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모음: 여성일터 안전키트> 렌탈가전 방문관리원 진희씨의 일과 몸 ①
프로젝트 <조각모음: 여성일터 안전키트>는 여성 노동자들의 일과 몸 이야기를 기록하는 이미지-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산업재해 의제에서 소외되기 쉬운 여성의 노동을 드러내고, 흩어져 있던 목소리들의 조각모음을 통해 이야기의 확장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월 18,900원에 직수관 무상교체와 방문 살균 케어, 필터 교체까지!” 한 렌탈정수기 광고 문구다. 국내 렌탈가전시장은 부담 적은 초기비용과 방문관리서비스를 어필하며 계속해 성장하고 있다.
이 렌탈가전의 주요 구매유인은 정기적 방문관리서비스다. 가전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이 서비스는 방문대면서비스뿐 아니라 공구를 이용한 기기 정비기술과 운전 등 통상 남성에게 요구되는 노동으로 구성돼 있다. 그럼에도 이 업무는 ‘정수기에 달려오는’, 저임금 여성노동이 되어 있다. 왜 그럴까?
최은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장은 “이 업종은 애초부터 업무 성격・가치와는 무관하게 성차별적 사고와 기업의 비용절감 요구에 따라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로서 설계됐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가정방문 대면서비스와 감정노동에 적합하면서 저임금도 감내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여성을 선정하고, 업무에 수반되는 노동을 비공식화・저평가하면서 저임금과 불안정 일자리를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임금수준과 업종의 성별은 사회적 선택, 기업의 필요 등에 의해 자의적으로 결정되"며, "이렇게 선택적으로 결정된 임금수준은 역으로 여성노동의 가치를 저하, 비하시키는 요인으로 다시 작용한다"고 말했다.1)
일과 가치의 불균형 사이에서 몸은 쉽게 다쳤다. LG전자 렌탈가전 유지관리서비스를 담당하는 LG케어솔루션 매니저들이 설립한 LG케어솔루션지회의 실태조사(21년 8월)에 따르면 응답자 91%가 지난 1년간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 부딪힘(63.5%), 절단・베임・찔림(47%), 넘어짐(32%), 개에 물림(32.9%)등이었다. 둘 중 한 명 꼴(44%)로 교통사고를 당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근육, 뼈, 관절질환(77%), 허리통증(51.6%), 방광염 등 비뇨기계질환(35.8%), 위장질환(31%) 시력저하(30%)등이 나타났다. LG케어솔루션 매니저는 전국에 4,800여명이 있으며 대부분 40~50대 여성이다. 그러나 특수고용직이자 방문노동자인 이들의 건강권은 현행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곤 한다. LG케어솔루션 매니저 김정원씨・김진희씨・류용진씨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1인칭 인터뷰와 이미지로 재구성했다. 각각 30대, 40대, 50대인 이들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거나 경력단절 후 재취업한 워킹맘들이다.
우리는 정수기, 공기청정기 같은 LG 가전제품을 렌탈서비스로 이용하는 고객들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제품관리를 해주고 있어요. LG 자회사 ‘하이엠솔루텍’과 위탁계약을 맺은 특수고용직으로 돼 있지만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개인사업자가 아닌 노동자라고 인정받았어요.
일단 아침 8시쯤부터 출근 준비를 해서 하루 종일 차로 돌면서 예약 시간 맞춰 고객 집을 방문해요. 방문하는 집들을 ‘계정’이라고 불러요. 하루에 10~15계정, 한 달에 120~200계정까지도 해요. 개인 차량 소지가 필수 조건이에요.
저도 그렇고 애엄마들이 이 일에 많이 지원을 해요.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서 아이 키우면서 하기 좋다고 홍보하니까. 속았죠. 하하.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서 가야 하니까 근무시간이 엄청 유동적이에요. 보통 첫 방문은 아침 9시인데 마지막 방문시간은 정해지지 않아요. 보통 저녁 8시는 넘어야 끝나는 거 같아요. 맞벌이 가정이 많으니까 퇴근시간 이후에 와달라는 고객들이 많아서요. 어제는 밤 10시에 갔었어요. 그리고 내가 퇴근했어도 급히 클레임이라도 들어오면 바로 가야 해요. 여기 이 분은 애가 일곱 살이거든요. 혼자 둘 수 없으니까 같이 차 태워서 데리고 다녔어요. 어떤 분은 퇴근했다가 고객 요청 때문에 다시 나갔는데 애가 따라 나왔던 거예요. 현관문이 잠기는 바람에 애가 못 들어가고 밖에서 내내 울고 난리가 났대요. 애들 밥도 못 챙겨주니까 미안하다고 그만두는 분들도 있어요.
우리 일이 원래 AS기사들이 했던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사실상 수리기사 일에 감정노동 서비스까지 넣어서 만들어낸 직군 같아요. 점검, 수리, 외관 클리닝, 고온 살균세척… 유지관리 업무만 해도 많은데 정수기 주변 먼지 안 닦고 갔다고 클레임 들어오기도 해요. 제품이 고장나면 AS센터로 연락해야 하는데 그것도 우리한테, 정기결제 렌털비 안 빠져나갔다는 것도 우리한테. 그러니까 콜센터부터 AS 대행접수까지 다 하고 있어요. ‘고객 눈높이에 맞춘 서비스’ 제공이라는 게 정말 극한직업이에요.
그런데 반대로 정수기 직수관을 교체하는데 남자 고객분이 “AS기사도 아닌데 왜 와서 정수기를 다 뜯고 있느냐”면서 화를 낸 적도 있어요. 우리는 고객이 원하는 건 다 해줘야 하지만, 전문성은 못 믿겠다는 거죠.
