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클레어 Mar 01. 2023

세상이의 탄생 - 세상에 온 걸 환영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카이저 병원 출산 후기

주의: 출산을 앞둔 임산부, 출산을 경험해 본 부모가 아니면 다소 지루할 수 있는 기록글입니다 ㅎㅎ


===


36주차, 본격적으로 휴가가 시작된 후 뒤늦게 열심히 출산 준비를 했다. 매일 30분~1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순산에 좋다는 것들도 챙겨먹고 요가, 스트레칭, 짐볼 운동, 족욕까지 회사 일이 없는 대신 일처럼 출산 준비를 했다. 임신 말기가 되면 Nesting 이라는 본능이 생긴다더니 정말 엄청난 Nesting 욕구로 집안을 샅샅이 엎어놓으며 아이를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해 몇주에 걸쳐 집안 사소한 곳까지 대청소 & 정리를 했다. 생각해보니 38주 5일차에 청소 업체 부르면서 nesting 의 대장정이 끝났는데 그러고나서 이틀 뒤에 애기가 나왔으니 참 적당한 때를 기다려 준 우리 세상이 참 효자다! (근데 애기 낳고 이모님 오시고나서 살림이 늘어나서 2주만에 다시 어지러짐.. ㅋㅋㅋㅋㅋ ㅠㅠ)


부끄러운 before & after 예시 ㅋㅋㅋ


시간이 날 때마다 사람들을 열심히 만났다. 이미 부모가 된 주변 사람들에게 이 시기에 해야할 게 뭐냐고 물어보니 나중에 애기 생기면 외식도 못하고 사람도 못 만난다고 해서 되는대로 돌아다녔다. 물론 막달이 되니 허리도 너무 아프고 하체도 붓고 해서 어딜 가더라도 3시간 버티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의도치 않게 마지막까지 약속들을 다녀왔던 것 같다.


38주 6일차가 되던 날, 친구의 생일파티가 있었고 마침 생일파티를 나가기 직전 화장실에 들렀는데 드디어 이슬이 비쳤다. 미국에서는 mucus plug 라고 부르는 피와 함께 나오는 점액질이 배출된 것이다. 이슬이 비치면 보통 2-3일 내로 출산을 한다던데! 긴장했지만 그래도 나갈 준비를 마치고 같이 갈 오빠까지 집 앞으로 와있었던지라 예정대로 생일파티를 참석했다. 다행히 양수가 안 터진 채로 ㅋㅋㅋ 무사히 파티에서 돌아오고 39주차인 다음 날 아침 병원약속이 예정되어있던 나는 아이가 39주까지는 채웠으면해서 내일까지는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으로 positive birth 를 위한 명상을 하다 일찍 잠에 들었다.


긍정적인 출산 준비를 위해 정말 자주 봤던 채널


잠에 든 것도 잠시, 새벽 1시경부터 배가 생리통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아파 죽겠다 수준의 진통은 아니었지만 꽤 아파서 잠은 자기 힘들었다. 아 이게 가진통인가? 그래도 오늘은 이러다 말겠지? 하며 버티고 버티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도 잦아들지가 않았다. Contraction tracker 앱을 켜서 진통을 기록했다. 진통 간격이 생각보다 일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새벽 5시까지 너무 오래 되어 잠을 하나도 못 자니 병원에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웬걸. 병원에서는 진통 길이가 1분 이상, 진통 간격이 2-3분 정도로 짧게 되고 나서 병원에 오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통화가 가능한 걸 보니 아직 진진통이 아니란다.


하지만 그렇게 통화를 끊자마자 점점 더 강한 통증이 시작되더니 어느덧 정말로 대화를 이어가기 힘든 수준의 진통이 이어졌다. 이건 진짜다! 생각이 들었지만 진통 간격이 생각보다 규칙적이지 않았다. 짐볼 위에서 최대한 연습한 4-6초 호흡법을 이어가며 최선을 다해 견뎠지만 1시간이 최대였다. 다시 병원에 전화를 했는데 그 때가 진통 간격이 3분 30초쯤 될 때였다. 간호사가 진통으로 대화를 하지 못하는 내 상태를 듣더니 이제는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역시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달랐다. 양수부터 터지고 헐레벌떡 병원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양수는 터지지도 않고 진통도 뭔가 여전히 불규칙한 상황에서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도착하니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해 걷기도 힘들었다. 오빠는 도착해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와야 해서 나를 먼저 내려줬는데, 내가 혼자 출산하러 왔다고 하고 병원에 걸어들어오자 병원 1층에 있던 직원이 놀라며 휠체어가 필요하냐고 물어봤다. 그 와중에 그냥 혼자 올라가서 접수 하고 하느라 힘들긴 했다. 하지만 간호사들이 다들 친절해서 진통 올 때마다 호흡을 가이드해주며 나를 안내해주었다.


