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상황에 대한 씁쓸한 소회
오빠는 하나에 빠지면 푹 빠지는 사람이라 가끔 깊이 빠지는 주제가 있으면 끝을 모르고 파고드는 사람이다.
술은 오빠나 나나 워낙에 좋아했지만 언젠가부터는 특히 와인에 대한 사랑이 끝을 모르고 깊어지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나로써는 피곤한(?) 일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와인 자리, 와인 얘기. 하루 종일 와인 얘기만 하고 싶은가봐? 그래서 추천했다. 유튜브 해보면 어떻겠냐고.
"내가 소믈리에도 아닌데 유튜브 같은 걸 해도 될까?"
"당연히 될 것 같은데? 유튜브에 식당 평가하고 제품 평가하는 사람들이 다 무슨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잖아. 누군가는 소비자 입장에서 얘기해야지. 난 오히려 오빠 얘기가 나한테 더 와닿아서 좋던데 ㅎㅎ"
고급진? 와인 행사를 가서도 아무렇지 않게 와인에서 오징어 냄새 방귀 냄새가 난다는 둥 솔직한 생각을 뱉어내던 오빠의 방식이, 난 좋았다. 그래서 그 흔한 삼각대도 하나 없이 아이폰을 들고서 손떨림이 그대로 묻어나는 첫 영상을 찍었다.
사실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 몰랐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워낙에 이런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니까 한 번 담아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우리가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국내에 이렇다 할 와인 유튜브는 옛날옛적 경태지님 영상 이후로 몇 없었고 그조차도 딱딱한 교양프로그램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방향성은 (지금도 그렇지만) 쭉 하나였다. "가식없이", "편하게". 사실 보통 '와인애호가'들이 소개하는 십만원 이십만원 넘어가는 와인은 자주 사 마실 돈도 없고, 그저 한 명의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보편적인 와인 얘기를 가식없이 편하게 전달하자는 생각이었다.
물론 운영하면서 오빠와 나의 생각이 항상 잘 맞는 건 아니었다. 영상 길이도 최대한 줄여서 10분 정도로 짧게 만들면 클릭하기에도 부담없고 얼마나 좋아. 라고 늘 생각했던 나와는 달리 2-30분, 가끔은 40분이 넘어가는 우리 영상을 오빠는 줄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와인 하나, 와이너리 하나에도 최대한 많은 얘기를 담고 싶어했다.
이후 마트 와인 추천 콘텐츠를 기반으로 급격히 다른 채널이 우리를 추격하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도 그런 영상 더 만들자고 했지만 "그런 영상은 다른 분이 이제 만드시잖아. 이제 나는 거기에 열정이 없어" 라고 하면서 하라는 추천은 안하고(?) 썰을 풀기도 했다. 이제는 3등이 된 지 오래인 우리.. 구독자 수에 초월하신 분..
감사하게도 채널이 커지면서 이런 저런 광고 제의가 많이 들어왔지만 우리가 받은 광고는 단 두 건, 협찬도 몇 건이 안된다. 그 흔한 협찬도 와인이나 제품 자체가 오빠 맘에 안들면 다 거절했다. 반대로 오빠 맘에 드는 건 남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전문가 평이 안 좋더라도) 맘에 든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추천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짜 블라인드로 해서 못 맞추는 영상도 우려하는 나와는 달리 그대로 내보냈다.
"꼭 전문가 입맛만 있는 건 아니잖아. 더 대중적인 입맛도 있을 수 있지."
솔직히 유튜브가 돈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광고를 쳐서도 그렇다. 직업으로 유튜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오히려 급여도 없이 2-30시간을 편집하고 앉아 있자니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나 생각할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이런 것 조차도 누군가에게는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우리를 움직이게 했다. 누군가는 우리가 공유한 영상을 보고 낙이 없었던 인생에 와인이라는 취미가 생겼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추천받은 와인을 마시며 너무나 오랜만에 부모님과 좋은 시간 보냈다고 감사를 전했다. 우리가 와인을 사랑하는 이유가 와인이 주는 경험과 행복을 사랑해서이듯이 그걸 퍼뜨릴 수 있는 게 좋았다. 어쩌면 창업과 같은 이유였다. 우리가 만든 뭔가로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일.
그렇게 몇년을 소위 말하는 떡상 영상 하나 없이 꾸준히 왔다. 나 때문에 오빠도 그 모든 걸 놓고 함께 미국에 와야 했을 때, 그간 우리를 응원해주신 분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구독자 모임을 했고, 거기에서 만난 한 분 한 분께도 큰 에너지를 얻었다. 다들 배경도 출신도 선호도 달랐지만 와인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같았기에 와인 몇 잔이면 금방 뭉칠 수 있었다. 덕분에 미국에 와서도 조금씩이라도 시간이 나면 꾸준히 영상을 올려야겠다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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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누군가는 이탈리아 피자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뉴욕 피자를 좋아하는데 그 중 한 명은 맞고 한 명은 틀려야만 하는 세상이 된 모양이다. 꼭 하나의 답이 존재하는 것 마냥 제일 잘 아는 사람의 얘기에 줄을 선다. 그렇게 선호마저 흑백이 된다.
하나의 와인을 마시고도 서로 다른 것을 느끼고, 각자 느낀 바을 오픈하게 나누며 풍부한 경험을 만들어가는 것. 그런 게 좋아서 시작한 유튜브였다. 그런데, 그간의 진심은 무시되고 이런 일의 중심이 되자니 많이 씁쓸하다.
이 와중에 현재 비판받는 와인 회사와 찍은 영상은 예정대로 오늘 하나 더 올라갈 계획이고 거기에는 거기대로 또 각종 댓글이 달리겠지. 당사자는 정작 명상 후 극뽁하시고 자기 한 사람 취향 말고도 여러 취향이 알려지니 좋은 거 아니냐고 하루 잘 살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글로 풀어내고 있다. 역시 유튜브는 아무 멘탈로 하는 건 아닌가 보다.
이거 참 와인 한 잔이 땡기는 날이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