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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 Oct 22. 2021

디즈니 월드에서 울다

미국 디즈니 애니멀 킹덤

 디즈니, 그 디즈니 월드에 가는 날이었다. 어릴 적 디즈니 동화 전집이 집에 있었다. 그 책을 보고 또 보며 자랐다. 책을 펼쳐 세워 요새를 만들기도 하고 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염소처럼 책을 찢어 씹어 먹기도 했다.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TV에 나오는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기 위해 8시에 일어났었다. 나이를 먹어가며 디즈니와 자연스레 멀어졌다. 성인이 되어 어릴 때 봤던 디즈니 동화책을 다시 보고 싶었지만 너무 옛날이라 찾을 수 없었다. 동물들을 따라다니는 여행에 디즈니 애니멀 킹덤이 빠져선 안 되는 이유는 물론 동물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릴 때 좋아했던 친구들을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가기 전 날 플로리다로 넘어가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했다. 가장 싸고 괜찮아 보여서 예약했는데 디즈니 주변 숙소답게 방이 귀여운 캐릭터로 꾸며져 있었다. 그런데 침대가 아니라 큰 쿠션이어서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다른 동물원을 가는 기분과 묘하게 달랐다. '나 혹시 설레는 건가?' 문을 여는 시간인 아침 9시에 맞춰 갔는데 차들이 들어가려고 줄을 서 있었다. 디즈니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 미리 와있어야 했다. 폐장시간인 저녁 8시까지 있으리라 다짐했다.


디즈니 월드는 크게 4개의 테마파크로 구성돼 있었다. 그중 나의 목적지는 당연히 동물이 있는 '애니멀 킹덤'이었다. 가방 검사를 하고 표를 사자마자 아프리카 사파리로 달려갔다. 빨리 간 편이었는데 25분을 기다렸다. 나중에야 프리패스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간 맞춰 예약을 걸어두면 그 시간에 기다리지 않고 입장하는 것이었다. 일인당 두 번 사용 가능한데, 깨달았을 때 이미 인기 있는 장소는 마감된 상태였다. '디즈니에 이렇게 혼자 계획 없이 오는 사람은 없을 거야...'라고 구시렁댔다.



사파리 차를 타니 분위기가 딱 에버랜드였다. 서울동물원이 우에노 동물원과 비슷하듯 에버랜드도 애니멀 킹덤을 모델로 하지 않았나 싶었다. 다만 애니멀 킹덤 사파리는 동물들에게 할당된 공간이 훨씬 넓고 숨을 곳도 많았다. 동물이 스스로 다가오지 않는 이상 대부분 멀리 있었다. 에버랜드는 공간에 비해 많은 동물들을 보여주려고 사파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동물들의 공간이 너무 좁다. 방문객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전책이 동물들을 붙박이장처럼 차에서 가까운 자리에 머무르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몸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애니멀 킹덤 사파리도 진짜 야생 사파리와 비교할 수 없는 제한된 공간이긴 마찬가지였다. 나무를 보호하려고 철망을 둘러놨는데 기린 한 마리가 철망을 핥고 있었다. 초식동물의 전형적인 정형 행동이었다. 하지만 차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니 동물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자세히 관찰하기 쉽지 않았다.



사파리에서 나와 고릴라를 보고 있었는데, 한 직원이 스티커를 나눠주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은 스티커를 받아 가지고 있던 책에 붙였다. 나도 가지고 싶어 물어보니 공짜라고 해서 덥석 받았다. '야생 탐험가들'이라는 제목의 교육용 핸드북이었다. 고릴라 부분을 펼치니, 고릴라가 주먹을 쥐고 걷는(너클 보행) 모습이나 고릴라가 눈을 마주치지 않는 습성을 관찰하는 미션을 수행하면 스티커를 줬다. 고릴라가 뒤를 돌아 풀을 먹고 있었다. 걷는 걸 보려면 한동안 기다려야 했다. 동물의 특징적인 행동을 가르쳐주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다음에는 기차를 타고 보전 역(conservation station)으로 갔다. 보전을 주제로 꾸민 교육 장소였다. 유리창을 통해 동물병원 안이 훤히 보였다. 한 수의 간호사가 사람들에게 병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듯했다. 그곳에도 스티커를 모을 기회가 많았다. 동물 영양 부분의 스티커를 받으려고 먹이 준비실로 갔다. 핸드북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야생 탐험가들은 모든 동물이 동물에게 필요한 특별한 먹이는 먹는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이 저녁으로 건초를 먹지 않고 기린이 마시멜로를 먹지 않는 것처럼요. 잘못된 음식을 먹으면 아파요. 야생 탐험가들은 절대로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않아요.'



