."


마침내 이반 일리치의 마음 속에서 분노가, 가족에 대한 증오가 사라진다.

그리고 고통에서 해방된 채 끝을 맞이한다.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한동안 이반 일리치가 말하는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반 일리치의 삶에 없는 것, 그건 무엇이었을까? 진실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확실히 무엇이다, 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분명히 여러 번 하게 된 생각은, "내 삶에는 그것이 있는가?"였다.

남들이 잘 살고 있다고 말하는 삶의 기준은, 우리 눈앞에 그려보기 쉽다.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갖고, 적절한 지위에 오르며, 사교 생활을 하고, 적당한 재산을 축적하여 인생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그런 삶. 우아하고 현명하며 품위 있는 그런 삶. 그런 삶을 보통 잘 사는 삶이라고 부르니까.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죽음 앞에서 계속 묻는다. 그것이 정말 '진짜'였는지.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며 그런 자신의 삶이 기만이었다는 답을 내린다. 잔인하다. 그러나 깊숙 찌르고 들어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톨스토이 평생의 주제였다고 한다. 그의 전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 책은 안나 카레니나에 비해 훨씬 짧고 직선적인 흐름이어서 빨리 읽힌 책이었지만, 내게 남긴 여운은 어쩌면 안나 카레니나보다 더 큰 것 같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주어진 인생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게 이 책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아서, 이 질문이 가슴 속에 계속 불타올랐으면 좋겠다.

<그것>을 끊임없이 찾아헤매이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