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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렛 이터 Dec 09. 2021

빈틈을 향해서

우울 극복을 위한 운동일기 - 복싱


원 투 훅 원 투 원 투 …


상대의 얼굴을 겨냥해 날리는 펀치들이다.

보통 양손을 얼굴 앞에 두어 가드를 올리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잽이나 카운터를 날릴 때야 비로소 빈틈이 생기기에 좀처럼 강렬한 펀치를 날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얼굴이 아닌 몸통 쪽을 겨냥한 펀치가 있다.


바로 이번에 배운 ‘바디’이다.


‘바디’는 말 그대로 ‘몸통’을 향해 날리는 펀치로, ‘훅’이나 ‘더킹’처럼 몸의 모양새를 본떠 이름 지은 것이 아닌, 목표점을 이름으로 사용한 것이다.


‘바디’는 주먹을 아래로 내려 상대방의 복부를 가격하는 기술이다.

동선은 자동차의 안전벨트와도 같다고 생각하면 쉬운데, 나의 골반뼈에서 시작해 상대방의 복부 중앙인 명치를 향해서 올려치는 것이다.

때문에 ‘바디’를 하기 전에는 무릎을 살짝 굽혀 몸을 낮추게 되는데, 이때 몸을 바깥쪽으로 살짝 틀어 주먹을 날릴 때 다시 몸을 안쪽으로 복귀하며 힘을 실어준다.


나는 바디를 배우기 전부터 뒷발에 회전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이미 익힌 동작들이 약간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었고 이를 고치기 위해 뒷발 회전에 신경 쓰며 동작을 연습했고 ‘바디’에서도 마찬가지로 뒷발에 회전을 주어 힘을 더 실을 수 있었다.

‘바디’ 동작에서의 팁은 뒷발 회전 외에도 하나 더 있었는데,

기본 위치인 가드에서 나의 골반뼈 부근으로 주먹을 내릴 때 직선으로 내리는 것이 아닌, 살짝 뒤쪽으로 타원을 그리듯 내려주는 것이다.

그로 인해 주먹을 올려 가격할 때에 힘이 실리게 되고 조금 더 타격감을 줄 수 있게 된다.


상대가 주먹을 날렸을 때, 이를 피하며 동시에 ‘바디’를 날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상대가 왼손을 날렸을 때, 나는 오른쪽으로 몸을 살짝 숙여 ‘더킹’으로 피하며 속으로 ‘원’을 센다. 다시 속으로 ‘투’를 세며, 상대의 왼쪽 갈비뼈에 ‘바디’를 날릴 수 있는 것이다.

상대가 오른손을 날렸을 때는 왼쪽으로 몸을 숙이며 속으로 ‘원’을 세고, 그리고 ‘투’에서 마찬가지로 상대의 오른쪽 갈비뼈에 ‘바디’를 날릴 수 있다.


사실 정면에서 상대의 갈비뼈에 큰 타격을 주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이때 필요한 센스가 바로 나의 몸을 상대방 바깥쪽으로 살짝 이동시키는 것이다.

상대가 왼손을 날릴 때, 나는 오른쪽 앞으로 살짝 이동하며 속으로 ‘원’을 세고, 다시 ‘투’에서 상대의 왼쪽 갈비뼈에 ‘바디’를 날릴 수 있다.

내가 오른쪽 앞으로 살짝 이동했기에 상대의 옆구리가 나에게 좀 더 열려있고 나에게 보이는 옆구리의 면적이 정면에서보다 더 넓기 때문에 타격하기에도 훨씬 수월하다.




복싱이 주는 이미지라는 것이 있었나 보다.

처음에 내가 복싱을 배운다고 했을 때, 엄마의 반응과 이미 배우고 한참 후에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을 때의 반응은 비슷했다.

‘위험할 것 같다.’ ‘너와는 어울리지 않는데, 의외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복싱은 상대를 공격하고 때리는 잔인할 수 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아직 복싱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복싱이 공격하는 법만을 배우지 않을뿐더러 공격이라고 불리는 그런 행위들이 부정적인 언어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상대가 보이는 빈틈을 포착하는 것.

그리고 내가 상대의 빈틈을 찾아 이동하는 것.

그렇게 빈틈을 넓혀 내가 파고드는 것.


이전에는 무자비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각박하고 아름답고 친절하며 불친절하다.


좋은 글을 찾아 읽는 사람들이 좋은 영화를 찾아보는 사람들이 모두 말랑하며 무해하고 상처 받기 쉬운 세상 말고

그런 사람들이 더 강하고 단단했으면 좋겠다. 세상이 날리는 펀치를 잘 피하고 그리고 잘 맞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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