첫 번째 과제는 동물과 먹이를 올바르게 연결하는 것이었다. 새끼 코끼리와 모유, 개구리와 벌레, 타조와 굴 껍데기를 연결했다. 마침 영양사가 있어 물어보니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타조는 조류라 이빨이 없어 먹이를 위에서 잘게 부순 다음 소화시켜요. 굴 껍데기를 먹으면 위에서 먹이를 부수는 역할을 하고 칼슘도 공급한답니다.' 그러더니 타조 뼈와 알까지 가져와 보여주었다. 두 번째 과제는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않겠다는 서명하기였다. 서명을 하고 스티커를 받았다.



안타깝게도 동물원에서 많이 보는 장면이 바로 방문객들이 먹이를 주는 장면이다. 집에서 싸온 당근, 먹던 과자를 주거나 주변에서 풀을 뜯기까지 한다. 동물원 동물들은 영양사가 동물에 맞게 짠 식단에 따라 사육사가 먹이를 준다. 그런데 방문객이 먹이를 주면 과식을 하거나 영양 균형이 깨지며 질병에 걸릴 수 있다. 동물끼리 싸우기도 하고 사람도 손을 물리는 등 다치는 일이 생긴다. 이 내용을 위의 과제를 통해 깨닫게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받은 스티커 개수마다 높은 단계의 스티커를 주고 모든 미션을 해내면 큼지막한 스티커를 제일 앞 장에 붙여준다. 이런 걸로 아이들이 열심히 할까 싶어 정말 그걸로 끝이냐고 직원에게 물으니 그게 다란다. 이걸 하는 어른이 몇이나 있을까 싶냐마는 어른인 내가 해도 재밌긴했다. 초등학교 때 아람단 단복에 달 배지 모으던 때가 생각났다. 질문한 김에 이것저것 캐 물었다. 스티커를 주는 가이드는 모두 30명이고 한 시간마다 장소를 바꿔가며 일한다고 했다. 계속 서서 아이들의 질문 공세를 받고 동물에 대해 설명하는 게 쉬워보이진 않았다.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원이 교육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투자하느냐에 따라 그 동물원의 가치가 달라진다. 동물원은 어찌 됐든 도시의 사람들이 가장 쉽고 폭넓게 동물과 접하는 곳이다. 전 세계적으로 야생에서 동물과 환경에 대해 배우는 생태 교육이 늘어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물을 만나는 장소로 야생보다는 동물원을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동물을 존중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마음을 가장 먼저 심어줄 수 있는 곳이 동물원이다. 그런데 교육이 생각보다 뒷전으로 밀리는 모습을 많이 봤다. 일단 인력과 예산이 너무 적다. 영혼을 갈아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헌신적인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도 쉽지 않다.


