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학 들어가는 게 다인 것 같던 시절이 있었다. 원하는 대학교를 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내 인생이 실패하는 줄 알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후 연합동아리 활동을 하며 대학이 반드시 사람의 능력과 비례하지는 않는구나 깨달았다.
약 1년 간 서울살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나를 받아줬던 SIFE (현 인액터스) 에서 나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컨셉에 빠졌고 그런 기업을 만들어서 창업을 하면 세상을 놀랍도록 바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결국 대학교 4학년 중반 열정을 따라 창업을 했지만, 그 길이 내가 꿈꿨던 만큼 위기 절정을 지나 결국 해피엔딩이 나오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첫 번째 사업을 접을 때는 장문의 작별인사도 쓰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도 받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가 되면서 사업을 시작하고 접는 것이 나누기도 멋쩍은 소식이 되었다. 사람들도 우리의 이야기를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서른의 어느 날 유학을 결심했다. 일단 큰 물로 가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영어의 ㅇ도 못했던 나에게 MBA에 합격하고, 원하는 회사에서 인턴십을 구하고 정규직 오퍼를 받는 과정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기에 어쩌면 지금의 내 모습은 과거의 내가 꿈만 꾸던 모습이었을지 모르겠다. 내 모습이 누군가의 목표이기도 하겠지. 내가 취업에 성공한 다른 MBA 선배들을 보며 꿈을 꿨듯이.
이제 이 곳에 뿌리내리고 예쁜 꽃을 피우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사실은 더 세차게 흔들리고 있다. 어쩌면 이십대의 어느 날보다 더.
삼십대란 참 복잡한 시기 같다.
가진 기반은 없으면서 물질적인 기준들만 높아지는 나이. 더 이상 벌레 나오는 아무 에어비앤비에서나 자지 않고, 싸구려를 사지 않으며, 식당을 골라서 가고, 술도 좋아하는 걸로 골라마신다. 버는 돈은 나를 위해 쓰면 되는 게 아니라 투자하고 저축하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가정과 육아를 미리 생각하지 않으면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나이. 그렇기에 뭔가를 지금 결정하면 그게 마치 돌이킬 수 없을 것 처럼 두려운 나이.
십년 전 만큼 모든 게 심플하지가 않다. 6 figure 의 주변인들과 가족들 사이에서 높아진 물질적 기준들을 포기해가며 다시 맨땅에 헤딩하기를 선택할 수 있을까. 그런 인생을 살고 후회하지 않기로 나는 스스로에게 약속할 수 있을까.
한 달 후 결혼, 두 달 후 졸업.
그 후 나의 삼십대는 어떤 모습일까.
친구는 내가 드라마 겨우 서른에 나오는 구자를 닮았다고 했다.
일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 동시에 주변을 완벽하게 책임지고 싶은 사람.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내 선택이 옳다고 믿지만 때로는 자기 함정에 빠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
극 중 구자가 녹차밭을 창업했을 때, 그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게 좋았다. 그게 더 현실적이기도 했지만 구좌에게는 그 경험이 둥둥 떠다니던 구름에서 내려와 다시 땅에 두 발을 딛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였다.
나에게도 나에게 맞는 배움의 여정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영영 따라가지 못할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늘의 기준, 나의 기준으로 단단히 뿌리 내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