운이 좋게도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이제 막 아침이 되어 새로운 shift 가 출근한 시간이었고, 다른 임산부도 많지 않아 우리를 최대한 빠르게 도와줄 수 있는 시점이었다. 오빠가 도착하자마자 내진이 이루어졌고, 남자 선생님이라 당황한 것도 잠시, 정신없는 진통 속에서 진통보다 더 아픈 내진 ㅠㅠ 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다행히 짧게 끝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자궁문이 이미 6cm 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사고 간호사고 다들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줘서 나도 몰랐는데 왠지 뿌듯? 했다. (대게는 자궁문이 덜 열린 상황에서 병원에 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내가 뭐 한 건 없는 것 같은데 ㅋㅋㅋㅋ 짐볼을 열심히 탄 게 효과가 있었나.


여하간 그러고나서 우리를 위한 분만실로 이동했고, 바로 Epidural 을 맞기로 했다. 어디 후기에서 보니까 처음에 안 맞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마취과 선생님이 다른 데 가있고 이러느라 결국 엄청 늦게 맞아서 고생했다 뭐 이런 글도 생각나고 해서 그냥 놔줄까 물어볼 때 맞겠다고 했다. 다행히 에피듀럴도 바로 맞을 수 있었다. 에피듀럴 맞는 게 순간 고통으로는 사실 진통보다 더 아팠던 것 같다. 갑자기 몸 오른쪽 전체에 진짜 찌릿하고 기분 나쁜 고통이 몇 번이나 와서 아프다고! 이러면서 약간 몇 번 짜증냈다 ㅋㅋㅋㅋ 그치만 다행히 무통은 잘 들었고, 그 후로는 정말 진통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 편안하게 누워, 잠도 보충하며 자궁문이 더 열리길 기다렸다. 에피듀럴을 맞으면 solid food 는 먹으면 안 되서 병원에서 나오는 식사는 모두 남편 몫이었다. (딱히 맛있는 거 같진 않았음) 우리만을 위한 분만실이라 대체로 편안하고 좋았다. (단 하나 아쉬운 건 남편이 쉴 침대는 따로 없다는 거. 의자를 쇼파베드마냥 펴서 누울 수 있는 시스템이었는데 편해보이진 않았다)


에피듀럴 맞은 뒤 분만실에서 쉬고 있는 우리


아 참. 정말 감사했던 행운 한 가지! 그간 카이저 병원 미션베이 지점을 다니면서는 한 번도 한국인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분을 만난 적이 없었는데, 우리를 위한 분만 담당 간호사가 한국 분이셨다! 처음 해 보는 출산이기도 하고 더군다나 해외라 걱정도 많았는데 한국분이 우리를 전담 케어해주셔서 정말 2-3배는 편하게 출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세심하게 잘 챙겨주셨다. 인스타라도 여쭤볼 걸...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10시쯤 무통 주사를 맞고 2시간 간격으로 내진을 하는데 12시가 되었는데도 자궁문이 여전히 6cm 였다. (무통 후에 내진은 해도 아무 느낌이 없었음) 의사선생님이 양수를 터뜨려보겠냐고 제안을 해주셨고 우리는 장단점을 들은 후 양수를 터뜨려보기로 했다. 무통이 너무 잘 들어서 그런지 양수를 터뜨렸는데도 아무 느낌이 없었다. 자궁문이 빨리 안 열리는 것 같아서 괜히 무통을 맞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감사하게도 간호사 분이 peanut ball 을 가져와 옆으로 눕는 자세를 알려주셨고, 그렇게 2시간 있으니 자궁문이 2cm 더 열렸고, 4시 쯤 되니 자궁문이 10cm로 다 열렸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보통 이쯤되면 화장실을 엄청 가고 싶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고 했는데 난 아무 느낌이 들지 않아서 이대로 바로 push 해도 되는거냐 여쭤봤는데 무통 맞으면 안 느껴질 수 있다고 그냥 하자고 하셔서 나도 알겠다고 하고 오후 4시부터 본격적으로 push 를 시작했다.