동물복지에 기반한 일관된 교육 철학이 없으면 동물에게 피해를 주는 체험이 교육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동물을 만지거나 먹이를 주는 것으로 동물을 제대로 대하는 법을 배우기는 어렵다. 보전 역을 나오니 가축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이런 곳은 대부분 동물과 사람이 섞여 아비규환인 경우가 많은데 생각보다 조용했다. 나도 손을 씻고 들어가 봤다. 사람들이 브러시로 동물들을 빗겨주고 있었다. 동물들은 스스로 사람에게 다가가 자기 몸을 긁게 했다. 동물들에게 털 손질은 매우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털에 붙은 기생충도 떨어뜨린다. 동물끼리 서로를 긁어주거나 주변의 나무와 바위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그걸 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마구 만지거나 먹이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먹이를 팔지도 않았다. 사육사에게 물어보니 동물을 훈련할 때 먹이를 보상으로 주는데, 먹이를 주는 것은 오직 사육사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방문객들이 먹이를 주면 동물들이 사육사의 훈련을 잘 따르지 않고 먹이를 통해 제공하는 풍부화의 기회도 줄어든다. 야생에서처럼 먹이를 탐색하는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호주에서는 캥거루에게 먹이주기를 하는 곳이 많은데, 사람들이 먹이를 주면 개체별로 얼마나 먹는지 확인이 어렵다. 건강에도 좋지 않다. 펠렛 사료를 많이 먹은 캥거루에게 치석과 구강 염증 등 질병이 생긴 경우도 있었다.


또 다른 이유는 교육적으로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육사는 동물이 먹이를 얻기 위해 사람들을 따라다니는 모습이 교감이라기보다 마치 구걸하는 것 같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먹이에 집착하게 만드는 모습보다 동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동물의 5대 자유는 배고픔, 갈증, 불안, 스트레스, 질병,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지금은 이러한 자유를 충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동물이 더욱 주체적이고 활동

적인 삶을 살도록 돕는 높은 수준의 복지에 집중하자는 추세다. 동물이 브러시를 든 사람에게 다가가 몸을 맡기는 행동이 바로 그 예였다. 원하지 않으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으로 피할 수도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동물들  마리가  앞에 서있었다. 사육사가 문을 여니 염소 한 마리가 타박타박 걸어 나와 사육사가 문을 닫을  가만히 기다렸다. 사육사가 클리커로 잘했다는 칭찬을   먹이를 줬다. 염소는 사육사를 따라 옆에 있던 건물로 들어갔다. 물어보니  마리씩 데려가 몸무게를 재고 발굽을 관리하는 중이었다. 동물에게 목줄을 매지도 않았고 몸을 밀고 끌고  필요도 없었다. 아주 평화로운 오후였다.


최근까지도 국내 동물원에서 예방 접종을 하거나 검진을 하기 위해 동물을 잡다가 과도하게 흥분한 동물이 죽는 일이 있었다. 동물이 사육사를 신뢰하지 못하고 사육사는 그저 예전에 하던 대로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며 동물을 위협하고 억압하는 방법밖에 몰라서 생기는 비극이다. 생각보다 동물을 관리하는 방법을 바꾸는 데 보수적인 경우가 많다. 무조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길 바라지는 않는다. 여러 측면을 비교해 동물과 사육사에게 더 좋은 방향을 선택했으면 한다.


어차피 동물만 보고 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생각했는데 동물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오히려 시간이 남았다. 이왕 왔으니 조금만 즐겨 보자 해서 라이온 킹 뮤지컬을 보러 갔다. 미어캣 티몬과 혹멧돼지 품바, 크게 만든 기린과 코끼리가 나오고 알록달록한 앵무새처럼 옷을 입은 사람들이 뛰어다녔다. 주인공 사자 심바가 큰 인형으로 등장했는데, 눈을 껌뻑이고 귀를 쫑긋거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어 갈수록 가슴에서 뭔가가 울컥이더니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다 큰 어른이 혼자 디즈니에 와서 울다니... 몰래 눈물을 닦았다. 사라진 줄 알았던 동심이 되살아나서인지 아니면 여기에선 주인공이지만 현실에서는 소외된 동물들 때문인지 혼란스러웠다.



디즈니 애니멀 킹덤은 교육 프로그램이나 동물을 관리하는 방법, 동물을 보여주는 무대가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기번이 있는 섬 둘레에 사람들이 탄 보트가 떠다니는 등 동물 주변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도 들렸다. 놀이공원과 동물원이 뒤섞여 있는 테마파크에서 항상 느끼는 분주함이었다. 애니멀 킹덤이 보전을 위해 노력하고 동물들을 전문적으로 잘 돌보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곳의 동물들은 자본주의가 만든 거대한 환상의 세계에 배경처럼 서 있는 조연일 뿐이라는 느낌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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