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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동 Aug 08. 2022

집이 물에 잠겼다

내 마음도 빗물에 푹 젖어 무거워졌다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싶을 정도로 미친듯한 폭우가 계속해서 쏟아지던 8월의 어느 날.

오전부터 내리던 장대 같은 비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몇 시간 전보다 더욱 세차게 온 세상을 적시고 있었다. 김애란의 소설 <물속 골리앗>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하루였다.



그즈음 난 포근한 자취방 침대 위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 이사 온 나의 새 집은 무척 아늑했다. 나는 신축 빌라의 첫 입주자였으며, 이 건물에는 한 층에 두 가구만 살아 층간소음 문제가 거의 없었다. 밖에 비가 많이 오는 것 같아 엄마가 일전에 일러준 대로 창문을 꼭 닫고, 인버터형 에어컨을 24도로 맞춰놓은 채 서큘레이터를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침구가 보송해졌다. 창문을 이중으로 닫으니 우렁차게 투닥거리던 빗소리마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온몸이 축축해진 상태로 귀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살갗에 아무것도 달라붙지 않는 상태가 됐다. 나는 그 완벽한 온도와 습도에 만족하며 이마트에서 사 온 프리미엄 새우초밥을 먹었다. 새우를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해졌다. 배가 부르니 잠이 왔다. 침대 위에서 새우 네타를 잘근잘근 씹다가 나도 모르게 단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깬 건 핸드폰 진동 소리 때문이었다. 본가에 있는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집에 물이 차서 바가지로 퍼내고 있어."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우리 가족은 오랜 시간 반지하에 살았지만, 아무리 비가 많이  날에도 집이 침수된 적은 없었다. 어쩌면 침수된 적이  번도 없었기에 반지하에 산다는 감각이 덜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반지하치고 높은 지대에 위치해 수재(水災) 남의 일이라 여겼는데. 굉장한 오산이었다.


부모님은 정신없이 빗물을 퍼내고 있다고 했다. 안방까지 물이 다 들어와 난리가 났다고. 안방 구석에 깔려 있는 매트리스 토퍼, 옷을 넣어둔 종이 박스들, 내 방 책꽂이에 꽂혀있는 수백 권의 책, 각종 주방 집기 같은 게 모조리 물에 잠겼다. 제일 처참했던 건 이 얘기를 전화로 전해 듣는 순간, 내가 너무 뽀송한 상태로 침대 위에 누워 이에 낀 새우초밥 찌꺼기를 빼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정신없이 물을 퍼내고 있는데, 나는 '타인의 고통'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꼴이었다. 그 대비가 너무도 극명해 드라마 각본도 이렇게 쓰면 욕먹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직접 집에 가보지 못하고 전화로만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자꾸만 비극적인 이미지를 상상해냈다. 천만 영화 <기생충> 몇몇 장면들이 떠올랐다. 물은 얼마나  걸까. 부모님  분이 감당하실  있는 정도일까? 집을 잠시 버리고 안전한 곳으로 일보 후퇴해야 하는  아닐까. 오늘 밤에  분이 집에 돌아와 잠을 청할 수는 있을까. 와중에 본가에 있는  물건들 생각이 났다. 대부분의 귀중품은 이사와 동시에 개인 자취방으로 가져온 뒤였고,  사실을 깨닫자 우습게도 조금 안심이 되었다.  물건이 모두 빠져버린 상황에서 우리 집에서 제일 값비싼 물건은 뭘까? <기생충> 기우의 수석 같은 물건은 무엇일까. 딱히 이렇다  물건이 떠오르지 않는 가운데 친구들과 지인들은 카톡방에서 폭우에 대한 웃긴 짤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나만 그들 사이에 속하지 못하고 어딘가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전화를 끊고 침대에 걸터앉았는데 눈물이 찔끔 나왔다. 마음이 하염없이 무너져 내렸다. 사실 달라진  없었다. 10 전에도, 5 전에도 우리 가족은 반지하에 살았고 오늘  순간에도 그랬다. 유일한 변수는 나였다. 내가 얼마  취업을 했고, 독립을 했고, 가족들보다 조금  나은 환경에서 살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간극이 오히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함께 그곳에 있을  견딜만했는데 제삼자가 되니 우리 가족의 일상이 비극처럼 여겨졌다. 나의 안정적인 모습과 비교가 되니  처참해 보였다. 그러나 이 일을 너무 비극적으로 볼 필요는 없었다. 우리 가족은 이전에도 끈질기게, 나름의 행복을 발견하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번 폭우는 80년에   일어날까 말까 하는 기록적인 재난이었다. 내년에  집이 침수될 . 하지만...


아직도 가족들에게선 아무런 연락이 없다. 아마 물에 잠겨버린 집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없이 내리는  비는 언제 그칠 작정일까. 기록적인 폭우로 고통받는 사람이  도시에 우리 가족뿐일 리는 없을 텐데 다들 괜찮은 걸까. 오늘 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된 밤이   같다. 비는 언제나 아래로, 아래로 흐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향하기 마련이므로.


세찬 비가 내리고 내려 우리 마음속에 차오르는 눈물까지 싱겁게 만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집은 침수될지언정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은 무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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