특히 힘든 업무는 공기청정기 케어랑 감정노동. 공기청정기는 점검도 힘든데 도구도 되게 무겁거든요. 살균기가 3~4킬로, 무선청소기가 2킬로. 거기에 교체용 필터랑 각종 점검키트 같은 거 다 합치면 10킬로 정도 돼요. 또 공기청정기는 필터 교체가 주요 업무인데 쓰다 보면 필터만 아니라 제품 내부에 먼지가 많이 쌓여요. 사실 판매할 때 회사가 유지관리 방법을 안내해줘야 하는데 안 그러니까 되게 무자비하게 사용들을 하시죠. 원래 청소도 매달 해줘야 하는데 우리가 해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안 하세요. 그런데 우리는 6개월에 한 번 가는 거거든요. 그럼 그동안 방치된 공청기 안이 어떻게 돼 있겠어요. 먼지가 기름때를 흡수해서 카스테라처럼 찐득찐득하게 쌓여 있어요. 공청기 팬 틈새를 일일이 파서 청소를 하는데 손이 안 들어가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럼 손목을 어떻게든 꺾어서 넣어야 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손목을 돌리는 작업이 많아요. 다른 회사 정수기는 필터를 끼우는 식인데 엘지는 돌려서 빼는 식이라서요. 그리고 불편한 자세로 일하게 될 때가 많아요. 렌탈용 제품이면 매니저가 점검하기 수월하게 설계돼 있어야 하잖아요. 실제로 렌탈정수기 사업으로 시작한 모 회사는 그렇게 설계를 해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는 일단 설치하고 보자는 식이 많은 거 같아요. 예를 들어 듀얼정수기 경우엔 싱크대 하부에 정수기를 놓고 선을 밖으로 빼내서 설치하잖아요. 정수기 자체는 바깥에 두는 정수기들이랑 같거든요. 그걸 쪼그려 앉아서 어떻게든 싱크대 밑으로 넣어야 하는 거죠. 수전만 나와 있으니까 보기엔 깔끔하지만 매니저가 점검하기엔 되게 어려워요. 요즘은 싱크대 하부장 공간이 넓지 않아요. 음식물처리기 같은 걸 설치하기도 하니까. 선 찾기도 힘들고. 냉장고 정수기 경우엔 물 흐르는 선이 싱크대 안으로 연결돼 있어요. 그럼 싱크대 안으로 들어가서 수도 밸브 잠그고 선 연결했다가 다시 뺐다가 하는 걸 몇 번씩 반복해요. 공청기도 계속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해야 하고, 또 1단짜리는 높이가 낮으니까 고개랑 허리 숙여서 점검해야 하고.
설치 방법에 대해 회사 차원의 매뉴얼이나 안내가 있고, 기준도 좀 까다롭게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 게 없으니까 집들마다 중구난방 설치가 돼 있고, 점검을 하려면 손이 닿아야 하는데 안 닿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를 들면 냉장고에서 액체박스를 들어내야 필터를 빼낼 수 있는데, 냉장고를 벽에 너무 바짝 붙여놔서 박스를 들어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럼 틈새로 팔을 욱여넣어서 필터를 빼는데 그렇게 무리하다보면 사고 나기도 쉽죠. 손목에 잔뜩 힘 줘서 일하다가 어디 부딪혀서 뼈가 부러지기도 하고, 필터 떨어뜨려도 바로 사고 나고요, 어떤 집은 싱크대 위에 짐을 어마어마하게 쌓아놔서 그걸 비집고 들어가야 하고. 그러니까 무리하게 불편한 자세로 일하게 되는 거죠. 업무 프로세스도 수시로 바뀌어요. 어떨 때는 이 필터, 다른 때는 저 필터. 필터 체결 후에 링을 끼우라고 했다가 끼우지 말라고 했다가... 일관성이 없죠.
그래서 근골격계 질환들이 진짜 심각하고, 손가락 변형 온 분들도 많아요. 방광염도 많고요. 화장실을 잘 못 가니까요. 고객 집에선 (화장실) 말도 못 꺼내죠. 언제 클레임이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같은 지역 매니저들끼리 공용화장실 위치를 서로 공유하는데 이동 경로랑 타이밍 맞으면 가는 거고 아니면 못 가요. 대체로는 참죠.
나도 일한 지 3년 좀 넘었는데 손가락 변형이랑 빈뇨증 같은 비뇨기계 질환이 왔어요. 허리랑 어깨가 너무 아파서 진통제 없으면 밤에 잠을 못 잘 정도고. 아프거나 다쳐서 그만두는 분들 너무 많아요. 아는 분도 일하다 손목뼈 부러졌는데, 일 자체가 손목 돌리는 일이니까 결국은 퇴사하셨어요.
그런데 회사는 우리 일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거 같아요. 보호해준다는 게 없어요. 회사에서 미끄럼 방지 안전화라고 내놓은 건 있는데 질이 안 좋다는 얘기가 많더라고요. 그것도 매니저가 50% 가격 부담을 해야 해요. 2만9천원.
손가락 변형 막는다고 니트릴 장갑 제공해주긴 하는데 그것도 정수기 직수관 교체 작업할 때만 제공해줘요. 나머지는 다 비닐장갑만 주는데 미끄러우니까 되려 힘이 더 들어가서, 그냥 사비로 니트릴장갑이랑 손목보호대 사서 쓰기도 해요. 유니폼도 그냥 주는 게 아니에요. 1년 안에 일 그만두면 물어내래요. 안 입은 거 가져오는 것까진 된다고 했어요. 하하.
1) LG전자 렌탈 가전 방문관리 노동자 안전건강실태와 개선방안 토론회 토론문 <저평가된 여성의 노동, 악용하는 기업-LG케어솔루션 매니저의 노동조건에 관하여>(2021.8)
*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