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 인카운터 오션 오디세이 & 일본 오비 요코하마
뉴욕에 디지털 수족관이 생겼다고 해서 가봤다. 일본의 디지털 동물원인 오비 요코하마에 갔을 때 그 가능성과 한계를 봤기에 이번엔 어떨지 궁금했다. 과연 살아있는 동물이 없어도 수족관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지, 오랫동안 사람들이 찾아가는 장소로 남을지 말이다. 이름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인카운터 오션 오디세이'였다. 타임스 스퀘어 한복판의 건물 안에 위치해 있었다.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지만 한 번에 입장하는 사람 수가 정해져 있어 조금 기다렸다. 모두 둘러보는 데는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이 걸린다고 했다. 플래시를 터트리는 것은 금지였지만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것은 허용됐다. 입구로 들어가 소개 영상을 보니 수족관을 본뜬 게 아니었다. 남태평양 솔로몬 섬에서 시작해 북미 캘리포니아로 끝나는 태평양 야생 탐험이었다.
안내인을 따라 발아래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큰 스크린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화면은 솔로몬 섬의 얕은 바다로 바뀌었다. 바닥에는 해초와 작은 물고기들이 움직이고 눈앞에는 돌고래와 가오리들이 지나갔다. 갑자기 긴장감 있는 음악이 흐르더니 돌고래들 뒤로 상어가 나타나기도 했다. 다른 방으로 갈 때마다 나오는 동물들과 배경이 바뀌었다. 어느 방은 길이가 2m 되는 훔볼트오징어들이 싸우는 현장 한가운데였다. 화면 속 캘리포니아바다사자가 나의 동작을 따라 움직이는 상호교감 장치도 있었다. 수많은 정어리가 사람들 주변을 둘러싸더니 혹등고래가 나타나 정어리 떼를 삼키려고 눈앞에서 입을 쫙 벌리기도 했다. 제일 좋았던 곳은 해저에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방이었다. 깜깜한 방으로 들어가 가만히 앉아 있으니 '부우-', '끼익'하며 고래와 돌고래를 비롯한 여러 생명의 소리가 들렸다.
영화 '그랑 블루'가 떠올랐다. 주인공이 깊은 바닷속에서 느끼는 편안함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은 때로 현실을 떠나 다른 세상을 만나고 싶어 한다. 여행을 가고 영화를 보기도 하지만 근처에 있는 동물원이나 수족관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자연을 복사한 그곳에서 다른 냄새를 맡고 다른 풍경을 보며 현실을 잠시 잊는다. 오션 오디세이도 자연을 복사했지만 다른 것은 살아있는 동물이 없다는 것, 그리고 발전된 기술력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디지털 기술을 통한 자연 재생이 동물원과 수족관의 미래가 될까? 굳이 살아있는 동물을 가둬놓고 보지 않아도 비슷한 만족감을 준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몇 년 전 방문했던 일본의 오비 요코하마를 떠올려봤다. 2013년에 문을 연 그곳도 여기와 비슷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오션 오디세이에 콘텐츠를 제공했듯,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채널인 BBC Earth의 콘텐츠에 일본 게임회사 SEGA의 기술력을 더해 만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놀라움 그러나 실망'이었다. 물론 기술력은 대단했다. '동물을 이용한 디지털 기술 체험'이랄까? 내 몸에 얼룩말 무늬를 입혀볼 수도 있고, 손을 움직여 대형 화면의 동물 그림을 터치하면 그 동물에 대한 정보가 나오는 등 흥미로운 놀거리들이 많았다. 그런데 기술에 감탄하는 동안 얼마나 동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될지 의문이었다.
무엇보다 찜찜했던 장면이 있다. 살아있는 동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그곳에서 딱 몸 크기만 한 수조에 들어가 있던 거북을 보았다. 악어거북이었는지 늑대거북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설명도 없었고 왜인지 나에게 사진도 남지 않았다. 그 모습은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성의 일부를 전시해 놓은 듯했다. 작은 공간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있는 모습을 보니 온갖 휘황찬란한 기술이며 야생동물에 관한 훌륭한 내용이며 다 무슨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찾아본 오비 요코하마는 더 끔찍하게 변해 버렸다. 페팅 주(petting zoo)를 도입한 것이다. 올빼미, 기니피그, 고슴도치, 미어캣, 아르마딜로 등을 데려다 놓고 만져보게 하고 사진도 찍게 하는 저질 동물원이 되어 있었다. 동물들이 지내는 공간도 좁고 사람들의 손길을 피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한창 문제시됐던 동물 카페나 다를 바 없었다. 동물원의 미래가 퇴보한 느낌이었다.
상상해본 바로는, 처음의 인기가 시들해져 경영난에 빠진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동물원이 수입 창출을 목적으로 어떻게든 손님을 끌어들일 '동물 이용 기회'를 만드는 모습을 종종 본 적 있다. 경제적 이유 앞에서 동물의 복지를 생각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아니면 이렇게 과거로 돌아가야만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오션 오디세이는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가격에 비해 만족하지 못했다는 평도 보였다. 진짜 해양 동물을 만날 줄 알았는데 실망했다는 사람, 그리 대단한 기술도 아니었다는 사람, 가오리를 만지길 기대했다는 사람, 차라리 수족관에 가는 게 낫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디 이런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 오비 요코하마처럼 역행하지만은 않길 바랐다. 코로나로 인해 오션 오디세이는 2020년 3월, 오비 요코하마는 2020년 12월에 문을 닫았다.
이 두 곳이 운영되는 와중에도 디지털 기술은 빠르게 성장했다. 확장 현실에 기반한 메타버스가 대중화되고 진짜처럼 보이는 가상 가수를 무대에 올렸다. 오션 오디세이가 다시 문을 열 때 볼류메트릭으로 야생동물의 입체 영상을 만들어 선보이고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한다면 모를까 그다지 오래 지속될 것 같진 않다. 아무리 그래도 디지털 기술이 동물원과 수족관의 미래가 되기엔 충분치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