이때쯤 무통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해서 사실 진통이 다시 슬슬 느껴질때쯤이었다. 미국 병원에서는 버튼만 누르면 이미 연결된 주사줄을 통해 에피듀럴을 더 맞을 수 있는데 아무래도 push 를 할 때는 진통을 좀 느끼는 게 좋을 것 같아 일부러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진통을 할 때 푸쉬를 해야하기 때문)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비교적 빨리 첫 아이를 출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여튼 드디어 push 의 시작! 난 엄청 사람들이 많은 출산 장면을 상상했었는데 그것도 역시 드라마! 실제로는 우리 담당하셨던 한국 간호사 한 분이랑 오빠, 그리고 나 - 셋이서 본격적인 push 를 시작했다. 내 바람으로는 오빠가 출산의 모든 과정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오빠도 적극적으로 분만에 참여를 해야하다 보니... 간호사 분의 진두지휘에 따라 자세를 바꿔가며 오빠가 다리 하나 들고, 간호사분이 다른 쪽 다리 하나 들고 진행상황을 체크(?) 해 가면서 열심히 푸쉬를 했다. 진통이 올 때만 푸쉬를 할 수 있다보니 한 번 진통에 2-3번 정도 푸쉬하고 쉬고.. 주변에서 얼굴에 힘주면 실핏줄 터진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최대한 배에서부터 짜낸다(?)는 느낌으로 열심히 힘을 줬다. 지나고나서 얘기지만 오빠가 보기엔 내 표정이 너무 평화로워서 말은 안했지만 이래서 애가 언제 나오겠나.. 생각했다고 한다 ㅋㅋ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 얼마 푸쉬하지 않아서 애기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간호사 분과 오빠의 무한 칭찬이 계속되었다. "한 번 푸쉬할 때마다 애기가 더 많이 보여!" "잘 하고 있어요!" 덕분에 더 힘을 내어 열심히 푸쉬를 했고 약 30분이 지나자 애기가 거의 다 나왔다며 의사 선생님과 여러명의 간호사들이 와서 마지막 과정이 진행되었다. 여러 영상에서 배운대로 마지막에 푸쉬하지말고 잠깐 참으라고 해서 열심히 참았다가 푸쉬를 해서 아이를 정말 쑥- 나았다! 푸쉬를 시작한지 약 40분 만이었다. 보통 초산이면 푸쉬가 2-3시간은 걸린다고 했는데 다행히 순산이었다. (그치만 알고 보니 회음부 3도 열상이 있어서 꼬매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한 시간 좀 넘게... 그래도 그 파트 빼고는 순산!)


여담으로 미국 병원에서는 아이를 출산할 때 음악을 틀 수 있게 해주는데, 우리도 10곡 정도가 담긴 플레이리스트를 가지고 갔다. (실제 생각한 노래들은 더 많았는데 귀찮아서 담다 말았음 ㅋㅋ) 그 중에서도 우리의 최애곡은 단연 "Circle of life" 였는데, 오빠가 이전에 baby shower 에서 했던 스피치처럼 이제는 우리 인생의 주제곡이 Circle of life 로 바뀔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태양이가 나올 때 10곡의 노래중에 흘러나오던 노래가 딱 Circle of life 였다. 의사와 간호사 모두 이 노래에 태어난 아이를 보다니 너무 신기하다며 감탄했다. (우리 플레이리스트 자체도 아주 호평이었다)


그리고나서 아이를 바로 내 가슴 위에 얹어주었는데, 눈물이 울컥 났다. 하지만 아이 얼굴을 보고 나서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아이 귀 쪽에 혹 같은 것들이 올라와있었던 것이다. 아이를 보고 마냥 사랑스럽고 예쁠 줄만 알았는데, 얼굴에 처음보는 혹들이 나있어서 너무 당황했다. 다른 곳은 괜찮은 건가 해서 손도 보고 발도 보고, 아이가 건강한 건지 좀 걱정이 됐다. 의사나 간호사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고 오빠와 "괜찮겠지" 하며 걱정스런 눈빛을 주고 받았다. 다행히 그 외에 아이는 모두 정상이었고 그렇게 세상이는 처음 가진통이 시작한지 15시간, 진진통이 시작한지 11시간 만에 3.52kg 의 건강한 체중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세상아, 세상에 온 걸 환영하고 사랑해.



붙이는 말


인터넷에 남겨진 각종 출산후기들을 보면 겁부터 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다 케바케고 운이 많이 작용하지만 그래도 출산이라는 경험을 미리 두려워한다고 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괜히 몸과 마음만 더 긴장하게 되고.. 우리의 몸은 출산을 위해 준비된 몸이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출산 전 긍정적인 메세지를 최대한 많이 들으며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좋은 출산 준비가 아닌가 싶다. 우리도 아이를 만나기 위해, 아이도 우리를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분만의 순간이 아름답고 보람된 추억이 되길. 세상의 모든 엄마들 화이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