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기에, 자연은 우리 눈 앞에 있다
저의 건축설계사무소 최초의 경력은 '병원팀'이었습니다.
당시 참여했던 제주대학교 병원이 이제 개원한지도
벌써 15년이 되어가네요. 건축 초년생의 눈에 들어온
병원의 외래동과 병동 평면도는 마치 복잡한 전자기기의
회로기판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줬습니다. 특히 오래동의
여러 부서별 평면은 복잡한 동선과 설비 등 오랜 노하우가
없이는 계획하기 힘든 전문분야였죠. 인턴직원이었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잽싸게 디자인 안에 대한
모형과 3D 모델링을 해드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후 병원팀에서 일을 할 기회는 없었지만, 한 회사에서
진행되는 다른 프로젝트들을 지속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병원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차가운 하얀색으로 뒤덮인
공간의 느낌과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기능적인 흐름 속에서
병원팀 전문가들은 조금이나마 숨쉴 수 있는 틈을 만들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기억이 납니다. 건물 사이 곳곳에
정원을 만들고, 병실 하나하나마다 조망 등 환경도
세심하게 고려했던 선배님들의 모습이 기억나네요.
프리츠커상 수상에 빛나는 헤르조그 앤 드 뫼롱 스튜디오가
이번에는 어린이 병원 공간을 디자인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송은문화재단, 도산 더 피크, 그리고 더현대광주까지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들로 이제 낯설지 않은 건축가로
차츰 지명도를 높이고 있죠. 어쩌면 이번 프로젝트는 평소
그들이 추구하던 미니멀하면서도 과감한 디자인에 비해
소박하고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 이용자가
회복이 필요하면서도 가장 세심한 배려를 필요로 하는
어린이 환자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병실에 햇빛이 가득하고
밖으로는 푸른 나무들이 보입니다. 시선 안에 들어오는
모든 재료들과 색상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편안합니다.
'건축이 치유에 기여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강조한 그들의
의지가 공간의 곳곳에 묻어나는 듯 합니다.
자연과 공간의 관계를 이렇게 적극적이고 물 흐르듯
풀어내는 것은 당연한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감한 의사결정이 필요합니다.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추가로 투입되는 비용에 대해 아직 세상은 냉철하기
때문이죠.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자연과 공간,
그리고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정량적으로 인과관계를
연구하는 글과 사례들이 많이 보입니다. 최근 읽고 있는
'정원의 쓸모'(존 스튜어트 스미스 저) 라는 저서 역시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과거 많은 저서들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필수적이다'라는 정성적인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반면, 원예라는 필자의 전문분야를 통해
정원, 자연과 인간의 회복, 행복이 어떤 인과관계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실제 사례와 분석을 담고 있죠.
치유 공간에 대해 슬을 쓰는 에스턴 스턴버그는
녹색을 가리켜 '우리 두뇌의 기본 모드'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녹색을 볼 때 우리의 눈은 별도의 조정작용이
필요 없으며 자동적으로 각성작용을 낮춘다고 합니다.
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소리는 또 다른 진정효과를
주며,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소음을 걸러준다고 하죠.
프리츠커 상을 받은 건축가의 명성, 또는 위 내용처럼
경험적인 내용을 수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하거나
그에 앞서 '통과해야만 하는 규제'가 있을때 비로소
풍부한 자연은 기대 이상으로 우리가 서 있는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自然)', 말 그대로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고 스스로, 또는 저절로 존재하는
상태라는 정의를 저도 글을 쓰며 다시 한번 찾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자연을 공간에서 사람들과 마주하게 하기 위해서는
저절로, 또는 노력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최근 더 절실히
깨닫습니다. 제가 인턴시절 겪었던 것처럼 병원, 치유라는
목적이 명확한 공간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으로
데려다주며 함께 보게 되는 계절의 변화 역시 이름모를
건축사사무소의 소장과 디자이너 분들, 그리고 조경가
분들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누구나 쉽게 읊을
수 있는 '사계절 식재'이지만, 이를 확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많은 분들의 의지 덕에 저와 우리 딸은
빨간 단풍잎과 열매를 보며 가을이라는 계절이 왔음을
오감으로 알게 되고, 배울 수 있습니다.
마음 속으로나마 그 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저 역시도
많은 분들께 자연을 눈 앞에 선사하기 위해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11월의 첫 주말입니다 :)
1_치유에 기여하는 공간, 헤르조그 드뫼롱의 어린이병원 공간디자인
2_포스터 파트너스, 지진피해 아타키아 재건을 위한 마스터플랜 공개
3_지속하는 플라스틱의 여정, 'Plastic : Remaking Our World' 전시
4_생태적 가치가 디자인의 원동력으로, 헬씨 플래닛 유치원 디자인
5_MVRDV가 제안하는 문화재와 신축건물의 공존, 암스테르담 트리폴리스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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